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박수지, 신보슬 큐레이터
게스트:
Haily Grenet
서울에 기반을 둔 프랑스의 독립 큐레이터이다. 에콜 뒤 루브르에서 미술사 교육을 받았으며, 라 소르본 파리 4세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의 비영리 아트 센터뿐만 아니라 페로탱 갤러리, 주스 엔트레프라이즈, Gb 에이전시와 같은 파리의 몇 개의 미술관과 아트 센터에서 일하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2013년부터 서울로 옮겨 토탈현대미술관(로드쇼, 더 쇼 머스트 고 온, 안토니 문타다스 회고전, 재팬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과 협업하고 있다.
–
톹라이브는 여러나라의 큐레이터들을 초대하여 각 국의 현장 상황과 다양항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관련학과 대학원생 및 예술계 종사자들은 현장의 실무를 익힐 수 있고, 큐레토리얼 역량을 강화 시킬 수 있도록 돕습니다.
호스트:
박수지, 신보슬 큐레이터
게스트:
Jonatan Habib Engqvist
큐레이터 철학 및 미학 이론에 대한 배경을 가진 작가이자 큐레이터, 교사입니다 . 2021년 Ord&Bild의 공동 편집자이자 온라인 저널 tsnoK.se의 편집자로서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활동합니다.
–
톹라이브는 여러나라의 큐레이터들을 초대하여 각 국의 현장 상황과 다양항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관련학과 대학원생 및 예술계 종사자들은 현장의 실무를 익힐 수 있고, 큐레토리얼 역량을 강화 시킬 수 있도록 돕습니다.
‘티오티티비 뮤직: 인 더 뮤지엄 라이브’는 다음 전시를 준비하며 잠시 비어 있는 미술관 내에서 펼쳐지는 뮤지션들의 라이브 현장입니다. 토탈미술관 곳곳의 흥미로운 건축요소와 뮤지션의 음악이 만난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매달 한 명의 뮤지션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두 곡을 선보입니다. 지금 미술관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티스트 :
오헬렌
노래 :
413
기타:
임성구
오헬렌 훌륭한 연주자는 아니다. 대신, 하고 싶은 이야기의 순서를 정하고, 언제, 어떤 어조로 이야기할지를 안다. 어떤 음악을 하고 좋아하는 지 설명해야 할 때, 그래서 막막해질 때는 좋아하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나열해 보곤 한다. 작지만 집중되는 소리, 대단하지 않은 것, 순간적인 것 그래서 사라지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 말 대신, 풀리지 않는 감정 그리고 노래 같지 않은 노래. 어쿠스틱 사운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한다. EP 〈OH〉를 시작으로 413(2020), Pause(2021), The way home(2021) 등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담백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영상
촬영: 주상언, 최윤석
편집: 최윤석
음향 @씨티알싸운드
레코딩: 이은호
레코딩 어시스턴트: 이현준
진행: 양현석
사운드총괄 믹싱마스터링: 황현우
믹싱 마스터링 어시스턴트: 박진호
토탈미술관
큐레이터:신보슬
코디네이터: 이하은, 정수언, 여성경, 선희라
후원:
한국박물관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
TOT TV(톹티비)는 토탈미술관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국고 보조금을 지원받아 수행한 ‘2021년 사립박물관 미술관 온라인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의 결과물입니다.
