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afula | 바라풀라
11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서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면직물은 화폐로 취급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이 시기] 기니 해안과 내륙의 직물 제조업자 사이에는 내부 교역이 있었다. 또한 15세기 말까지 인도로부터는 특정한 직물을, 유럽에서는 염색된 울 직물을 수입했으며, 베닌 해안가의 만에서는 트레들 베틀로 지역수출을 위한 직물을 만들고 있었다. 대서양의 노예 무역은 거래를 더욱 다양하고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치열함의 한 가지 징후에는 카보베르데 섬[1]에서 완전하게 수직 통합된 면직물 산업의 발전이 있었는데, 이는 잉카 시대의 안데스 산맥에서의 생산과 같이 더 작은 규모로 이루어졌으며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섬에 들이닥쳤을 때 섬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던 이점은 섬에서 서식하는 오오칠Orchil[2]이라고 불리는 이끼였는데, 이 식물은 수익성이 좋은 청보라색 염료를 생산했고, 내륙의 아프리카인들의 지식과 직조 기술을 이용한 식물 적응 실험에 뒤따르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천에는 하얀 면직물도 있었지만, 그들의 특산물은 흰색과 부분적으로 염색된 파란색이 교차하는 여섯 가닥의 실로 만들어진 바라풀라 직물이었다. 이 직물은 섬과 기니 해안가 양쪽 모두에서 화폐가 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인도에 체류하던 포르투갈인이 인디고를 가져와 점차적으로 이를 대체할 때까지 직공과 방적공은 오오칠을 통해 필요한 염료를 만들었다. 그러나 카보베르데 섬, 특히 포고Fogo는 지리적 이점이 높았고, 직물 자체가 매우 중요한 무역 상품이었던 대서양 노예 무역의 발전에서 주요한 수출입항이 되었다. 이 섬이 발견된 지 100년 만에 노예 경제는 “상인의 감독 하에 성장하고 면화를 수확하고, 가공했으며 실로 짜고 염색했다”. 목화와 인디고 농장이 만들어지고 난 뒤 그들은 내륙의 바이누크 Bainuk와 카랑가 Karanga의 직공과 염색공의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복제해 훨씬 더 큰 스케일로 바라풀라 천을 재구현한다. 이 생산 실험실에서는 기존의 기술들이 활용되었다. 17세기 동안 아프리카-포르투갈인들과 유대인 난민 무역상들의 도움으로 가보베르데의 파노 pano[3](랩 wrap[4])가 기니 무역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화폐로 표준화된 그 직물은 그 후 유럽의 노예상과 지역 내에서 거래되었다. 이 직물로 금, 상아 또는 노예를 살 수 있었다. 17세기 한때 노예의 환율은 60 바라풀라였다. 아프리카 족장들은 그 직물이 무역을 통해 그들이 받은 물자들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바라풀라의 생산은 노예 거래를 위해 이 직물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노예제도가 매우 중요한 국제 무역에서 섬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한동안 회사 파라마라냥 Pará-Maranhão은 기니 해안에서부터 아마존과 마라냥 Maranhão[5]의 노예 무역을 독점했다. [그것은] 직물을 만든 노예들을 통제하고 포르투갈의 정부 허가를 취득하여 ‘노예 사업’에 진출한 카보베르데와 비사우[6]의 직물 산업 소유주들이 축적한 자본을 이용하여 형성되었다. 18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이 무역은 계속되었다. 이 시장을 덥석 문 것은 첸나이 Chennai[7]에서 온 이니리iniri라고 불리는 인도의 직물이었다. 이니리의 패턴은 [바라풀라와] 매우 비슷했지만 흑백이었다.
[1] 카보베르데 Cabo Verde: 아프리카 서쪽 끝, 베르데곶 서쪽에 있는 공화국으로 열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456년 포르투갈 인에 의해 발견된 후 식민지화되어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하였다.
[2] 오오칠 Orchil: 자주색의 물감, 그것이 채취되는 지의류의 총칭으로 Roccella 종의 지의류에서 얻을 수 있는 적색색소.
[3] 파노 Pano: 털, 천, 옷감, 타월, 주름을 이루고 있는 넓게 재단한 옷 부분
[4] 랩 wrap: 여성이 장식보온용으로 어깨에 두르는 천, 두르다
[5] 마라냥 Maranhão: 브라질 북동부에 있는 주도
[6] 비사우 Bissau: 기니비사우의 수도, 1446년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발견된 뒤 포르투갈의 식민지이자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7] 첸나이 Chennai: 인도 타밀나두 주의 주도. 항구 도시로 인도 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염색 공업이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