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 Suit 남성 정장

밀가루 포대에서 추출한 목화 안감 모직물; 2010년 푸노Puno의 골동품상에게서 구입. 현재 페루에서 토착민족들이 서양 복식으로 옷을 갖춰 입는 것을 [일컬어서] 문명화된 사람들이 civilizarse, ‘누군가를 교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만일] 그들이 너무 가난해서 옷을 살 돈이 없으면 어떤 특정 가게에 가서 옷을 빌려입기도 한다. 밀가루 면직 포대를 잘라 만든 안감을 손으로 짠 이 정장의 옷감은 영국식 트위드tweed[1]를 흉내내고 있다.

1575년,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권위를 내세운 톨레도Toledo 총독은 잉카 식 복장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안데스 원주민들이 “우리식(스페인 식) 옷을 입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장려했는데 이는 안데스 원주민들이 스페인 식의 복장, 즉 셔츠, 바지, 치마, 블라우스를 입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떤 옷이든 “상처와 애통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 것만 입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스페인 법령은 사회 계급별로 입을 수 있는 옷과 시기를 법으로 정해 놓음으로써 사치스러운 직물의 사용을 통제했었다. 식민지 페루 부왕령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으로 사회 계층과 인종 구분에 입각해 복장을 규제했다. 예를 들어, 원주민 여성이 입을 수 있는 비단의 양은 제한되어 있었고, 그녀의 망토에 붙일 수 있는 레이스 조각의 개수 역시 정해져 있었다.

1571년 당시 혼혈 여성은 비단 망토, 금, 진주 같은 것을 착용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18세기에는 과하게 사치스러운 옷을 입은 듯한 안데스 원주민을 향한 불쾌감이 부왕권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그 결과 원주민들이 “우리(스페인 사람)처럼 입는 것이 금지”됐다 (1791년 법률 개정판, p.403). 그 즈음, 투팍 아마루 혁명Túpac Amaru rebellion[2]의 결과로 잉카 식의 옷이 급속도로 정치적인 색을 띄게 되자 행정관들은 이를 걱정하기 시작했으며, 1781년에는 이러한 옷을 입는 것을 불법으로 만듦으로써, 다시는 옛날 통치자들의 이상적인 모습과 고대의 기억을 불러내지 못하게 했다.
반면 같은 시기의 잉카 복장은, 쿠스코Cuzco와 포토시Potosí의 1555년 성체축일Corpus Christi[3] 행진에서 과거를 재연하고 잉카문명의 유산을 ‘연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처럼, 잉카 복장은 식민지 민중을 보여주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보존된 많은 식민지 튜닉tunic[4] 역시 특별히 민중 행진을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안데스 원주민의 느슨하게 감긴 드레스가 ‘외설/무례함indecency’을 보여준다고 우려한 1570년대 부왕령 행정관들은 (그들의) 옷들을 꿰맬 것을 요구하는 법을 제정했다. 잉카의 몇 태피스트리tapestry[5]  이크야lliclas(숄)[6]의 표면에는 가짜 솔기가 수놓아져 있다. 이는 랩 무늬 망토의 두 깔루callu가 맞붙는 선을 모방한 것으로, 법에 대한 저항의 행동일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내용을 넣어 미적 형태를 이어가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다.

[1] 트위드tweed: 비교적 굵은 양모를 이용, 간간히 다른 색깔의 올을 가미하여 수평 수직으로 짜낸 두꺼운 천.

[2] 투팍 아마루 혁명Túpac Amaru rebellion : 스페인 식민통치에 대항했던 운동이다. 투팍 아마루 1세는 스페인의 정복에 대항하다 페루 부왕 톨레도에 의해 1571년 처형됐으며, 200년 후엔 투팍 아마루2세가 안데스 지역 광산에서 혹사 당하는 원주민을 위해 스페인에 대항하여 운동을 일으켜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상징적인 보복을 했으나 처형당했다.

[3] 성체축일Corpus Christi: 그리스도교 축일 중 하나이다.

[4] 튜닉tunic: 헐렁하고 긴 상의를 말하는데, 보통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여성용의 낙낙한 블라우스 또는 코트이다. 모양은 소매가 달린 티(T) 자 형이고 보통 허리에 벨트를 매어 입는다.

[5] 태피스트리tapestry: 여러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혹은 그 제작 기술.

[6] 이크야Lliclas: 페루 여성 전통 의상으로, 여인들이 사용하는 숄, 어깨걸이.

 

 

Man’s Suit                                            41

항상 용맹한 전사로 알려진 폰초스로호스는 볼리비아에서 새로운 ‘원주민의 시대’의 상징이었다. 2006년에 아이마라 다수민족 출신에서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로, 현지인들의 신뢰를 향상시킨 것을 보여준다. 볼리비아 아차카치의 웹페이지에서, 폰초스로호스는 그들을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Evo morales Ayma)가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 볼리비아 육군예비대는 새로운 볼리비아 연립국가의 권력의 일부로 토착국가들이 편입되는 과정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해 현지 민병대으로 바뀌었다.” 폰초스 로호스는 산타크루스 부처의 지주들의 분리주의자와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움직임들에 맞서기 위한 현지 민병대로써, 오래된 볼리비아 리퍼블릭의 인종차별자들이 재 집합하는 것에 경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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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pite the prominence of silver thread used in the clothes of the rich and powerful, its real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global textile trade was in its mining, specifically from Spanish colonial Potosi. Millions died in extracting it while it provided, for the first time, a commodity for Europeans that the producers of cloth and spices in Asia actually wanted.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옷에 은사가 많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섬유 무역의 역사에서 은사의 진정한 의미는 광업, 특히 스페인의 식민지 포토시Potosi에서 시작된 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는 아시아에서 옷과 향신료를 만드는 사람들이 원했던 그 은이 처음으로 유럽인들을 위한 상품으로 공급되는 동안, 은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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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Peruvian province of Huancane, peasants rose  in the Bustamente rebellion against the re-colonisation of the highlands by agrarian wool capitalists, merchants and ‘agents of civilisation’.