*이 전시는 온라인에서만 진행됩니다*
⟪비트윈 파티클즈 앤 웨이브즈(Between Particles and Waves)⟫는 전 세계 도시의 공공 공간에서 예술 활동을 해오고 있는 예술가들을 가상의 한 장소에 모은 최초의 전시다. 이 전시의 기획자이자, 유명 시각예술가 브래드 다우니(Brad Downey)와 얀 보만(Jan Vormann)은 마인크래프트 안에서 28,000,000×28,000,000×256블록 규모의 가상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 장소ㅣ 마인크래프트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서버: gamehosting.it:25580
관람 시간ㅣ 24시간
11/07(일) 온라인 전시투어 *실황 영상
한국 투어 가이드:
신보슬 (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Between Particles and Waves – Exhibition: Tour in Korean language
기획:
브래드 다우니(Brad Downey), 얀 보만(Jan Vormann)
콘텐츠 크리에이터:
살바토레 신케그라나(Salvatore Cinqwegranak.a. Surry, 이탈리아)
참여 작가 :
양자주(Jazoo Yang, 한국), 알렉산드르 파르토(Alexandre Farto a.k.a. VHILS, 포르투갈), 얀 보만(Jan Vormann, 덴마크/프랑스), 에스더 스토커(Esther Stocker, 오스트리아), 옥타비 세라(Octavi Serra, 스페인), 미쉘 요한슨(Michael Johansson, 스웨덴), 디오고 마차도(Diogo Machado k.a. Add Fuel, 포르투갈), 존 페크너(John Fekner, 미국), 브래드 다우니(Brad Downey, 미국)
협력 기관 :
토탈미술관(한국, 서울), 구겐하임컬렉션(이탈리아, 베니스), 푸쉬킨미술관(러시아, 모스코바), 104Paris(프랑스, 파리), 대니즈 갤러리(중국, 상하이), 디아트뮤지엄(러시아, 모스코)
협력 큐레이터:
신보슬(토탈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한국), 엘레나 미나렐리(Elena Minarelli, 베니스 구겐하임 컬렉션 책임 큐레이터), 예브게니아 키슬레바(Evgenia Kiseleva, 푸쉬킨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러시아) 라도슬라프 메한지이스키(Radoslav Mehandzhiyski. Sofia Art&Culture 디렉터), 앨리슨 양 징(Allison Yang Jing, 독립 큐레이터, 홍콩), 박수지(독립 큐레이터, 한국)
마인크래프트에서 건축물을 짓는 과정은 현실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오랜 기간 전시 공간을 시공하는 과정은 마인크래프트 유저 사이에서 잘 알려진 유튜버 서리(Surry)의 계정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 전시는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액세스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관객이자 참여자다. 전시 기간중 미국, 러시아, 홍콩, 서울 등 각 도시에서 협력하고 있는 기관과 각 국가의 언어로 된 가이드 투어가 진행된다. 그중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모스코바의 푸쉬킨 미술관, 시드니 현대미술관, 서울의 토탈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 관계자들이 협력하여 전시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개별 국가에 따라 투어 시간대와 투어 참여 방법은 상이하다.
이 전시에는 전 세계 9명의 참여작가가 각각의 작품의 아이디어, 기술, 내용과 형식이 독창적으로 적용된 작품을 가상세계 안에 구현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한국 작가 양자주(Jazoo Yang)는 2015년 부산의 못골이라는 재개발지역의 한 주택에 했던 작업을 마인크래프트에서 부활시켰다. 주택의 전면을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지장으로 가득 채웠던 작업은 고스란히 새로 건축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유한한 작업의 새로운 맥락을 일깨운다. 애드 퓨엘(Add Fuel)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포르투갈의 시각예술가 디오고 마차도(Diogo Machado)는 마인크래프트의 공중에 입방체의 조각을 구현했다. 관객은 마인크래프트 상공을 날아다니며 이 조각을 모든 방향에서 조망 가능하다.
이 전시의 공동기획자이자 독창적이고 유머러스한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시각예술가 브래드 다우니(Brad Downey)는 2019년 7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조각을 목재로 제작했다. 이 조각은 그로부터 1년 뒤 2020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방화 목표물이 되어 소실되었다. 브래드 다우니는 멜라니아 조각상을 청동으로 재제작해 다시 설치했다. 마인크래프트 안에서 다시 목재로 제작된 멜라니아 트럼프 조각상은 여전히 마인크래프트 안에서 방화에 노출되어 있다. 스페인의 시각예술가 옥타비 세라(Octavi Serra)는 모래도, 돼지도, 심지어 원형의 형태조차 네모의 입방체로 구성된 세계 안에서 시력 테스트를 하게 하는 작품을 구현했다. 마인크래프트의 입방체가 현실의 1미터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옥타비의 작품 속 기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높이 40미터(입방체 40개), 너비 24미터(입방체 24개)의 벽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에서의 시력 테스트의 흥미로운 점은 거리와 시력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무한한 입자(particles)와 물결(waves) 사이를 수 년간 머무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단순히 1과 0이 빠르게 깜박이는 것의 결과물을 보는 일에 불과하지만, 마인크래프트의 시스템 안에서는 공간의 모든 입방체가 사용자의 것이 된다. 마인크래프트 내의 세계에서는 모든 숲, 바다, 사막, 심지어 공기까지도 입방체로 되어 있다. 이렇게 두 기획자가 입방체로 전시 공간을 구축해온 지난 4개월 동안, 마인크래프트 내에서는 24년의 시간이 흘렀다. 관객이 선택과 결정을 주도할 수 있는 세계에서의 전시는 어떻게 지속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관련 사이트 정보
웹사이트: betweenparticlesandwaves.com
유투브 계정: Betweenparticlesandwaves
디스코드(Discord): Betweenparticlesandwaves #3465
레딧(Reddit): Betweenwaveparticles
이메일: betweenparticlesandwaves@gmail.com
Judith Fischer | 주디스 피셔

몇 달 전, 이네스Ines는 내게 작고, 빛나고, 털로 뒤덮인, 색색의 공으로 가득찬 꾸러미를 주었다. (“제발 그 꾸러미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마!”라고 이네스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 상자를 내 작업실 가장 높은 선반 위에 올려놓고 거기에 그 상자가 제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나는 대여물품으로, 밝게 염색된 양모 공, 샤먼의 실, 잠재성, [천]수리 키트가 있는 더미를 받았다.
