Juan Quispe | 후안 끼스페

“내 이름은 후안 끼스페Juan Quispe이다. 나는 티티카카[1] 호수Lake Titicaca 의 타킬레[2]Taquile 섬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입고 있는지, 특히 여자들이 엮어 만든 파하 faja (넓은 벨트)와 남자들이 짠 추요 ch’ullu (울모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러나 먼저 너그러움(generosity)의 표시로 해석되는 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예를 들어] 내가 비록 천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천이 가지고 있는 그 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그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은 항상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것이다. 내 말은, 음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영혼이 피폐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기쁨 역시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천은 결핍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그 끝자락에 있다.  파하와 추요에 사용되는 상징은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이 사용했던 것과 같다. 예를 들어 현대 달력이 도입되었지만, 달력 벨트(chumpi calendario)를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새, 꽃, 농작물의 짜임새 패턴을 통해 시간을 본다. 우리는 집을 짓는 시기와 낚시철을 읽는다. 그리고 [그 벨트에는] 망자의 날, 새로운 동물의 탄생, 새해와 같은 몇몇 축제들이 적혀있다. 우리의 조부모님들도 같은 우주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직물은 발전되었고, [지금은] 무지개 색을 꽤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많은 색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왜 조상들은 무지개 색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조상들은 무지개를 경외시했고, 무지개 색은 사람을 태우거나 장(腸)을 꺼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변하고 있고, 우리는 무지개 색을 사용해서 [사람을] 불에 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조부모님들은 그런 식으로 무지개를 경외시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6월이나 5월에 무지개가 지면, 비가 곧 그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해가 질 때 무지개가 있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해가 뜰 때 무지개가 있다면 비가 올 것이다. 이것이 [일기]예보다. 아마도 우리 조부모님의 태도는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색상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직물이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내 여동생 중 한 명이 파하에 우주 왕복선 이미지를 엮였던 적이 있다. 나는 동생에게 왜 [우주선을] 엮었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물었고, 여동생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해에 챌린저 우주왕복선[3]이 이륙 직후 공중에서 폭발했을 때, 그 소식이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졌고, 여동생은 그 비극적 장면을 모두 보았었다.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자신이 느꼈던 것을 파하로 엮어냈던 것 같다.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 과거와 미래, 감정, 계획 그리고 경험은 파하에 기호를 통해 기록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는 문화는 그 시대의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며, 더 이상 그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많은 문화와 관습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그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들이 축하하는 방식, 그들의 옷,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들의 과거가 존재하는 곳은 박물관이나 전통옷으로 꾸며진 인형들이다. 하지만, 타킬레에서는 아니다. 문화는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타킬레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파하 역시 살아있다, 그것은 몸과 같다. 심장이 있고, [그 심장은] 마치 팔처럼 파하를 뒤에서 안전하게 지켜준다. 판매용이 아닌 흰색 줄무늬의 언더벨트가 있는 파하는 힘겨운 농사일을 하는 동안 그것을 찬 사람의 등을 받쳐준다.  그런가 하면 [파하는] 땋은 머리카락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살아있다.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뜨개질을 하거나 직물을 짜는 사람은 자신의 직물을 자를 수 없고, 그것은 죄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쉽게 직물을 자를 수 없다. 이제 추요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어렸을 때 뜨개질 하는 할아버지를 지켜보곤 했는데, 나는 거기에 정말 빠져들었다. [할아버지가 짠 추요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나도 추요를 짜고 싶었다. 내가 놀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어느 틈엔가 실[과 같은] 모든 뜨개질 재료를 꺼내 놓고서 ‘뜨개질을 해보련?’하고 말하셨고, 나는 ‘네. 뜨개질을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음, 할아버지가 나에게 막 실을 주려던 참이었는데, 할머니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한테 나가서 양떼를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뜨개질인데 왜 양떼를 먼저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어쨌든 밭으로 나가 양들과 함께 뛰어 놀았다. 그것 역시 매우 재미있었다. 