페루 우안카네Huancane 지역에서 일어난 부스타멘테 반란에서 양모 자본가, 상인, ‘문명의 대리인’이 고산지대를 다시 식민지화하는 것을 반대하며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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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ctually, what mestiza is all about: Acknowledging that one cannot escape global market economy or the aftermath of colonial history, yet claiming the legacy of heterogeneous histories and social cultures.

사실, 이것이 메스티자 mestiza 가 의미한 모든 것이다. 이들은 세계 시장 경제나 식민지 역사의 여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질적인 역사와 사회 문화의 유산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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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Quispe | 후안 끼스페

“내 이름은 후안 끼스페Juan Quispe이다. 나는 티티카카[1] 호수Lake Titicaca 의 타킬레[2]Taquile 섬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입고 있는지, 특히 여자들이 엮어 만든 파하 faja (넓은 벨트)와 남자들이 짠 추요 ch’ullu (울모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러나 먼저 너그러움(generosity)의 표시로 해석되는 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예를 들어] 내가 비록 천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천이 가지고 있는 그 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그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은 항상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것이다. 내 말은, 음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영혼이 피폐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기쁨 역시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천은 결핍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그 끝자락에 있다.  파하와 추요에 사용되는 상징은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이 사용했던 것과 같다. 예를 들어 현대 달력이 도입되었지만, 달력 벨트(chumpi calendario)를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새, 꽃, 농작물의 짜임새 패턴을 통해 시간을 본다. 우리는 집을 짓는 시기와 낚시철을 읽는다. 그리고 [그 벨트에는] 망자의 날, 새로운 동물의 탄생, 새해와 같은 몇몇 축제들이 적혀있다. 우리의 조부모님들도 같은 우주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직물은 발전되었고, [지금은] 무지개 색을 꽤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많은 색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왜 조상들은 무지개 색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조상들은 무지개를 경외시했고, 무지개 색은 사람을 태우거나 장(腸)을 꺼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변하고 있고, 우리는 무지개 색을 사용해서 [사람을] 불에 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조부모님들은 그런 식으로 무지개를 경외시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6월이나 5월에 무지개가 지면, 비가 곧 그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해가 질 때 무지개가 있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해가 뜰 때 무지개가 있다면 비가 올 것이다. 이것이 [일기]예보다. 아마도 우리 조부모님의 태도는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색상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직물이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내 여동생 중 한 명이 파하에 우주 왕복선 이미지를 엮였던 적이 있다. 나는 동생에게 왜 [우주선을] 엮었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물었고, 여동생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해에 챌린저 우주왕복선[3]이 이륙 직후 공중에서 폭발했을 때, 그 소식이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졌고, 여동생은 그 비극적 장면을 모두 보았었다.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자신이 느꼈던 것을 파하로 엮어냈던 것 같다.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 과거와 미래, 감정, 계획 그리고 경험은 파하에 기호를 통해 기록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는 문화는 그 시대의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며, 더 이상 그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많은 문화와 관습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그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들이 축하하는 방식, 그들의 옷,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들의 과거가 존재하는 곳은 박물관이나 전통옷으로 꾸며진 인형들이다. 하지만, 타킬레에서는 아니다. 문화는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타킬레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파하 역시 살아있다, 그것은 몸과 같다. 심장이 있고, [그 심장은] 마치 팔처럼 파하를 뒤에서 안전하게 지켜준다. 판매용이 아닌 흰색 줄무늬의 언더벨트가 있는 파하는 힘겨운 농사일을 하는 동안 그것을 찬 사람의 등을 받쳐준다.  그런가 하면 [파하는] 땋은 머리카락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살아있다.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뜨개질을 하거나 직물을 짜는 사람은 자신의 직물을 자를 수 없고, 그것은 죄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쉽게 직물을 자를 수 없다. 이제 추요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어렸을 때 뜨개질 하는 할아버지를 지켜보곤 했는데, 나는 거기에 정말 빠져들었다. [할아버지가 짠 추요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나도 추요를 짜고 싶었다. 내가 놀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어느 틈엔가 실[과 같은] 모든 뜨개질 재료를 꺼내 놓고서 ‘뜨개질을 해보련?’하고 말하셨고, 나는 ‘네. 뜨개질을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음, 할아버지가 나에게 막 실을 주려던 참이었는데, 할머니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한테 나가서 양떼를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뜨개질인데 왜 양떼를 먼저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어쨌든 밭으로 나가 양들과 함께 뛰어 놀았다. 그것 역시 매우 재미있었다. 양들과 같이 호수로 내려가서 목초지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어쨌든 몇 년이 지나서, 아니 몇 달 혹은 몇 년이 흘러 처음으로 어린 양이 태어나는 것과 양털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양털을 깎을 준비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양털을 깎으며, ‘그래, 너도 이제 너만의 실을 만들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나는 아뿌스칸 apuscan, 물레가락을 꿰어 보았다.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신념이나 할아버지의 믿음이 작용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말은, 그것은 나를 치료해준 약이었다.[그만큼] 나는 정말 [나의] 실을 만들고 싶었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실을 만들었다. 내가 막 실만들기를 마쳤을 때, 할아버지는 바늘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 이제 뜨개질을 해보자’라고 하셨다. 하얀색으로만, 양처럼 흰색으로만, 그때 나는 작은 새들과 상징들을 넣어가며 뜨개질을 하고 싶었지만, 먼저 완전히 하얀 모자를 완성해야 했다. 지루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뜨개질하는 것은 인내심, 즉 양털에서부터 모자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그 일을 해내었다, 무지의 흰 추요를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형편없었다. 모양도 별로였다. 내가 추요를 완성했을 때, 할아버지는 빨강, 파랑, 초록, 노랑 실을 꺼내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실을 바로 앞에 꺼내놓으셨다. [그리고는]‘이제 너만의 추요을 만들 수 있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작하였다. 우선 나는 그 색깔 조합 좋아하지 않았다. 나만의 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추요을 완성하고 나서 알게된 것은 나이든 형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놀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추요에 사용한] 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사용한 색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왜냐하면 내가 노란색과 초록색 혹은 [노란색과] 파란색을 조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색깔은 언제나 이곳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색 코드를 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색깔들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만약 내가 파란색 대신 검은색을 사용했다면, 그리고 빨간색 대신 더 어두운 색을 사용했다면, 사람들은 ‘왜 추요가 이런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너는 아니?’라고 물어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두운 색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란색은 너무 많이 반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색을 보고] 당신은 홀아비인가요? 어디에서 왔나요? 아마 다른 행성에서 온 거 아니예요?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요는 색상 코드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적인 것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두 똑같이 보이지만, 타킬레 사람들은[4]Taquileño는 직물을 보면 바로 알아차린다. 만약 당신이 나의 추요를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당신에게 후안의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뜨개질이나 직물로 서로를 알아 본다. 육안으로는 모두 똑같아 보이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색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함께 모여 살기로 할 때 커플이 직물을 짜는 기술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때로 소녀의 아버지가 추요가 만들어진 상태를 확인하기도 한다. 추요는 튼튼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튼튼해야 하고, 촘촘히 짜여져야 한다. [그래서] 또 어떤 가정에서는 [추요에] 물을 붓는 경우도 있다. 거의 온 가족이 그 젊은 남자가 추요를 잘 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방수가 되게 짰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 물이 여전히 추요 안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 안에서 역할을 시작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남서 해안 프랑스는 헥타르당 한 마리의 양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황폐한 습지였다. 양치기들은 그들의 양들이 먹을 더 좋은 풀을 찾으러 매일 긴 거리를 이동하고, 발을 건조하게 하기 위해 죽마를 사용했다. 그들은 쉬고 싶을 때면 막대기를 사용하여 삼각대를 만들었다. 3미터 상공에 자리잡고 털실로 옷을 짜면서 양떼들을 찾기 위해 지평선을 살폈다. 멀리서 양치기들을 본 사람들은 그들을 작은 뾰족탑과 거대한 거미에 비유했다.

