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
부스타만테Bustamente의 반란으로 알려진 페루 우앙카네Huancané[1] 지방의 캄페시노Campesino(농민) 폭동이 올해[1866년] 시작되었다. 인도의 새로운 인두세[2]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하나의 지푸라기(the straw that broke camel’s back)+각주’였다.(영국인 울 상인 윌리엄 리케트William Ricketts가 페루에 도착한 해인) 1852년에 [제정된] 민법이 페루 남부의 인디언 공동체의 부담과 분노를 가중시켰다. [이 법은] 인디언에게 제한된 시민권을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전통적인 집단적 존립권에 대한 공격이었고, 그들을 개별적인 계약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울의 수출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던 무렵 민법도 제정되었다. 그 결과, [스페인의] 토지 보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히스패닉화된 대농장(haciendas)과 인디언 농민 소유지(estancias)의 비율이 거의 비슷해졌다. 1860년대에 스페인의 140개의 공증된 토지 매입이 이루어졌고, 1867년에 정점을 찍었다. 이것은 정치-문화적 공세로 진행되었는데, 이로 인해 평등한 대우를 받았던 특권층 원주민들도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역학 관계는 군사적 약탈외에도 “값싼 울을 찾아 고산지대를 돌아다니는 상인들의 증가”를 의미했는데, 값싼 양과 알파카의 울은 ‘계약’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허울뿐인 계약이었다. ‘값이 싸다’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울 상인 대리인(울 중개상)이라 할 수 있는 레스카티스타 rescatista는 ‘대출’이나 값비싼 영국 상품을 선금으로 지급하였고, [생산된 울의] 양이 부족하거나 품질이 나쁘다고 주장하며 대신 땅이나 동물들을 빼앗았는데, 그들의 배후에는 무장한 세력이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양털 가격이 높을수록 이 과정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것은 페루의 엘리트들과 (이후 국가 채무 불이행으로부터 페루인들을 ‘구제’하게 될) 영국의 금융자본가 모두 수출 주도 경제가 그들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인디언 문제가 국가적으로 시급한 우선순위는 아니었지만, 농업자본가, 상인, ‘문명의 대리인들’은 인디언 산악지대의 재 식민지화를 열망하는 정치인들의 관심을 요구했다.” 페루 정부는 “테러에 관한 법률”을 사용하여 봉기를 진압하고 테러 상황를 설계했다. 리마에서 ‘인디언 사회 동맹 Sociedad Amiga de los Indios’을 결성한 떠돌이 상인들의 ‘대령(colonel)’이라 불렸던 후안 부스타만테[3]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인디언 사회동맹은 ‘원주민’의 ‘후진성’에 대해 우려해 왔지만, 부스타만테는 공동체를 자유민으로도 시민으로도 간주하지 않는 이러한 조건이 가지고 있는 의도와 물질적 영속화에 반대했다. “인디언의 갱생에 반대하고 선의의 모든 노력을 좌절시켰다… 인디언의 무지와 굴욕, 포기를 악용하여 그들의 부를 축적하였다.” 그의 희망은 ‘자발적인’ 봉기가 이러한 악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란군은 제대로 무장하지 못한 채 푸노Puno[4]의 군대에 패배했다. 부스타만테와 60명의 인디언들이 처형되었고 “반란을 일으킨 고원지대 마을은 전멸되고, 주민들은 카라바야Carabaya[5]의 푹푹찌는 정글에 있는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1881년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군에 맞서 싸운 원주민들은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이 상황을 그들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여, 1882년부터 1884년까지 반란을 지속했다. 결국 대농장 관리자들이 암살되고 ‘협동자’ 대농장haciendas도 점령되었다. 1884년 마침내 게릴라 지도자들이 붙잡혀 처형되었지만, 그 반란은 대농장 소유주들이 원주민 지역사회를 다루는데 있어 더욱 신중해지게 만들었고, 부스타멘테 반란을 촉발시킨 대농장이 확장되는 사태를 막았다.
[1] Huancané는 페루 Huancané 지방의 수도로 티티카카 호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Huancané의 7,000 명의 거주민 대다수는 Aymara를 사용합니다
[2] 인두세(人頭稅, tax per head; poll tax)란 사람 머릿수에 맞추어 걷는 세금을 말한다. 영국 역사상 1380년에 부과된 인두세가 가장 유명한데, 이는 1381년 와트 타일러가 이끈 농민반란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3] Juan Bustamante Dueñas는 페루의 원주민 지도자로, 사회 정의를 요구하며 1867년부터 1868년 사이 푸노에서 농민 반란을 일으켰다.
[4] 푸노(Puno)는 페루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푸노 주의 주도이다. 푸노 시는 티티카카 호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푸노 지방과 푸노 도의 중심 도시로 인구 약 100,000명을 가지고 있다.
[5] 카라바 야 지방은 페루 남부 푸노 지방의 지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