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huna / Llama-Bone Pick Tool    24  

직조를 위해서는 베틀을 뒤트는 방법과 백스트랩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정하여 가장자리를 고르게 유지하는 등의 기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토착 미국인들의 직조방식은 유럽식의 플로어 베틀treadle loom과는 다르다. 미국인들의 직조의 경우 날실의 개수와 색상이 아주 신중하게 계산되어 디자인을 만드는데 이러한 기술은 나이든 여성들로부터 전수된다. 직조공은 디자인을 기억하기 위해서 라마뼈로 만든 위추나 집게 wichuna pick를 사용하여 날실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직조의 기본 구조 위에 유지되는 이 여분의 원사들은 표면을 가로질러 떠있고,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복잡한 공정에서 디자인이 완성된다. 직조공은 추가하거나 줄이기 위해서 원사를 집어 들어야 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혹은 계산하지 않고서도 디자인 형식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직조공은 간단한 장비를 사용하여 비교적 복잡한 패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디자인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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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re-colonial Mexico the emperor Moctezuma had an aviary of exotic birds to garner feathers for cloaks and head-dresses which needed 300 attendants. The Spanish invaders in the Andean region were so worried at their use by Indigenous shamans that they banned them.

식민지 이전 멕시코의 목테쭈마Moctezuma 황제는 300여명의 참석자에게 필요한 망토와 머리장식용 깃털을 모으기 위해 이국적인 새들을 키우는 커다란 사육장을 가지고 있었다. 안데스 지역의 스페인 침략자들은 원주민 샤먼들이 이 깃털 장식을 이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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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erman-colonised Togo, there was call for a “cotton Kulturkampf” against the USA, and to this end freed black American slaves were brought in as role models. Their insistence on using the plough undermined women’s independence as cultivators.

독일 식민지 토고(Togo)에서는 미국에 대항하는 “면직 문화캠프cotton Multurkampf”에 대한 요구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 해방된 흑인 미국 노예들이 역할모델로 유입되었다. 그들은 쟁기 사용을 주장했고, 이는 경작자로서의 여성의 독립성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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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combination chaka nayra sounds nice as a name, but has no exact meaning in Aymará. Chaka means bone and nayra means eyes or big eyes. But nayra can also be understood as an extension of the eyes, or as gaze or gaze into the distance. Chaka nayra, then, could just as well be translated as “bone with the big/beautiful eyes” or “bony gaze into the distance”.

챠카 나이라chaka nayra라는 단어조합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이마라어Aymara[1]에는 이에 해당하는 정확한 의미는 없다. 챠카chaka는 뼈라는 뜻이고, 나이라nayra는 눈 혹은 큰 눈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이라nayra는 눈의 확장으로, 혹은 시선이나 멀리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차카 나이라 chaka nayra는 “큰/아름다운 눈을 가진 뼈” 혹은 “멀리 바라보는 뼈”로 번역될 수도 있다.

[1] 아이마라어Aymara: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과 알티프 고원지역에 사는 아이마라 민족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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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a / Carrier Cloth         19

안데스의 직조는 긴 역사동안 양면이 같은 직물을 창조해왔다. 양면을 가진 천cloth of two faces이라고 칭해지는 이 직물은 유럽에서 보기 드문 품질이었다. “이 전체에서 실 한오라기도 그 직물이 끝나는 점도 찾을 수 없도록 안데스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작업을 양면으로 제작했습니다.” (아코스타Acosta, 1590년,  4권 42부) [안데스인들은] 흠이나 얼룩 없이 잘 짜여진 직물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There was a time in the Renaissance when the cost of the colour was as crucial as the hue itself, costing “at least five good florins an ounce” according to one painter’s contract. By contrast, the 19th-century factory version of the colour has been compared to fast food.

르네상스 시대에는 [후원자와] 화가의 계약에 따라 “온스당 최소 5 플로린의 가격”을 지불하며, 안료의 비용이 안료의 색조 만큼  결정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세기의 공장에서 생산된 색상은 패스트푸드에 비유되어 왔다.

 Attacks on independent textile trade unions and their demands for a proper minimum wage in post-earthquake Haiti use the worldwide rationalisation that it would make their product ‘uncompetitive’.

독립적인 섬유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과 지진 후 아이티에서 적절한 최저 임금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아이티의 제품을 ‘경쟁력이 없게’ 만들 것이라는 국제적인 합리화를 이용한다.

While the beauty of the naked male ‘native’ Australian could not be reconciled with European notions of masculinity, their ‘lack’ of shame has to be met with disgust or ridicule. The ridicule was returned in full by Aboriginal women to the faces of fully dressed invaders.

벌거벗은 남성 호주 원주민의 아름다움은 유럽의 남성성에 대한 관념과 조화될 수 없었고, [나체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던 그들[원주민]은 혐오나 조롱에 직면해야 한다. 호주 원주민 여성들은 그 비웃음을 옷을 입은 침략자들의 면전에 그대로 되돌려줬다.

Fighting Glove                        9

팅구’Tinku’라 불리는 의식은 한때 안데스 세계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고, 어쩌면 서기 1100년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갈 것이다.2월 초 볼리비아 고원 사람들은 사카카 마을로 걸어간다. ( 산악 지대를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걸어 다니는 것) 주로, 자급자족 농민들이 춤을 추고 치차([그 지역에서] 호밀로 만든 발효 음료)를 마시고 피가 대지를 물들일 때까지(Stain) 서로 싸운다. 남자들이 거리에서 서로 맞서 싸우지만 때로는 여성들도 똑같이 싸운다. 일부 남성은 가죽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지만, 전투는 맨주먹으로도( 맨손으로) 할수 있다. 구경꾼들은 때때로 한쪽이 불공평한(경쟁이 안되는) 시합을 파하기 위해 끼어들기도 한다. 얼굴과 팔다리에 타박상을 입을 뿐만 아니라 사망자도 발생 할 수 있다.