2000년 당시 인구가 1900명으로 추산된 타킬레 섬은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해발 13,000피트(3,815m)에 있는 안데스 알티플라노(고원)의 안디안스 알티카카(고원)에 있는 섬이다. 케추아어Quechua를 사용하는 이 지역의 주민들은 드라마틱한 색감의 정교한 직물과 지역사회가 통제하는 관광의 모델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05년 유네스코는 타킬레와 그 직물 예술을 구전 유산과 무형 유산의 걸작으로 인정하였다.

[1] 티티카카 호는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호수이다. 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다. 또한 남아메리카에서 수량이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하다. 

[2] 타킬레은 티티카카 호수의 페루쪽에 위치한 섬으로 푸노시에서 45km 떨어져 있습니다. 섬에는 약 2,200 명이 살고 있는데, 크기는 5.5 x 1.6 킬로미터이고 면적은 5.72km²입니다.

[3] 챌린저 우주왕복선은 두 번째로 임무에 투입된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이다. 이름은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를 최초로 측정한 영국 탐험선 HMS 챌린저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4] 타킬레 섬 출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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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볼리비아 티후아나쿠 Tihuanacu(Tiwanaku) 에서 열린 제2차 미국 조직 및 운동 회의 American Organisations and Movements 에서 아이마라 족(族) 군사지도자 바르톨리나 시사 바르가스 Bartolina Sisa Vargas 를 기리며 9월 5일이 공식적으로 국제 토착 여성의 날로 지정되었다.

1780년대 초 페루와 알토 페루(현 볼리비아)의 고지대에서 퀘추아 족과 아이마라 족 일당이 스페인 압제자들과 싸웠다. 바르톨리나 시사는 남편 투팍 카타리와 함께 1781년 라파스를 포위한 4만여 명 이상의 군대를 이끌고 토착민 봉기를 이끌었다. 시사는 184일 동안 유지되었던 포위 공격의 지휘관이었으며, 11개월 후 반란군이 진압되며 처형당했다. 초기부터 바르톨리나는 혁명의회에서 여성을 고려하게 하는 등 이 운동에 역동적인 공헌을 하였다. 민중 봉기는 오늘날 사회 운동의 목표, 토착권의 회복, 안데스 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들에 대한 공평한 재분배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바르톨리나 시사는 말의 꼬리에 묶여 목에는 밧줄이 감기고, 벌거벗겨진 채 피를 흘리며 감옥에서 나온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반란군 지휘관인 그녀의 시누이 그레고리아 아파자 Gregoria Apaza 는 당나귀에 얹혀 나온다. 그들 각자의 오른손에는 셉터 scepter 같은 지팡이 십자가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 가시관이 쓰여져 있다. 그들 앞에서 죄수들은 나뭇가지로 땅을 깨끗이 쓸고 있다. 바르톨리나와 그레고리아는 교수형이 행해지기 전까지 볼리비아 라파스의 주요 광장을 몇 바퀴씩 돌면서 그들을 인도 여왕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돌과 비웃음 속에 고통 받는다. 선고문에는 그들의 머리와 손이 지역의 도시들에서 [본보기로] 전시될 것이라고 쓰여 있다.