양들과 같이 호수로 내려가서 목초지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어쨌든 몇 년이 지나서, 아니 몇 달 혹은 몇 년이 흘러 처음으로 어린 양이 태어나는 것과 양털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양털을 깎을 준비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양털을 깎으며, ‘그래, 너도 이제 너만의 실을 만들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나는 아뿌스칸 apuscan, 물레가락을 꿰어 보았다.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신념이나 할아버지의 믿음이 작용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말은, 그것은 나를 치료해준 약이었다.[그만큼] 나는 정말 [나의] 실을 만들고 싶었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실을 만들었다. 내가 막 실만들기를 마쳤을 때, 할아버지는 바늘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 이제 뜨개질을 해보자’라고 하셨다. 하얀색으로만, 양처럼 흰색으로만, 그때 나는 작은 새들과 상징들을 넣어가며 뜨개질을 하고 싶었지만, 먼저 완전히 하얀 모자를 완성해야 했다. 지루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뜨개질하는 것은 인내심, 즉 양털에서부터 모자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그 일을 해내었다, 무지의 흰 추요를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형편없었다. 모양도 별로였다. 내가 추요를 완성했을 때, 할아버지는 빨강, 파랑, 초록, 노랑 실을 꺼내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실을 바로 앞에 꺼내놓으셨다. [그리고는]‘이제 너만의 추요을 만들 수 있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작하였다. 우선 나는 그 색깔 조합 좋아하지 않았다. 나만의 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추요을 완성하고 나서 알게된 것은 나이든 형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놀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추요에 사용한] 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사용한 색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왜냐하면 내가 노란색과 초록색 혹은 [노란색과] 파란색을 조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색깔은 언제나 이곳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색 코드를 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색깔들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만약 내가 파란색 대신 검은색을 사용했다면, 그리고 빨간색 대신 더 어두운 색을 사용했다면, 사람들은 ‘왜 추요가 이런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너는 아니?’라고 물어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두운 색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란색은 너무 많이 반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색을 보고] 당신은 홀아비인가요? 어디에서 왔나요? 아마 다른 행성에서 온 거 아니예요?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요는 색상 코드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적인 것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두 똑같이 보이지만, 타킬레 사람들은[4]Taquileño는 직물을 보면 바로 알아차린다. 만약 당신이 나의 추요를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당신에게 후안의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뜨개질이나 직물로 서로를 알아 본다. 육안으로는 모두 똑같아 보이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색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함께 모여 살기로 할 때 커플이 직물을 짜는 기술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때로 소녀의 아버지가 추요가 만들어진 상태를 확인하기도 한다. 추요는 튼튼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튼튼해야 하고, 촘촘히 짜여져야 한다. [그래서] 또 어떤 가정에서는 [추요에] 물을 붓는 경우도 있다. 거의 온 가족이 그 젊은 남자가 추요를 잘 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방수가 되게 짰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 물이 여전히 추요 안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 안에서 역할을 시작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남서 해안 프랑스는 헥타르당 한 마리의 양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황폐한 습지였다. 양치기들은 그들의 양들이 먹을 더 좋은 풀을 찾으러 매일 긴 거리를 이동하고, 발을 건조하게 하기 위해 죽마를 사용했다. 그들은 쉬고 싶을 때면 막대기를 사용하여 삼각대를 만들었다. 3미터 상공에 자리잡고 털실로 옷을 짜면서 양떼들을 찾기 위해 지평선을 살폈다. 멀리서 양치기들을 본 사람들은 그들을 작은 뾰족탑과 거대한 거미에 비유했다.

2000년 당시 인구가 1900명으로 추산된 타킬레 섬은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해발 13,000피트(3,815m)에 있는 안데스 알티플라노(고원)의 안디안스 알티카카(고원)에 있는 섬이다. 케추아어Quechua를 사용하는 이 지역의 주민들은 드라마틱한 색감의 정교한 직물과 지역사회가 통제하는 관광의 모델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05년 유네스코는 타킬레와 그 직물 예술을 구전 유산과 무형 유산의 걸작으로 인정하였다.

[1] 티티카카 호는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호수이다. 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다. 또한 남아메리카에서 수량이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하다. 

[2] 타킬레은 티티카카 호수의 페루쪽에 위치한 섬으로 푸노시에서 45km 떨어져 있습니다. 섬에는 약 2,200 명이 살고 있는데, 크기는 5.5 x 1.6 킬로미터이고 면적은 5.72km²입니다.

[3] 챌린저 우주왕복선은 두 번째로 임무에 투입된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이다. 이름은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를 최초로 측정한 영국 탐험선 HMS 챌린저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4] 타킬레 섬 출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