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은
8~13 세기에 구성되고 수집된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에는 포목[1] 도매상들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그 이야기 안에] 의복 자체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의복들에는 종종 금이나 은사가 들어가 있었다. 호머의 작업들과 아시리아 조각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이미 이러한 금속들의 활용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도 다수의 전문적인 장인을 통해 그러한 실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예술이었다. 일반적으로 ‘금’사金絲라 하면 은에 [금을] 도금한 것이었는데, 도금에 사용된 은 자체는 순은이었다. 은사銀絲는 [은을]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진 실 뽑는 전용 판을 통과시킨 다음 윗 부분이 둥근 모루[2] 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들겨 순은 또는 금으로 도금된 은으로 된 둥근 바bar 형태를 만든 후에 이것을 가늘게 실로 뽑아낸 것이었다. 또한 실크나 리넨과 같은 직물을 짜는 실을 가운데에 두고 납작한 금속소재를 단단히 감싸서 은사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들은 비잔틴 제국과 후기 유럽에서 부자들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옷에 사용되었다.이러한 저속한 화려함은 직물 자체를 크게 변형하며 옷감을 지나치게 무겁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이를 모방한 모조 실들이 개발되었다. 멤브레인 골드와 멤브레인 실버라 불리는 모조실을 개발한 결과 훨씬 더 많은 직물에 금속소재가 사용되게 되었고, 의상 한벌에 들어가는 고가의 금속 사용을 줄일 수 있었다.
직물의 역사에서 은의 진정한 의미는 은이란 금속 자체의 채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1545년에 거의 산 전체가 은 광석으로 만들어진 광산(Cerro Rico)[3]이 지금은 볼리비아Bolivia에 속지만 당시에는 페루 부왕령에 속했던 포토시Potosí에서 발견되었다. 이 엄청난 은광은 당시 부의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라마와 노새의 등에 짐을 싣고 팔던 상인들은 마치 입[4]에서 피를 흘리는 듯 은을 쏟아내는 포토시 광산에서부터 아리카Arica의 항구로 은을 실어 날랐다. 긴 항해 끝에, 유럽에 도착한 은괴는 유럽의 전쟁과 평화 그리고 진보를 위한 자금줄이 되었다.” [여기에서] ‘진보’란, 유럽 자본주의의 시작과 세계 무역 패턴들의 변화로부터 이루어졌다. 수억 페소에 달하는 은이 채굴되고 정제되어 포토시 조폐국(Casa de la Moneda)에서 주화로 만들어졌다. 생산과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광산 소유자들은 노예 노동(mita)이 필요했다. 원주민과 납치된 아프리카 노예들의 짧은 노동 생활은 유례없이 잔혹했다. 그래서 1659년 페루의 총독인 레모스 백작Court Lemos이 스페인 국왕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세상에 이보다 더 지친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폐하께 분명하게 전달함으로써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자 합니다.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은 은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피와 땀입니다.” 마드리드의 서인도 식민청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들은] 광산에서 행해지는 강제 노동에 대한 금지에 반대했다. [그 결과] 광산 노동 기간인 1556년부터 1783년 동안 80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채굴된 은은 인도의 직물 생산자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유럽 무역상이 제공 할수 있게 했다. 이전에는 그들이 인도의 직물 생산자들에게 제공할 것이 거의 없었다. 은이 금보다 순도가 낮다고 여겨졌으나, 중동, 인도, 중국 전역에서 [이미] 주화로 사용되고 있었다.“지금까지의 벵골의 국제무역에 관하여 말하자면, 국제 시장에서 벵골의 직물과 실크에 막대한 수요가 있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구매자들을 매료시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650년에서 부터 1757년 사이의 벵골은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수입 상품 시장은 엄격하게 제한되었기 때문에 유럽인과 아시아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무역상은 벵골에서의 수출 상품을 조달하기 위해 귀금속, 주로 은을 가져와야 했다. 따라서 17세기와 18세기 초반에 은이 벵골로 유입된 것은 벵골이 세계 나머지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유리한 위치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역의 범위와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하는 중개인으로서 유일무이한 역할을 했던 인도 면화 산업과의 이러한 접촉은 유럽인, 특히 영국인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해군력과 아프리카 노예를 사용하면서 면직물의 생산법을 모방하고 산업화하여 세계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자극했다.
한편, 광산에서 노예를 착취하여 벼락 부자가 된 포토시 광산 관리자들은 –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 마냥the world their oyster[5]– 전 세계에서 고급 직물을 수입하고 마을을 말그대로 은으로 도배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급 직물은 안데스 은으로 만든 은판Solid-cut sheets을 [수출하여] 스페인에서 금속 방적사Metallic yarn[6]로 만들고 포토시에 다시 역수입된 원사로 제작했다. 전통적인 기술과 미감(good taste)을 가지고 있던 원주민 방직공들은 열정적으로 하지만 아껴가며 실크, 리넨, 또는 면 코어 얀(core-yarn)에 은사를 감았고, 때로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대안적으로 노란색과 흰색 실을 번갈아 사용하기도 했다. 사진과 컴퓨가 등장하면서, 은은 더 이상 가치와 아름다움 때문에 단순하게 갈망하게 되는 금속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변했다. 은은 뛰어난 전기 전도체이고, 사진 처리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며, 컴퓨터와 전자 장비에는 물론 영화제작 과정에서도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2003년 스포츠 패션 카탈로그에 소개된 란제리와 ‘액티브 웨어’에는 “은 이온이 직물에 내장되어 있어 냄새를 방지하고 옷에서 세균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쓰여있다
[1] 포목(布木): 베와 무명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모루: 단조나 판금작업 때 공작재료를 얹어놓고, 해머로 두드려 가공하는 대
[3] Cerro Rico: 볼리비아의 산이며 스페인어로 “rich mountain”이며 Cerro Potosí 로 불리우며 볼리비아 도시 Potosí 근처 안데스 산맥에 있는 산
[4] 광산 입구를 은유적으로 표현
[5] the world is thier oyster: “the world is your oyster”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The Merry Wives of Widsor’(윈저의 행복한 아낙네들/17세기) 극본에 처음 등장했으며 세상은 당신의 굴이라는 말은 당신에게 기회와 능력이 있기때문에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거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 메탈릭 얀(Metallic Yarn):가느다란 금은실 (金銀線)등을 평평하게 압연한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