 

바르톨리나의 숙명fate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9월 5일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날일 뿐만 아니라 500년간의 탈식민화, 토지개혁, 사회정의 투쟁의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토착 여성들이 행했던 중요한indispensable 역할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날 볼리비아 농민 여성 바르톨리나 시사 전국 연맹 Bartolina Sisa National Federation of Bolivian Peasant Women (FNMCB-BS 또는 바르톨리나스 Bartolinas)은 힘있는 단체로 성장했다. 2010년 바르톨리나 지도자 닐다 코파 leader Nilda Copa 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 되었으며, 플뤼니얼 입법회 Plurinational Legislative Assembly 에는 여성대표자가 전체의 30%에 이르렀다. 더불어 전체 볼리비아 의회 의원 중 43%가 여성이다. 또한 현 정치 행정부는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예를 들어] 2006년과 2008년 사이에 정부는 농촌 여성들에게 10,300개의 부동산 소유권을 분배했다.

온두라스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서방으로부터 비난받지 않았던 2009년 쿠데타가 일어난 이래, 자신들의 토지를 보호하려 했던 마야인 12명과 31명의 노동조합원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된 바 있다. 이 쿠데타에는 섬유와 의류 분야에서 일하는 11만 명의 여성들이 참여했으며, 당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미국의 ‘자유 무역’ 이자에 대항해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 Bolivarian Alternative for America 에 서명했던 마누엘 셀라야 Manuel Zelaya 정부에 맞선 쿠데타였다. 바르톨리나와는 달리 베르타 카세레스 Berta Cáceres 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토착민 출신의 환경주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사실이 2016년 그녀의 암살이나 2017년 딸의 목숨을 노리는 뻔뻔한 시도를 막지는 못했다. 정권의 테러 전략이나 노동자와 협상하기보다는 공장 문을 닫아버리는 섬유 기업들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2015년과 2017년 캐나다 소유의 길단 Gildan 공장에서 9,000명의 여성들이 2년간의 투쟁 끝에 노조 결성권을 따냈다.



Llama Figure | 라마 피규어

울, 면, 식물섬유/ 추정 중후기/ 약 1000-1450 CE/ 찬 차이Chang Cay/ 출처 이베이, 2013. 오늘날까지 페루와 볼리비아 고원 원주민의 생존은 라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는]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중요했을 뿐 아니라, 토착민들의 믿음의 체계에서 낙타류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16세기 스페인사람들은 볼리비아 라마모(毛)가 스페인 양모보다 품질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수 십년에 걸쳐 식민지 이전 라마수의 10%만 남기고 몰살시켰다. 안데스의 양치기들은 무리에서 개별 동물들을 묘사할 수 있는 인구 분류법demotic taxonomy 을 개발했다. 이러한 계층적으로 무질서한 체계는 매우 유연하여 광범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동물들은 수컷 혹은 암컷으로 구분될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생식이 가능한 동물은 생식이 불가능한 동물들과는 다른 성별을 가지는 것처럼, 다양한 젠더로 분류된다. 동물의 나이는 햇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방목된 목초의 질과 고도, 자손의 수, 질병, 치아의 상태, 양모의 질과 양, 동물이 짊어질 수 있는 운반량 등 다른 기타 영향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동물 이름의 첫 부분은 라마인지 알파카인지 나타낸다. 그 다음은 색상의 분포 또는 패턴의 종류를 나타내며, 성, 나이, 양모의 품질이 그 다음에 표시된다. 동물이 만약 서로 유사한 경우, 설명이 추가된다. 동물의 양모가 밝은 색상이 우세한 경우, 일반적으로 알카alqa라고 부른다. 알카는 그 다양성에 따라 53개의 용어와 네 개의 어두운 기본 색상을 조합으로 총 212개의 조합이 가능하다. 기본 색상은 19개의 다른 명도를 가지며, 4028개의 가능한 알카 품종이 있다. 성별이 참고로 추가된다면, 동물의 젠더는 언제나 두 개 이상이기 때문에, 그 수는 3배가 되어 12,084개의 품종으로 분류가 가능하다. [여기에] 나이 요소가 추가되면, 양치기들은 동물을 식별할 수 있는 20,000개가 넘는 상세한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수컷 라마와 알파카는 들판 사이로 그리고 때로는 마을 사이를 오가며 짐을 운반한다. 알파카와 라마 가죽은 매트리스, 베개로, 양모는 의류, 운반용 직물, 담요, 밧줄 및 슬링sling으로 사용된다.

알파카 털은 흰색, 갈색, 회색, 검은 색의 자연스러운 색상이나 그것을 조합한 직물로 만들어지고, 실로 만들어지기 전에 염색되기도 한다. 4 년 이상 자란 알파카의 가슴털은 슬링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알파카 고기는 신선하게 조리되거나 소금에 절여서 차르키ch’arki[1]로 보존된다. 알파카의 각 부분은 소비되거나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알파카 피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준비된다. 힘줄은 현악기의 줄뿐만 아니라 바느질에도 사용되며 악기를 함께 묶는 데 사용된다. 간은 튀겨서, 폐는 야채와 고추와 함께 먹고, 머리는 육수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신들에게 바치는 주요 성분인 동물성 지방으로는 양초를 만든다. 뼈는 직조에 사용되는 빗 모양의 도구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배설물은 들판을 비옥하게 하고 햇볕에 쬐면 요리용 연료 역할을 한다.

푸노Puno[2] 양치기들 사이에서 번개에 맞아 죽은 동물들은 인간을 매장하는 의식과 동일한 의식을 치르고, 8 일 후에 그들의 혼령이 떠날 때 또 다른 의식을 치른다.

[1] 차르키는 육류를 소금에 절여 말린 식품이다. 남아메리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휴대 식품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현대에 말린 육류를 지칭하는 ‘저키’라는 말은 ’차르키‘에서 유래했다. 차르키라고 불리기도 한다.

[2] 페루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푸노 주의 주도이다.



Black 블랙

“‘저희가’” 라며, 완벽하진 않아도 구사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이 나무들로 우리가 ‘배’라고 부르는 걸 만들겠습니다. 남는 목재로는 ‘종이’를 만드는 법을 보여드리죠. 이 ‘종이’위에는 (우리가 일단 출항을 하면) 어떻게 ‘쓰는’지 (불탄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보여드리죠. 만약 저희보다 더 잘 하신다면 저희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겠군요.”