(나는 갑자기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 기억은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한 것인데, 나는 어머니의 재봉실에서 몇 시간씩 혼자 남아있곤 했다. 거기에서, 나는 ‘포르트-다fort-da’[1] 놀이를 위해 모든 도구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도구는 수많은 색의 실들과 파프Pfaff[2] 재봉틀에 맞도록 개구부가 넓게 제작된 나무나 플라스틱, 종이로 된 실패들이었다.)
[모든 치료의] 치료법은 치료사가 되는 것이다. 치유되는 과정에서 그도 치유사가 될 것이다. [3]
The cure is to become a curer. In being healed he is also becoming a healer.
프랑크푸르트에서 세계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4]에 대해 연구할 때, 민족학 연구 보고서에서 놀라운 그림을 발견하여 그 세부를 사진으로 찍어놓았다.[1]
[나는] 이것을 무엇과 일치시켜야 하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 자신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패턴을 찾을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그것은 생각을 감추거나 몰입하거나 눈꺼풀을 통해 보는 것일까? 모든 것을 뒤덮고 있으며 내가 질서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뒤죽박죽인 격자 선들을 보는 것일까?
(모든 것이 모호하고 느슨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에 잘 보이지 않는 무늬(요라 케네yora quené)를 입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나는 검은 가죽 의자에 않아 꽃장식 앞에 놓인 유리 테이블에서 글을 읽으며 몇 번의 긴 오후를 보냈는데, 그는 이런 의미에서 우주 영역 전체, 즉 더 높은 세계가 무늬, 격자 작품, 그리고 틀로 이루어져 있다고 쓰고 있다.[5]
작은 파란색과 보라색 벌새의 줄 무리가 건물 위로 내려온다. 새들은 그들의 부리로 작은 유리관을 옮기고 있다. 새들은 그것(유리관)들을 조용히 얹어진, 그들이 자리잡은 가늘고 빛나는 망/둥지 위에 떨어뜨렸다.[6]
연구원으로서 현지에 체류하는 동안 낯선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그는 썼다.
그래서 여성 무속인은 어려운 환영, 즉 엄청난 준비를 요하는 활동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령, 질병의 원인이나 질병의 요인,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보고 싶어한다. 무당은 유령이 되고 싶어하고, 죽은 자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의 여행에서 동행을 찾아야 한다.[7]
질병의 원인에 대한 무속적 개념[8]은 다음과 같다. 먼저 공포(수스토susto[9], 아니라테aniraté 또는 라케티raqueti라고 불림)가 있고, 그 결과 나타나는 신체의 “개방”을 통해서만 상상의 병원성 물체가 그 사람을 침범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혼을 강요하고, 괴롭히고, 위협하여 병을 유발할 수 있다.
어떻게 그들은 이런 존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그들은 어디에 거주/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견해와 사상의 구조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줄까? 그들은 거기에 머무르는 것일까, 아니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까, 또는 그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걸까?
(당신은 그것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충분치 않다.)
이것은 얽혀있고, 감싸져 있고, 집어삼켜져/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무늬가 있는 보호막으로 그녀를 에워싸고 있다. 술에 취한. 여행. 동물. 깃털들. 밝은 색상으로 환각을 일으키는 것. 죽은 사람을 천으로 싸서 덩굴로 묶는 것. 죽은 덩굴로 만든 환각을 유발하는 술, 리아나주liana drink.
