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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볼리비아 티후아나쿠 Tihuanacu(Tiwanaku) 에서 열린 제2차 미국 조직 및 운동 회의 American Organisations and Movements 에서 아이마라 족(族) 군사지도자 바르톨리나 시사 바르가스 Bartolina Sisa Vargas 를 기리며 9월 5일이 공식적으로 국제 토착 여성의 날로 지정되었다.

1780년대 초 페루와 알토 페루(현 볼리비아)의 고지대에서 퀘추아 족과 아이마라 족 일당이 스페인 압제자들과 싸웠다. 바르톨리나 시사는 남편 투팍 카타리와 함께 1781년 라파스를 포위한 4만여 명 이상의 군대를 이끌고 토착민 봉기를 이끌었다. 시사는 184일 동안 유지되었던 포위 공격의 지휘관이었으며, 11개월 후 반란군이 진압되며 처형당했다. 초기부터 바르톨리나는 혁명의회에서 여성을 고려하게 하는 등 이 운동에 역동적인 공헌을 하였다. 민중 봉기는 오늘날 사회 운동의 목표, 토착권의 회복, 안데스 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들에 대한 공평한 재분배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바르톨리나 시사는 말의 꼬리에 묶여 목에는 밧줄이 감기고, 벌거벗겨진 채 피를 흘리며 감옥에서 나온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반란군 지휘관인 그녀의 시누이 그레고리아 아파자 Gregoria Apaza 는 당나귀에 얹혀 나온다. 그들 각자의 오른손에는 셉터 scepter 같은 지팡이 십자가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 가시관이 쓰여져 있다. 그들 앞에서 죄수들은 나뭇가지로 땅을 깨끗이 쓸고 있다. 바르톨리나와 그레고리아는 교수형이 행해지기 전까지 볼리비아 라파스의 주요 광장을 몇 바퀴씩 돌면서 그들을 인도 여왕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돌과 비웃음 속에 고통 받는다. 선고문에는 그들의 머리와 손이 지역의 도시들에서 [본보기로] 전시될 것이라고 쓰여 있다.

 

바르톨리나의 숙명fate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9월 5일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날일 뿐만 아니라 500년간의 탈식민화, 토지개혁, 사회정의 투쟁의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토착 여성들이 행했던 중요한indispensable 역할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날 볼리비아 농민 여성 바르톨리나 시사 전국 연맹 Bartolina Sisa National Federation of Bolivian Peasant Women (FNMCB-BS 또는 바르톨리나스 Bartolinas)은 힘있는 단체로 성장했다. 2010년 바르톨리나 지도자 닐다 코파 leader Nilda Copa 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 되었으며, 플뤼니얼 입법회 Plurinational Legislative Assembly 에는 여성대표자가 전체의 30%에 이르렀다. 더불어 전체 볼리비아 의회 의원 중 43%가 여성이다. 또한 현 정치 행정부는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예를 들어] 2006년과 2008년 사이에 정부는 농촌 여성들에게 10,300개의 부동산 소유권을 분배했다.

온두라스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서방으로부터 비난받지 않았던 2009년 쿠데타가 일어난 이래, 자신들의 토지를 보호하려 했던 마야인 12명과 31명의 노동조합원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된 바 있다. 이 쿠데타에는 섬유와 의류 분야에서 일하는 11만 명의 여성들이 참여했으며, 당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미국의 ‘자유 무역’ 이자에 대항해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 Bolivarian Alternative for America 에 서명했던 마누엘 셀라야 Manuel Zelaya 정부에 맞선 쿠데타였다. 바르톨리나와는 달리 베르타 카세레스 Berta Cáceres 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토착민 출신의 환경주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사실이 2016년 그녀의 암살이나 2017년 딸의 목숨을 노리는 뻔뻔한 시도를 막지는 못했다. 정권의 테러 전략이나 노동자와 협상하기보다는 공장 문을 닫아버리는 섬유 기업들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2015년과 2017년 캐나다 소유의 길단 Gildan 공장에서 9,000명의 여성들이 2년간의 투쟁 끝에 노조 결성권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