 

근대 그리스에서 자나 깨나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미망인의 그 ‘전통적인’ 드레스는 가부장제 사회 억압아래에서 금욕 중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애플Apple의 맥Mac 제품으로 대표하는 현대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도 말년에 공적 옷차림으로 검은색을 선택했다. 초기 사진에서는 그가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이후 수도사와 같은 폴로 넥polo-neck 셔츠로 [복장이] 변했다. 그의 이런 모습은 15세기 초반에 얀 반 에이크Jan van Eyke가 그린 룩카Lucca[1]지방 상인 지오반니 아르놀피니Giovanni Arnolfini의 계보를 잇는다. 아르놀피니는 상인의 품위와 충성심의 상징인 검은 비버 모피 모자와 까만 모피 드레스, 검은 스타킹과 신발 차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의 전환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공존할 수도 있다. 동시대 세계의 잡스와 더불어 고딕하위문화 Gothic Sub-culture의 검은 옷, 화장과 창백한 얼굴이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악마와의 이런 협업은 훨씬 전부터 있어왔고 이 문화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낭만주의 속에서 굴절되었고 뱀파이어 장르 영화와 텔레비전 쇼에서 독특한 재 유행을 만들어냈다. 16세기에 여성이 악마 숭배로 구속되는 사례는 웃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 나라의 사형집행인은 주로 붉은색을 입었는데 옷장엔 까만 옷을 넣어 두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검은색은 긍정적인 색이었다. 나일Nile강에서 내려온 그 모든 검은빛 모래 진흙과 대지의 비옥함의 상징이며 죽은 이들이 내세(來世)로 향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색이었다. 그리스 세계에선 내세-저승에 대한 관념이 변하면서 검은색이 부정적인 의미를 띄게 되었다. 태양과 빛과 생동하는 감각 세계의 하늘이 없는 저승Hades[2]은 따분하고 어둡다. 기독교의 악마 개념도 사티로스satyr[3]의 도상학(圖像學,iconography)에서 비롯했으며 서기 1000년 전후의 악마나 악(惡)에 대한 개념 역시 그 관념에 검은색을 더했다. 하지만 200년 후 검은색은  “도시 귀족들과 시 공무원 혹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옷을 선택하는 색깔로, 품위와 절개를 상징하게 되었다. 14세기 중반에는 염색 기술의 발달이 진행중이었고 염색업자들은 검은 피부의 성 마우리시오Saint Maurice[4]의 인기를 얻었고 염색업자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변했다. “염색업자들은 모리스 성인을 자랑스러워 했고, 회화와 스테인드 글라스, 행진 퍼포먼스로 성인의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예수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린 예수가 티베리아스Tiberias지방 염색소의 견습생이 되어 색깔들을 만드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였다.

매염제(媒染劑)에 더 많이 의지하여 발전된 기술은 좀 더 제대로  된 검은색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기술과 더불어 귀족을 제외한 모두에겐 특정 색상 옷을 금지하는 사치 금지령은 1360-1380년대 사이의 상인들과 금융계 남성들이 검은색 옷을 입게 하는데 공헌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모습에 필요한 엄격함을 부여해서, 색공포증chromophobia과 신뢰감을 주는 금욕적 모습을 추구하는 개신교 인들의 심미적 방식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했을 것이다.

검은색은 수 세기 동안 그런 근엄함을 표현하는 색으로서 회색과 경쟁하고 있었다. 문명인은 “비문명적인 국가와 아이들”이 입는 밝은 색상을 싫어하며, 그 대신 남성은 검은색 여성은 하얀색을 입는다고 괴테는 말한다. 비판적인 형용사‘야한garish’은 밝게 염색된 옷이 음탕한vulgar 것이라는 개념을 영구화 했다. 17세기 브라질 사람들은 정반대로 이런 이야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자조적인 브라질 사람들은 그들에게 영국식 옷은 “너무 음울한 옷 같습니다. 이런 우울한 옷은 싫습니다. 여기에는 퀘이커교Quakers[5]교인들도 없어요. 11월의 영국에나 어울릴 침울한 색깔들은 원치 않습니다”[고 말했다.]
때로는 이러한 경향이 미신적이라 여겨질 수 있다. 개신교도 자본가 헨리 포드Henry Ford[6]가 그의 고객들에게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어떤 색의 차든 가질 수 있다고 했듯이, 혹은 영국 판사들이 사형 선고를 내릴 때처럼 참혹한 의식들의 대표자가 자신의 가발 위에 작은 검은색 모자를 얹은 것과 같이, 창조적인  전문 계급과 그 지식인들의 시대는 물론 스티브 잡스가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인 이 시대엔 검은색이 ‘쿨하다cool’는 개념과 함께 새로운 방식의 사제직을 선택하는 색으로 변모하며 생명력을 대여받았다. 이런 진지한 사람들은 예술적인 사람일 수도 있지만, 분명하고 꾸밈없으며 정갈한 사람이기도 하다. 루드비히 비트켄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블랙을 더러움과는 거리가 먼 색이라고 여겼듯 검은색은 선명하며 명쾌하다. 최근 발명된, 반타 블랙Vanta Black으로 불리는 가장 검은 검은색은 거의 아무 빛도 반사하지 않는 색인데 스텔스stealth [7]위성에 사용되는 것으로 특허를 받았다. 현재 방위 산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있는 혁신들도 이 예를 따르고 있다. 나노 시스템Nany Systems 제작자들은 색채 효과로 저명한 영국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에게 이 색의 사용 독점권을 제공하는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계약을 맺었다. 검은색의 부상은 수퍼 쿨super-cool하다.

[1] 룩카Lucca : 이탈리아 서북부, 플로렌스 지방 서쪽.