(이렇게 해서 나는 언어로 된 그림 뭉치를 훑어본다.)
무속 행위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퍼뜨리기, 느슨하게 하기, 나누기, 뿌리치기, 씻어내기, 갈기, 쫓아내기, 파괴하기, 떼어내기, 내쫓기, 사지를 자르기, 죽이기.
그곳에서 행해지는 의식과 통과의례(또한 예를 들자면, 지위에 오르거나, 새로운 직책을 획득하거나 또한 이 시기에 정신적으로 연약해졌을 때[10] also, for example: attaining a position, new status & being most vulnerable at these times)에서, 심지어 장례의식에서도 이제 직물이 사용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시신을 감싸는 데 쓰이는 수의는 불임 여성이나 폐경을 겪은 여성만이 짤 수 있다.[11]
이 조건이 어떤 더 나은 효과를 내는가?
(내가 읽기로 부처Buddha는 죽은 자의 옷만 입으라는 영적인 충고를 했다.)
나는 연구에서 유명하거나 고전적인 직물 무늬의 이름 없는 창조자들이 유령 예술가ghost artist라고 불리는 것을 배웠다.
(최근 비트겐슈타인을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무속인의 양모. 남은 자투리 천. 환자의 몸 위로 양 털실을 찢는 의식. 성스러운 매듭. 노끈. 줄. 선들의 연결. 샘플들try-outs. 시간의 실. 운명의 실. 아리아드네의 실. 봉합선. 너무 많다.
[1] 포르트-다fort-da 놀이: 아이는 ‘포르트fort’라고 외치며 실패를 멀리 던지고, 실패에 달린 실을 다시 끌어당기면서 실패가 다시 보이면 ‘다da’라고 외친다.
[2] 독일의 재봉틀 제조업체
[3] Taussig, Michael. Shamanism, Colonialism, and the Wild Man: A Study in Terror and Healing.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 447.
[4] Warmest thanks to Isabella Kresse for her hospitality in Frankfurt in February 2012.
[5] Illius, Bruno. Ani Shinan: Schamanismus bei den Shipibo-Conibo (Ost-Peru) (Ethnologische Studien). German. p. 12. Berlin-Münster: Lit Verlag, 1991. p. 162.
[6] Illius, p. 58.
[7] Eliade, Mircea. Schamanismus und Archaische Exstasetechnik. Berlin: Suhrkamp Verlag, 1975.
[8] Illius, p. 179.
[9] 수스토susto: 수스토는 주로 라틴아메리카 문화들 사이에서 문화적 병이다. 라주크 외 연구진이 “감정적 외상이나 타인에 의한 외상적 경험에 의한 만성적 체질환”을 겁에 질리고 있는 상태로 기술하고 있다. 수스토는 한 민족 내에서 발생하고 인지되는 증상인 문화 결합 증후군으로 분류된다. 이 질병이 가장 흔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 중에서 서스토는 정신 공격의 사례로 개념화 될 수도 있다. 지속성의 증상은 신경증, 거식증, 불면증, 무일푼증, 발열, 우울증, 설사를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0] Fraser-Lu, Sylvia. Handwoven Textiles of South-East Asi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0.
[11] “Death blankets can only be woven by women who are barren or past their childbearing years.” In: Sylvia Fraser-Lu, p. 78.
