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her | 깃털
머리부터 윗부리 끝까지 능선을 따라 아름다운 노란 줄무늬가 이어져 있다. 같은 너비의 더 진한 노란색 줄무늬는 얼굴에서 부리 끝까지 직각으로 떨어진다. 이어 그 절반 넓이의 검은 줄무늬는 능선에서 직각으로 떨어지며 가장자리를 따라가다 부리 끝으로부터 반 인치 안쪽으로 좁아진다. 나머지 부분은 밝은 빨간색이다. 아랫부리에는 노란 선이 없으며 윗부리와 같은 모양으로 검은색과 빨간색이 펼쳐져 있다. 차이라면 끝에서부터 1인치 정도의 위치에 검은색이 있다는 것이다. 윗부리의 짙은 노란색 줄무늬와 맞닿는 줄무늬 부분은 하늘색이다. 이 부리가 가진 모든 찬란한 색깔들이 새의 몸체 깃털과 눈 주변 피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파란색을 제외한 모든 색상은 본래 갖고 태어났다. 파랗게 나타나는 부분은 실제로는 투명한 하얀색이며 그 내부의 파란색 엷은 피부 조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 뛰어난 부리는 죽음과 함께 색이 바래지고 삼사일 내로 고유의 색을 잃는다.
스페인 수도승은 잉카문명인들이 정글 위로 “새와 같이” 날 수 있다고 보고했으며, 스페인 종교계 권위자들은 날개로 짠 직물들의 샤머니즘적 능력을 크게 두려워하고 그들을 파괴할 것을 명령했다. 스페인인들은 쿠스코Cuzco인근의 잉카 군부대에서 10만 마리가 넘는 양의 말린 새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날개는 제복에 사용되기 위해 보관되어 있었으며 군사들은 그 날개로 봉급을 지급받았다.
깃털 예술 작품은 남미의 많은 고대 사회에서 사용되었으나 주로 식민지 이전pre-Columbian 페루와 현재의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보존되었다. 마야 초기부터 불운의 아즈텍 문명에까지 이르러, 귀족과 사제, 장군들은 그야말로 깃털들을 숭배했고 이들로 망토나 머리장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완장을 즐겨 꾸몄다. 목테쭈마Moctezuma황제는 이국적인 종種으로 이루어진 자기만의 사육장을 소유했는데 새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300명의 하인이 필요할 만큼 규모가 컸으며, 목테쭈마만을 위한 깃털 예술가 단체도 후원하고 유지했다. 식민지 이전의 셀 수 없이 많은 깃털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여덟 개뿐이며,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목테쭈마의 머리장식물로 알려진 작품이다. 길이 166cm에 넓이 177cm로 상당히 거대하며, 케트살Quetzal[1]의 녹색-금색 꼬리 깃털 장식 500개로 구성되었고, 흰색, 파란색과 붉은색 깃털 밴드와 작은 금색 로제트로 장식됐다. 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éz[2]가 스페인 침략 중에 목테쭈마를 시해한 뒤 그의 왕관 (뻬나초 Penacho)은 스페인인이 압수했다. 왕관은 18세기에 티롤Tyrol에 위치한 암브라스 성Ambras Castle의 창고 상자에서 다시 발견됐고 비엔나 민족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성의 저장고에 있었던 1566년부터, 식민지 이전 남미였던 이 머리 장식의 기원은 잊혔고 “무어인의Moor-ish[3]모자”라 불렸다.
1986년부터는 아즈텍 국가의 후손들과 멕시코 정부에서, 비록 이 장식이 목테쭈마의 소유였다거나 모든 날개들이 진품이라고 인증 받진 못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에 반환을 요청했다. 반환 요청의 진행 과정에서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 전 관장 올리버 파겟Oliver Paget은 오스트리아가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유럽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합법적인” 방식으로 대부분의 소장품을 얻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위 장식의 복제품은 멕시코 혁명기의 국가상징으로 제작되었으며, 목테쭈마의 거처 유적 위에 건립된 멕시코시티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2011년부터는 이 왕관을 비엔나 인류학 박물관에서 일시적으로 대여해 오는 걸 고려 중에 있다. 아직 운송 문제, 의사소통 문제, 정치 법률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협상은 현재 진행중이다. 파라과이의 아요레오Ayoreode[4]족장들이 패배하고 선교 사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모피와 깃털들을 남기고 떠났다. 그들의 입을 권리와 자부심을 잃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