[2] 하데스Hades: 그리스신화에서 죽은 자들의 신이다. 여기에선 죽은 자들의 세계를 의미한다.

[3]사티로스satyr;satyros: 그리스신화 속 반인반수 숲의 정령이며 포도주와 황홀경의 신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호색가들이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비극들 사이에 진행되는 익살스러운 사티로스극satyros play은 이 이름에서 유래했다.

[4] 성 마우리시오Saint Maurice: 성 마우리티우스, 성 모리스로도 불린다. 로마 출신 군인이었으며 우상숭배를 거부하여 처형당했다.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오토1세가 그를 수호성인으로 모셨으며, 독일계 상인 조합인 검은머리길드(The brotherhood of bleackheads; Bruderschaft der Schwarzhäupter)의 수호성인이다.

[5] 퀘이커Quakers: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6] 헨리 포드 Henry Ford(1863,7,30~1947,4,7): 미국의 자동차 포드Ford 사의 창설자.

[7] 스텔스Stealth: 항공기나 유도탄 등을 제작할 때, 레이더 전파를 흡수하는 형상이나 자재 또는 도장(塗裝) 따위를 사용하는 기술로 항공기나 미사일이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도록 하는 군사과학기술이다.

 Black                                                       37

오늘날까지 페루와 볼리비아 고원 원주민의 생존은 라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는]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중요했을 뿐 아니라, 토착민들의 믿음의 체계에서 낙타류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16세기 스페인사람들은 볼리비아 라마모(毛)가 스페인 양모보다 품질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수 십년에 걸쳐 식민지 이전 라마수의 10%만 남기고 몰살시켰다. 안데스의 양치기들은 무리에서 개별 동물들을 묘사할 수 있는 종(種)분류법demotic taxonomy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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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of refinement, Goethe says, disliked bright colours, which were for “uncivilized nations and children”, instead wearing black for men. Despite some times being portrayed as devilish, it now signifies the cool self-discipline of the wearer.

괴테가 말하기를, 교양있는 사람들은 “비문명적인 국가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밝은 색상을 싫어하며, 대신 남성들은 검은색 옷을 입는다고 했다. 한 때는 검은 옷을 입는 것이 악마적인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그것은 지금은  냉철한 자기 수양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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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ptember 5th was designated 1983 in Bolivia as International Indigenous Women’s Day in honour of Aymarán military leader Bartolina Sisa Vargas and of the indispensable role played by generations of indigenous women in the 500-year struggle for decolonisation.

1983년 볼리비아에서는 9월 5일을 국제토착여성의날 International Indigenous Women’s Day 로 지정하여 아얄라 Aymarán 군 지도자 바르톨리나 시사 바르가스 Bartolina Sisa Vargas 에게 경의를 표하고, 500년간의 탈식민화 투쟁에서 토착 여성들이 했던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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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 understand is that culture belongs to the person who lives it. It doesn’t belong to he who stopped living. I see that there are many cultures, or many customs, that have disappeared, but, nevertheless, they say, it is ours but they don’t live it anymore. They’ve changed their ways of celebrating, their clothing, everything has changed. And where they have their past, they only have a museum, a doll dressed up, that is like that. But not in Taquile, it is still alive, it is walking. Well, Taquile in this case would be like a living museum.

내가 이해하는 바로 문화는 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속하며, 문화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나는 많은 문화와 관습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라진] 문화나 관습이 자신들의 것이라 말한다. 그들이 축하하는 방식, 옷,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유일하게 그들의 과거가 존재하는 곳은 박물관이나 전통 옷을 입은 인형들에서다.  그러나 타킬레Taquile에서는 문화가 여전히 살아서 걸어다니고 있다. 타킬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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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 카네도 파티뇨 | Beatriz Canedo Patiño

이 직물은 인도네시아의 자티왕이Jatiwangi 주변 지역에서 여성 협동조합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제조되는 기와를 보여준다. 여성들은 정밀한 작업을 함으로써 남성들보다 더 수입이 많으며, 모두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점토의 채굴은 벼농사와 함께 진행된다. 바틱batik[1]은 이 지역의 전통 공예품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모두가 그 천을 입고 있다.