1932


4월 3일 구소련USSR(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이바노보Ivanovo[1] 공업지구 비추가Vichuga 면직물 단지에서 [노동자들의] 봉기가 시작됐다. 매달 첫날에 있던 식량 보급이 중지된 날이었다. 이미 노동자들은 1927년 ‘사회주의적 경쟁Socialist competition’[2]에 대항하는 파업에서 무력을 보여준 바 있었다. 비밀경찰OGPU[3]은 전년도 수차례 발생했던 집단결근abenteesim과 불안한 조짐을 [상부에] 보고해왔고, [도심으로 밀려든 사람들로 인해 높아진] 비싼 집세도 걱정하고 있었다.[4] 파업의 시작은 노긴 공장Nogin Mill의 모든 남녀 직공과 방적공들이었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단체로 모이지 않고 소규모의 모임으로 분산되도록 노력했으나 저항을 샀고 샤고브 1번 공장Shagov Mill No.1 노동자들이 파업에 합류하며 다음날 기계 가동을 거부했다. 크라스니 공장 노동자Krasnyi Mill는 행진을 하며 지지를 나타냈다. 크라스니의 남성 상관들은 주로 여성이었던 부하들에게 아동돌봄 시설을 제공해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직공 총회의에는 1만8천여명의 노동자가 참여하였다. 노긴 공장을 보호하려 했던 공산당내 청년 동맹Komsomol 회원들[의 의사]는 무시당했고, [공장] 기계는 부서졌으며 파업에 비협조적인 사람들은 억압을 받았다. 다음날 러킨Lurkin이라는 한 직공이 비밀경찰에 체포되자 모든 공장의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나와 시위를 벌였다. 러킨을 석방하라는 요구는 경찰서를 수색하고 서장을 구타하고 비밀경찰 건물을 점거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결국] 경찰이 발사한 실탄으로 한 직공이 사망했으나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들의] 피켓과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파업에 불참한 노동자는 쫓겨 나게 되었다. 노긴, 샤고브, 크라스니 공장 출신의 세 여성과 두 남성이 5인 위원회를 설립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비서관 카가노비치Kaganovich[5]는 모스크바Moscow에서 다수의 경찰과 비밀경찰을 데려왔다. 4월 11일 2천 명의 노동자들은 모여서 위원장 칼리닌Kalinin[6]에게 전보로 현재 상황을 전달하기로 했고 [5인 위원회가 그 전달 메시지를 작성했다]. 파업이 지속될 수 없을거라 생각한 지역 공무원들은 3일 전부터 전전긍긍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다시 돌아가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양해나 양보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7] 다음날 [고위 공직자들을 대동하여 온] 스탈린Stalin[8]의 대리인 카가노비치는 노긴 공장에서 4천 명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걱정거리를 처리해내겠다 약속하며 노동자들이 주로 제기했왔던 불만을 해소하고자 했다.[9] [이틀 후] 4월 13일이 저물어갈 무렵 배급이 다시 시작되고 식품 대체 공급이 허가되었다. 시골 농업 ‘소련 바자회Soviet bazaars’가 대체 공급의 대안이었으며 노동자들은 텃밭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 [텃밭 농업은] 노동자가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갖기 위해 유지해왔던 전통적 권리였다. 1880년대에도 모스크바 섬유 공장의 새로운 노동자는 시에서 대여하는 시민 농장을 가꾸곤 했다. [몇 구역에서] 선별적인 억압이 있었지만 머지않아 1937년에는 전국 단위로 [시민농장이] 실행되었다. 5년이 지나 1942년 여름 키예프Kiev의 섬유 노동자들은 디나모 키예프 축구팀Dynamo Kiev을 창설한다. 독일 나치 점령자들은 국가 군인 [축구]팀과의 게임을 주선했다.“경기장은 군중으로 가득찼다. 점령군이 첫 골을 넣자 디나모 팀은 미친듯이 열중하여 동점을 따내고는 게임을 주도하기 시작했고, 경기장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2대1로 전반전을 마친 휴식시간이 되자, 나치 장교가 키예프 팀의 탈의실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우리는 점령지에서 한번도 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당신들이 이긴다면 처형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선수들은 경기로 돌아왔다. 몇분 새에 다니모의 셋째 골이 터졌다. 넷째 골도 이어지자 관중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갑자기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켰다. 군인들은 아직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들을 바비야르Babi Yar 협곡[10]으로 끌고가 총살했다.
1928년과 1933년 사이의 디자이너, 역사가와 예술가, 비평가들은 무엇이 직물 디자인 구성에 적절한가에 대해 계속 논의했다. 소련의 직물은 이념적인 영향력이 있다는 점에서부터 모든 스타일은 부르주아적이므로 삭제되어야 한다는 요구까지 의견은 다양했다. 후자의 의견을 낸 이들은 오직 슬로건과 문자만이 프롤레타리아 정신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 이바노보Ivanovo: 러시아 북서쪽 우랄 연방관국 이바노보주의 주도이다. 러시아 직물 생산의 중심지로 불렸다.
