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rlet | 주홍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광야로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진홍색 짐승을 탄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짐승의 몸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한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습니다.” 요한묵시록(17장 3절)의 전형적인 유대교-기독교 성경의 종말 부분에는 바빌론의 주홍색 매춘부the scarlet whore of Babylon가 나온다. 주홍색은 신선한 혈액 처럼 약간의 오렌지 빛을 띠는 붉은색을 뜻하며, 명칭의 유래인 페르시아어 ‘sarqilat’에는 매춘부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이도교적인 함의가 있다. 일설은 그 주홍빛 매춘부가 기독교 도입 전의 로마 이도교인를 상징한다고도 하나, 역설적이게도 13세기의 주홍색은 로마 가톨릭 교회 추기경들의 카속cassock[1] 의복과 성가대 카속 의복 색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당시만 하여도 주홍색은 연체동물의 적자색에서 추출한 염료로 만든 자줏빛 붉은색이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후the fall of Constantinople 더이상 이 염료를 사용할 수 없었으나 대신 케르메스kermes 벌레로 더욱 주홍색에 가까운 색을 생산했다. 이 색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왕과 왕자들이 착용했는데 가지각색의 빛깔이 탁월하고 색조가 풍부하여 명성을 얻었다. 부와 힘을 표현하는 색이었다. 그중 가장 뛰어난 스칼라토scarlatto는 베니스Venice의 폐쇄적인 길드에서 생산했다. 길드의 소속원들은 이 색을 다른 곳에서 만들 수 없게 하려는 마음에 이 염색 공정을 하면 백색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 보다 더욱 선명한 빛깔을 낼 수 있게된 것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 이후, 그리고 연지벌레cochineal 산업을 획득한 스페인이 멕시코에서 유럽으로 연지벌레를 처음 수출했던 1523년 다음 부터였다. 초기에 베니스 길드에서 반대를 했지만 주홍색은 ‘선택의 염료dye of choice’으로 거듭났다. 피의 색인 주홍색을 입은 추기경들은 오히려 이점을 소급하여 이 색상은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들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주홍색을 죽음과 연결짓는 것과 비슷하다. “징기즈칸 시대의 시인들은 피 같은 주홍빛 양귀비들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에 솟아나자 경이로워 했다.” 자신이 벌인 전쟁들을 축하하고 기리는  근대 앵글로색슨Anglo-Saxon의 세계에서는 1차 세계대전 시기에 강경 애국주의자 존 맥크레이 장군이 집필한 시 “개양귀비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2]”를 통해 양귀비와 죽음의 연결이 널리 퍼졌다. 한편 추기경들에게는 그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생겼다. 추기경들이 주홍색을 고수하자 모든 프로테스탄트 범주의 근본주의자들이 로마 카톨릭 교회 자체를 “로마의 주홍색 매춘부”로 언급한 것이다. 근대 미국의 뉴잉글랜드New England 청교도 같은 근본주의자들은 주홍색과 성적 타락의 연결고리를 재정립했다. 매춘부 대상의 사치금지령은 초반에는 지역에 따라 달랐는데 취리히Zurich와 함부르크Hamburg에서는 매춘부들이 주홍색 머리쓰개를 착용해야 했다. 청교도인에게 성경에서 비롯된 것은 절대적이었고 그들의 행동양식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통하여 잘 알려져있다. 작중의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은 간음Adultery의 상징으로 주홍색 A를 수놓은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헤스터는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낙인을 삭제하도록 허락하자 오히려 거절하여 그녀를 비난하는 이들을 상대로 전세를 역전했다.

훌륭한 소설가로서 호손은 그 상징을 피냄새가 나는 것 처럼 표현해서 작품의 요지를 제공한다. 유럽인들의 연지벌레 사용이 끝에 다다른 후 주홍색 염료 생산에 다양한 첨가제가 수반됐고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믿어지는 옥스블러드oxblood[3]도 포함됐다. 혼합에 들어간 다른 재료는 주석(양철 냄비도 권장됐다)과 퀘르시트론 황색quercitron yellow[4], 타르타르tartar 찌꺼기였다. 18세기 후반에는 영국-미국의 이중 첩자로 악명이 높았던 에드워드 밴크로프트 박사Dr.Edward Bancroft[5]와 같은 사람들이 다양한 혼합과 방법을 실험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주홍색은 기존에 케르메스 벌레로 만들던 주홍색과는 달랐고 ‘염색법이 알려진 빼어난 색깔 중 하나’였지만, 단일한 색상만을 표현하지 못해도 용인되었다. 그 결과 어떤 색은 아주 밝을 수도 있으며 다른 색은 아닐 수도 있게 되었다. 레몬즙에 천천히 졸인 주석은 ‘노란색으로 조금 상승’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1] 카속cassock: 성직자들이 입는 주홍색이나 검은색의 긴 옷

[2] 존 맥크레이(John Alexander McCrae, 1872.11.30-1918.1.28.캐나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캐나다 육군 중령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중에 친구를 잃은 맥크레이의 감정을 표현한 시집 <개양귀비 들판에서In Flanders Fields>가 유명하다.

[3] 옥스블러드oxblood: 「황소 피의 빨강」이란 뜻으로 거무칙칙하고 진한 빨강색을 표현한다.

[4] 퀘르시트론 황색quercitron yellow: 알칼리 추출액을 산성으로 해서 만든 침전물을 건조하여 황색 분말로 한 것.

[5] 에드워드 밴크로프트Edward Bartholomew Bancroft(1745.1.20-1821.9.7.미국): 미국에서 태어난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로. 네덜란드령 구이아나Dutch Guiana의 사탕수수농장에서 농작물 관련 연구를 하고, 화학적 염색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는 미국과 영국의 이중 첩자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