“나는 볼리비아인입니다. 그러나 수 년간 뉴욕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뉴욕은 그 물동량(物動量) 때문에 파리나 밀라노를 제치고 세계 패션의 중심지가 된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볼리비아에서 회사를 운영 중인데, 나는 디자인을 하면서 다른 재봉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든 옷들이 ‘메이드 인 볼리비아 Made in Bolivia ’라벨로 나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의 귀향은 감정적인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자가 “라파스에서 이런 멋진 여자가 뭘 하고 있을까”와 비슷한 제목으로 나를 인터뷰했던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왜 뉴욕을 두고?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것의 핵심은 경쟁력 있는 가격입니다. 나는 MBA를 취득한 사람이 아니라 디자이너이지만, 토론토에서 500벌의 의류 주문을 받았을 때 자리에 앉아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곳의 재봉사들은 정규적인 훈련을 받지는 않았지만, 정교한 작업을 하는데 문제는 없었습니다.  우스운 것은 이런 훌륭한 재단의 전통이 영국인들이 철도를 건설할 때 가져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때 몇몇 영국인 재봉사들이 함께 들어왔고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이 일과 잘 맞는 이유는 내가 기술디자이너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이 때문에 아마도 나는 항상 미스터 카네도 Mr. Canedo라는 이름으로 우편물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누구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단지 그들은 의류 사업 뒤에 여자라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내가 귀국했을 때, 우리의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의 팀이 방문하였고 그들은 내가 그의 대통령 취임식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기를 원했습니다. 글쎄요, 그들은 분명히 내 명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내 말은,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많은 유명인들에게 옷을 입혀왔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가 알파카 실로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상류층 볼리비아인들은 알파카를 입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에게 알파카는 하녀나 집사가 입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나에게 [대통령이 취임식에 입을] 옷을 제작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500년 만에 [선출된] 첫번째 원주민 대통령인 그가 정말 멋있게 보이길 바랬습니다. 비록, 진짜 볼리비아 스타일대로 그들이 매우 늦게 그 일을 넘겨줬기 때문에 나에게는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요구한 것은 대통령이 넥타이를 매고 싶어하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이 점은 나와는 상관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대통령은 자신의 문화, 아이마라Aymará와 동일시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퀘추아Quechua사람이 아니라 아이마라 사람입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그가 그냥 손쉽게 아르마니 정장이나 그와 비슷한 것을 고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출장으로 매우 바빴기때문에 부통령인 알바로 Álvaro가 와서 나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해 주었고, 나중에는  내가 만든 시안들을 보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정장이 알파카로 만들어질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국기가 빨강, 노랑, 초록색으로 충분히 요란스럽기 때문에 정장의 색깔은 은은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장에 아이마라의 문양들을 수놓기로 했습니다. 는 이 일에 매우 진지하게 임했고 이곳에 오거나 전화를 거는 이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취임식을 열흘 앞두고도 나는 그 문양들에 대한 모든 조사를 직접 다 했는데, 그게 내가 일 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까다롭다고 부르지만, 그게 그저 평범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들은 내가 대통령을 위해 옷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언론에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전세계의 언론들이 대통령의 취임식옷을 만드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때로는] 모욕적인 태도도 보이며, 돈을 제안하고, 카메라를 가져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나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믿기 어렵게도, 그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밖에 있는 나무에 오를 정도였습니다. 물론 취임 후에는 더 이상 그들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진지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나는 모든 낙타류 섬유에 대한 연구와 심포지엄과 더불어 그 주제의 국제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있었으며, 그 섬유들을 내 디자인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초호화 섬유이자 가장 가는 섬유인 비쿠냐vicuña[2]는 캐시미어보다 훨씬 더 질이 좋고 게다가 훨씬 예쁜데, 캐시미어 염소가 아주 못생긴 것에 비해 비쿠냐는 매우 우아한 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비쿠냐를 처음으로 사용한 디자이너입니다. 나는 일부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불구하고 비쿠냐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 말인 즉슨, 우리는 낙타과의 그 동물을 죽이지는 않으면서도 비쿠냐의 털은 깎을 수 있으며, 이는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농민들campesionos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 볼리비아에서는 비쿠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칠레에서 열린 지난 심포지엄에서 나와 우리 회사만이 이를 디자인하고 제조할 수 있다고 인정받았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것은 진지한 작업입니다. 이는 신성한 직물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우리가 진지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 말은, 최근 인터뷰를 하면서 오바마 부인에게 남편의 취임식 때 무엇을 입을지를 어떻게 조언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산타크루즈의 소위 수준 높은 신문은 나 외에도 몇몇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내가 한 말을 바탕으로 시안을 그렸고, 이에 나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이것은 나의 시안이 아닙니다. 머리는 너무 크게 그렸고, 물론 우리는 불쌍한 오바마 부인이 엉덩이가 크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날에는 이를 절대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 방식! 내 말은, 코트의 길이는 드레스와 같아야 하는데, 그럼 그녀는 눈 속에서 지갑을 어떻게 들고 다닐 것입니까? 그녀는 얼어붙을 것이고, 게다가 알다시피 여왕과 공주들은 뒤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돈을 지불해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결코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산타크루즈 언론과의 싸움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인터뷰어는 상당히 멍청했습니다. 나는 오바마 부인이 세련되고 우아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스카프를 두르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보석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카라카스 Caracas[3]에서와 약간 비슷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피부, 피부, 피부; 보석, 보석, 보석 등 모든 것을 지나치게 과장합니다. 이에 첫 번째로 내가 말한 것은 “매우, 매우 작은 보석” 이었는데, 특히 지금 영부인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등장하는 것은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 비해 너무 화려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 바틱 batik: 인도네시아를 원산지로 하는 염색의 독특한 기하학적인 무늬나 천의 명칭

[2] 비쿠냐vicuña: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평야 고지에서 서식하는 낙타과의 동물, 비쿠냐의 털은 캐시미어를 능가하는 최고급의 섬유이자 2-3년에 한 번씩만 털깎기가 가능한 희귀한 섬유이다.

[3] 카라카스 Caracas: 베네수엘라의 수도.



1972

노동조합trade union으로 설립된 인도의 자영업자 여성회(SEWA)는 917년 간디가 주도한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영감을 얻은 아나수야 사라바이Anasuya Sarabhai[1]라는 여성에 의해 1920년에 설립된 섬유 노동 조합에서 출발했다. 조합의 여성회는 1954년 제분소 노동자들의 아내와 딸을 연수하는데 중점을 두고자 결성되었지만, 이것이 의류 생산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가장 많은 착취를 당한 일부 자영업자 ‘가정주부’ 여성 재단사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노조를 촉진한 또 다른 그룹의 여성들은 거리에서 살면서 아마다바드[2]의 옷 시장에서 수레 끄는 일을 하는 이민 여성들이자 도매와 소매 시장 사이에 많은 옷을 나르는 ‘헤드 로더’[3]들이었다. 포목 도매상들을 무색하게 한 그들의 성공은 중고 의류 상인으로 일하는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자영업자들도 자체 노동조합을 가질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을 위해 투쟁하게 했으며, 마침내 그것이 인정되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섬유와 의류, 새 것과 중고품이 표준화된 금속 컨테이너를 타고 들어오고 나간다. 칸들라 Kandla[4]는 주요 중고품 환적 항구이다. 컨테이너에는 바다나 항구와 배 안에서 그들의 행방을 즉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RFID 태그가 붙어있다. 대다수의 항구에서는 사람의 도움 없이 컴퓨터 정보가 시키는 대로 작동하는 기중기들에 의해 [컨테이너가] 어디로 옮겨져야 하는지가 지시되고 조정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차례대로 도착하는 평평한 대형 화물차가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는 순서와 일치하도록 동기화된다. 오늘날의 로봇화 된 물류 시스템은 세계적인 생산 체인과 빠른 패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옷과 직물이 실제로 팔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울 동대문과 상파울루 시내와 같은 도매 소매 시장에서는 물류는 계속해서 손수레, 50cc 자전거 또는 자신의 어깨에 의지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라파스[5]에서는 인간 적재 운반선인 아파라피타스 aparapitas[6]가 시장 구역의 경계를 훨씬 넘어 운송한다. 이러한 경우 비록 공식적인 결합이 없더라도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는 관례에 근거한 임시 조합이 있다. [그러나] 스페인 령 세우타[7]와 멜리야[8]를 거쳐 모로코와 등지로 오가며 제도화된 ‘밀반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쟁세계에서는 그러한 임시조합이 없다. 이곳 여성들은 국경을 가로지르는 촘촘한 복도같은 길을 다니며 최대 100kg에 달하는 짐을 나르고 있다. 한 여성이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부터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는 나에게 미래가 없을 때 어떻게 꿈을 가질 수 있느냐고 대답했다. 이런 맥락에서 SEWA의 존재와 수명은 특별한 것이다.