[2] 사회주의적 경쟁Socialist Competition (Emulation): 사회주의적 경쟁은 노동대중의 공산주의 교육에 기여하며, 전문적 자질과 교육, 문화수준을 높이고 개선시킴으로써 노동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키려 했다. 사회주의적 경쟁은 선전, 결과의 비교가능성, 선진적 경험의 확산이라는 레닌주의적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경쟁은 뒤처진 노동자들을 최고노동자들의 수준까지 이르도록 도와주며, 전반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생산예비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최선의 노동을 수행한 경우 훈장과 메달, 보수를 받았다.
[3] 오그푸OGPU(Obyedinyonnoye gosudarstvennoye politicheskoye upravleniye pri SNK SSSR: All-Union State Political Administration and Unified State Political Directorate): 소련의 비밀경찰인 국가 정치 보안부. 1922년 체카를 개편한 것으로 반혁명 인사를 찾아내고 처벌하는 일을 하였다. 1934년에 내무 인민 위원회로 바뀌었다.
[4] ) 스탈린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미국이 대표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강력한 공업국가로 탈바꿈하고자 추진되었다. 제1차 5개년 계획(1928~1932)은 기본적으로 농업 부문에서 짜낼 수 있는 모든 저축을 동원하여 중공업을 일으킨다는 데 일차적 목표를 두었다. 스탈린은 또 이 기간에 ‘사회주의의 기적’을 대중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도 겸하여 거대하고 화려한 토목 건축 사업을 벌였다. (러시아사, 2006. 11. 15., 김학준, 위키미디어 커먼즈) 농촌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였고 1932-33년에는 대기근이 찾아와 아사자가 거리에 즐비했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하락했고 산업재해는 빈번했으며,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어서 주택난에 시달렸다. 임금에 비해 비싼 주거시설 임대료, 낙후된 생활 환경과 억압적인 근로 환경, 취약한 아동복지 등은 5개년 계획 막바지에 다양한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5]) 카가노비치Lazar Moiseevich Kaganovich(1893~1991): 러시아의 정치가. 제화공 출신으로 18세에 볼셰비키 당원이 되었다. 경제 건설에 수완을 보여 1930~1935년 당 모스크바시 위원회 제1서기 시절에 산업도시화를 진행하고 지하철을 건설하였다. 중공업, 석유공업 장관을 역임했으며 레닌 훈장을 4회나 받았다.
[6] 미하일 칼리닌 Mikhail Ivanovich Kalinin(1875~1946): 소련의 정치가. 레닌의 혁명운동에 적극 가담하였고 전러시아 소비에트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연방최고회의 간부회 의장을 지냈다.
[7] 빌딩 점거를 하던 노동자들이 해산한 뒤에는 잠시 시위가 주춤한 듯 보였지만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지역 공무원들은 4월 11일에 파업을 재개한 노동자들에게 찾아가 설교를 하려 했으나 무시당했다. 그러나 한 공무원이 모스크바로 전보를 보라는 제안을 하자, 받아들여졌다.
[8]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1879~1953): 소련의 정치가. 1903년 볼셰비키가 되어 레닌의 신임을 받았으며 1927년 당 중앙위원회를 장악하여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테헤란 · 얄타 · 포츠담 등의 거두회담에 참석, 연합국과의 공동 전선을 굳혀 독일을 굴복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9] 카가노비치는 노동자들에게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약속했으나, 동시에 노동자들의 시위 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시위를 해산하고 일자리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노동자들은 그의 연설 후 토론을 시도했으나 카가노비치는 추후 발언 없이 떠났다. 카가노비치는 당원들을 동원해 공장과 군 병영에서 몇차례의 회의를 소집하여 배당 문제를 해결하겠다 서약하고 진정서를 모았다.
[10] 바비 야르Бабин Яр, Babyn Yar: 소련 내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협곡이자 나치 독일의 학살 장소이다. 1941년 9월 29일부터 9월 30일까지 한번에 유대인 33,771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Berafula | 바라풀라

11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서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 면직물은 화폐로 취급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다. [이 시기] 기니 해안과 내륙의 직물 제조업자 사이에는 내부 교역이 있었다. 또한 15세기 말까지 인도로부터는 특정한 직물을, 유럽에서는 염색된 울 직물을 수입했으며, 베닌 해안가의 만에서는 트레들 베틀로 지역수출을 위한 직물을 만들고 있었다. 대서양의 노예 무역은 거래를 더욱 다양하고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치열함의 한 가지 징후에는 카보베르데 섬[1]에서 완전하게 수직 통합된 면직물 산업의 발전이 있었는데, 이는 잉카 시대의 안데스 산맥에서의 생산과 같이 더 작은 규모로 이루어졌으며 노예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섬에 들이닥쳤을 때 섬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유일하게 취할 수 있던 이점은 섬에서 서식하는 오오칠Orchil[2]이라고 불리는 이끼였는데, 이 식물은 수익성이 좋은 청보라색 염료를 생산했고, 내륙의 아프리카인들의 지식과 직조 기술을 이용한 식물 적응 실험에 뒤따르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천에는 하얀 면직물도 있었지만, 그들의 특산물은 흰색과 부분적으로 염색된 파란색이 교차하는 여섯 가닥의 실로 만들어진 바라풀라 직물이었다. 이 직물은 섬과 기니 해안가 양쪽 모두에서 화폐가 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인도에 체류하던 포르투갈인이 인디고를 가져와 점차적으로 이를 대체할 때까지 직공과 방적공은 오오칠을 통해 필요한 염료를 만들었다. 그러나 카보베르데 섬, 특히 포고Fogo는 지리적 이점이 높았고, 직물 자체가 매우 중요한 무역 상품이었던 대서양 노예 무역의 발전에서 주요한 수출입항이 되었다. 이 섬이 발견된 지 100년 만에 노예 경제는 “상인의 감독 하에 성장하고 면화를 수확하고, 가공했으며 실로 짜고 염색했다”. 목화와 인디고 농장이 만들어지고 난 뒤 그들은 내륙의 바이누크 Bainuk와 카랑가 Karanga의 직공과 염색공의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복제해 훨씬 더 큰 스케일로 바라풀라 천을 재구현한다. 이 생산 실험실에서는 기존의 기술들이 활용되었다. 17세기 동안 아프리카-포르투갈인들과 유대인 난민 무역상들의 도움으로 가보베르데의 파노 pano[3](랩 wrap[4])가 기니 무역에서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화폐로 표준화된 그 직물은 그 후 유럽의 노예상과 지역 내에서 거래되었다. 이 직물로 금, 상아 또는 노예를 살 수 있었다. 17세기 한때 노예의 환율은 60 바라풀라였다. 아프리카 족장들은 그 직물이 무역을 통해 그들이 받은 물자들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바라풀라의 생산은 노예 거래를 위해 이 직물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노예제도가 매우 중요한 국제 무역에서 섬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한동안 회사 파라마라냥 Pará-Maranhão은 기니 해안에서부터 아마존과 마라냥 Maranhão[5]의 노예 무역을 독점했다. [그것은] 직물을 만든 노예들을 통제하고 포르투갈의 정부 허가를 취득하여 ‘노예 사업’에 진출한 카보베르데와 비사우[6]의 직물 산업 소유주들이 축적한 자본을 이용하여 형성되었다. 18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이 무역은 계속되었다. 이 시장을 덥석 문 것은 첸나이 Chennai[7]에서 온 이니리iniri라고 불리는 인도의 직물이었다. 이니리의 패턴은 [바라풀라와] 매우 비슷했지만 흑백이었다.
[1] 카보베르데 Cabo Verde: 아프리카 서쪽 끝, 베르데곶 서쪽에 있는 공화국으로 열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456년 포르투갈 인에 의해 발견된 후 식민지화되어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하였다.
[2] 오오칠 Orchil: 자주색의 물감, 그것이 채취되는 지의류의 총칭으로 Roccella 종의 지의류에서 얻을 수 있는 적색색소.
[3] 파노 Pano: 털, 천, 옷감, 타월, 주름을 이루고 있는 넓게 재단한 옷 부분
[4] 랩 wrap: 여성이 장식보온용으로 어깨에 두르는 천, 두르다
[5] 마라냥 Maranhão: 브라질 북동부에 있는 주도
[6] 비사우 Bissau: 기니비사우의 수도, 1446년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발견된 뒤 포르투갈의 식민지이자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7] 첸나이 Chennai: 인도 타밀나두 주의 주도. 항구 도시로 인도 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염색 공업이 발달하였다.