[1] 아나수야 사라바이(Anasuya Sarabhai)는 여성 노동 운동의 선구자이었고 1920 년에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섬유 노동자 연합을 설립했습니다. 

[2] 아마다바드(Ahmedabad)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 최대의 도시로 인구는 351만 5,361명이다. 

[3] Head loader은 머리에 짐을 이고 나르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

[4] 칸들라(Kandla)는 Gandhidham시 근처의 인도 서부 구자라트 주 Kutch District에있는 항구입니다. 쿠치 만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해안의 주요 항구 중 하나입니다.

[5] 라파즈La Paz는 볼리비아의 행정 수도이다. 1548년 에스파냐의 알론소 데 멘도사 선장이 건설했다.

[6] 아파라피타스(aparapita)는 볼리비아 시장에서 서로 다른 물품을 등에 업고 운송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7] 세우타Seuta,Ceuta는 아프리카 모로코 북부, 지브롤터 해협 연안에 위치한 스페인의 고립 영토이자 자치 도시이다. 

[8] 멜리Mellia는 스페인의 자치 도시. 세우타와 마찬가지로 이베리아 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 본토에 위치해 모로코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다. 



Jaket 자켓

아크릴 섬유 재질의 자수; 2009년 라파스에서 구입. 이 자수는 2009년 볼리비아 혁명 정부 시기에 판매되었다. 자켓에 수놓아져 있는,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Che Guevara[1] 의 상징적인 이미지는 전세계의 의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산주의 영웅의 이 얼굴은 “노스탤지어의 상품화된 표현”이라고 불리었다.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의 20세기 여러 독재 집권기 중 하나가 진행중이던 1987년10월 9일 볼리비아에서 CIA(미국중앙정보부) 배후의 암살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거의 모든 암살사건에는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히 미국이 배후에 있었다. 196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초반 사이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억압과 대량학살, 고문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여기에는] 미국의 훈련과 다양한 지원이 연루되어 있었다.
이런 지점에서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2] 대통령의 당선은 혁신적이었으며, 모랄레스 정권이 2009년 2월에 설립한 새 국가 헌법 또한 그러했다. 대다수의 볼리비아 시민들이 한달이나 먼저 헌법 개정 총선거에 표를 행사했다. 새로운 헌법은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혁신적인 헌법이라 주장했고, 법령 전문(前文)에서 지난날 볼리비아 물 전쟁Water War[3]을 포함한 모든 고군분투와 과거 순교자들의 노력을 인정했다. 체 게바라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미지가 당시 급속도로 확산되었던 것은 대중이 체 게바라 역시 순교자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새 헌법은 볼리비아의 다민족적plurinational 성격과 생태계에 대한 책임 이 두가지를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법률, 경제, 문화와 언어의 다원주의를 선언하며, 헌법초안을 아이마라어, 케추아어와 스페인어로 작성함으로써 그것을 실현하였다. 그 외에도 국내에서 사용하는 다른 많은 언어들도 열거하여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나아가 “환경 시스템과 지역 거주민의 공동체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 인프라와 개발 프로젝트의 영향을 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서 자본주의 세계를 분노하게 하기도 했다.

[1]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6.14~1967.10.9: 본명Ernesto Guevara de la Serna. 아르헨티나 출생의 쿠바 정치가이자 혁명가다.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를 만나 쿠바 혁명Cuban Revolution에 가담했고 라틴아메리카 민중혁명을 위해 싸우다 볼리비아에서 사망하였다.

[2]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볼리비아의 전 대통령이다. 2005년 취임해 2019년까지 14년이라는 최장 집권 기록을 남겼으며 최초의 볼리비아 원주민(아이마라족) 출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천연가스 등 주요 기간산업을 국유화해서 재정수입을 확충하고, 복지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빈곤 해소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개헌을 하여 4선 연임을 시도하였고 2019년 11월 10일 부정선거 논란으로 시위가 일어나자 사임한 뒤 멕시코로 망명했다.

[3] 볼리비아 물전쟁Water War (Guerra del agua en cochabamba): 볼리비아는 1980년대 외환위기이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수도 민영화를 받아들였다. 미국의 건설 기업인 벡텔Bechtel이 지배하고 있는 기업 아구아스Aguas del Tunari가 상하수도 운영권을 갖게 되었고 코차밤바Cochabamba 시의 물 공급을 독점하며 물 값을 대폭 올렸으며 빗물, 농업용수사용에도 요금을 매겼다. 이에 2001년 시민들이 민영화 철폐를 주장하며 투쟁했고 4월 경 볼리비아 정부는 위 기업과의 계약을 폐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