Ball of Wool | 울로 만든 실타래

안데스 산맥의 대표적인 실(實)은 Z-꼬임 Z-spun과 S-꼬임S-plied인데, Z-꼬임은 파냐[1]paña 또는 우연(右撚)라고 하고 반대 방향으로 꼬여진 실들은 요께 lloq’e[2](lloque) 또는 좌연(左撚)라고 부른다. 남성적인 파냐는 영혼의 세계로 가는 길이고, 여성적인 요께는 치유나 점술과 같은 실용적인 마술에 접근하는 길이다. 요께는 보호장치로 손목이나 발목에 착용할 수 있으며, 치유 의식 중 부상 또는 병든 부분을 감싸고 있다가 [나중에] 그 실을 강에 버린다. 임산부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허리춤에 실을 묶는다. [동물의 털을 통해 옷을 만들기 때문에, 옷을 통해 나쁜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도록, 새로 태어난 동물들의 목에 실을 두르기도 한다] 동물이 제공할 울로 만들어질 옷을 통해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실을 갓 태어난 동물의 목에 두른다.
안데스 섬유와 무속적인 환각은 [모두] 색을 매우 강조한다. 강하고 (겹쳐)놓여진 색들의 영적 가치는 무속적인 환각의 강력한 시각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부신(찬란한) 색들은 환각 여행을 한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보고된다. 만약 그렇다면, 힘과 영감이 시각적으로/환영에서 보이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믿는다면, 그들의 컬러풀한 본성은 색채주의적 섬유 미학으로 이끄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색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태양과 달의 영역과 땅, 무리, 전쟁의 공동체적인 의무와 연관되어 있었다. 녹색 실은 목초지, 붉은 실은 피와 전쟁, 노란 실은 태양을 나타낸다. 검은 실을 보낸다는 것은 “밤이 되면 누군가가 도착한다”라는 뜻이고, 흰 실을 섞은 것은 “달빛이 비치는 밤에” 누군가가 도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카이브 포스터에 나올 리본은 오래전부터 치유의 장소 역할을 했던[여겨졌던] 브라질의 살바도르 도 바히아[3] Salvador do Bahia 에 있는 센호르 도 본핌[4] Senhor do Bonfim 교회다.
순례자들이 [그들의] 요청을 한 후에, 그들은 교회 이름이 찍힌 색깔 리본을 사서 손목에 묶는다. 그 리본이 닳아 없어지면 문제(걱정거리)가 해결된다. 사진은 묵주기도성모회 (Igreja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dos Pretos,[5]The Church Our Lady of the Rosary of the Blacks) 앞에서 찍은 것이다. 그 교회는 성모마리아 흑인 평신도회(O Irmandade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dos Homens Pretos do Pelourinho ,The Brotherhood of Our Lady of the Rosary of the Black Men of Pelourinho)의 노예 구성원에 의해 1704년부터 100년에 걸쳐서 지어졌다. 펠루리뉴[6]Pelourinho는 다른 교회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서, 스스로 자신들의 사용을 위해 교회를 지었다. 교회를 짓는 작업은 항상 밤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노예들의 정상적인 주간 작업이 중단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1] 파냐paña:우단 비슷한 두꺼운 천
[2] 요께 lloq’e(lloque): 검은색 또는 흰색의 실로 만든 주술적인 의미로 지니는 장신구
[3] 살바도르 도 바히아 Salvador do Bahia:사우바도르는 브라질 동북부 바이아주의 수도이다.
[4] 센호르 도 본핌 Senhor do Bonfim: 교회는 브라질 바이아 주에서 가장 유명한 살바도르 가톨릭 교회입니다. 그것은 18 세기에 살바도르의 더 낮은 마을에있는 Itapagipe 반도의 언덕에 지어졌습니다.
[5] Igreja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dos Pretos (The Church Our Lady of the Rosary of the Blacks): 흑인 묵주기도의 성모 제 3 차 교회 포르투갈어 : Igreja da Ordem Terceira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dos Pretos는 브라질 바이아의 살바도르에있는 18 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입니다.
[6] 펠루리뉴 Pelourinho: Pelourinho 또는 Pelo로도 알려진 브라질의 살바도르 데 바이아 역사 센터는 바이아 서부 살바도르의 역사적인 중심지입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의 도시 중심지였으며 중앙 광장에서 채찍질 장소로 지명되었으며 아프리카에서 노예가 된 사람들은 위반 혐의로 처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