One of the first weaving innovations was that of passing the weft over two warp threads instead of one, which in Bronze Age Europe needed the invention of a loom with more than one heddle. In the same period, perhaps earlier, Peruvian weavers were using similar techniques. The distinctive twill pattern is of diagonal lines and diamond shapes.

최초의 직조 기술 중 하나는 한 가닥이 아닌 두 가닥의 워프 실을 넘기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에 유럽은 한 쪽 이상의 손잡이를 가진 베틀의 발명이 필요했다. 같은 시기에, 혹은 더 일찍이 페루 스웨터에도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독특한 트윌 패턴은 대각선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되어 있다.

Following 20 years of mass protests by Bangladeshi workers and the deaths of many of them in factory fires and collapses, they win a 76% increase in the minimum wage. This was opposed by the employers even though wages remain the lowest in a low-paid global industry.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20년간의 대규모 시위와 공장 화재와 붕괴로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한 후, 그들은 최저임금을 76% 인상받았다. 임금이 저임금 글로벌 산업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은 이를 반대했다.

I am beginning to understand what was never explained to me. I was only presented with incomplete facts. My family drew the cowl over me, but I am no nun. I wear a suit of armor, I am Catalina de Erauso. I killed one of them with this weapon. It was simple. He had not anticipated that I would come so close. His bloody breath clung to me as he was laid low. I do not know how many came before him. It is also of no consequence. Not to me. And they are used to making sacrifices. On this we agree.

나는 나에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불완전한 사실만을 전달받았다. 우리 가족은 나를 속였지만, 나는 수녀가 아니다. 나는 갑옷을 입은 카탈리나 데 에라우소이다. 난 이 무기로 그들 중 한 명을 죽였다. 그것은 간단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가까이 올 줄 몰랐었다. 그의 피비린내 나는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 왔는지 모른다. 그것은 또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겐 아냐. 그리고 그들은 희생을 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동의한다.

Ujutas, Ajotas / Sandals     26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샌들. 사슬을 매고 있는 누비아인과 아시리아 죄수들의 모습이 그러져 있다. 이집트의 오랜 숙적을 상징하는 8개의 아치 또한 그려져 있다. 이로써 그는 그의 적을 계속해서 짓밟을 수 있다. 18세기 브라질에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흑인들은 노예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 도시 거리를 걸을 때 신발을 신었다. 일례로 노동권을 가졌는지 여부가 불분명했던 한 여성은 “신발을 신는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이유로 공무원에 의해 곤경을 모면할 수 있었다.

 “And off they sailed in a pea-green boat” “into the snot-green sea”, “dressed in goose-shit green”.

“그리고 그들은 완두같은 초록색pea-green 배를 탔다네” “콧물같은 초록색snot-green 바다 속으로” “거위 똥 같은 초록색goose-shit green 옷을 입고”

 

When, in desperation, Zoran Bulatovic, leader of the RASKA textile workers trade union, cut off his little finger with a hacksaw on live television in Novi Pazar, the Serbian media were quick to equate labour disputes with psychopathic acts.

RASKA 섬유노동자 노동조합의 대표인 조란 불란토비치가 절망에 가득차 노미 파자르 TV 생방송에서 줄톱으로 그의 새끼손가락을 절단했을 때, 세르비아 언론은 재빠르게 노동쟁의를 정신병적 행위와 동일시했다.

The peasant weaver of exquisite hand-made baskets confounds the economic ‘law’ of economies of scale. He tells a businessman why it is that the more he produces, the more it will cost: if he or he and all his neighbours and family started production, no-one would any longer work his fields. “In such a case corn and beans would get so expensive that none of us could buy any and we would all starve to death.”

정교한 수제 바구니를 짜는 농민은 규모의 경제 ‘법칙’에 당혹한다. 그는 한 사업가에게 그가 더 많이 생산할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이유를 말한다. 만일 그 혹은 그의 이웃과 가족이 바구니를 만들기 시작한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아무도 일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경우 우리 중 누구도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옥수수와 콩은 비싸질 것이고 우리는 모두 굶어 죽을 것입니다.”

Eke’ko / Ceramic Figure     2

에케코Eke’ko는 두 팔로 넓은 몸짓을 하고 때로는 갈라진 입술 사이로 타오르는 담배를 꽂아 넣어 꾸민 유쾌한 작은 사람이다. 에케코는 아이마라어로 ‘나를 사줘’라는 뜻이다. [에케코] 그는 알라시타스 미니어쳐를 [파는] 행상인으로 팔과 등에 짐을 지고 있다. 에케코는 또한 안데스 대지의 어머니인 파차마마Pachamama와 관련되어 있으며, 생명의 유지자로서 매우 존경을 받고 있다.

The customisation of denim matches a demand for what is not mass-produced. Strike Gold, Pure Gold, and Iron Heart ranges have understood how personal identity can be manifested in exclusive denim.

데님의 맞춤 제작은 대량 생산이 아닌 제품에 대한 전세계적 요구에 부합했다. 스트라이크 골드Strike Gold, 퓨어 골드Pure Gold, 아이언 하트Iron Heart 등의 제품군은 어떻게 개인의 정체성이 특정한 데님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In India, an estimated 100,000 GM cotton farmers committed suicide in the period 1991 to 2009 when the promise of greater yields did not materialise. They were faced with impossible debt, drinking the very pesticide they had bought to improve their situation but whose cost formed part of that debt.

생산량 증대라는 전망이 실현되지 않았던 1991년부터 2009년 사이 인도에서는 약 100,000명의 GM목화 농부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은 상환이 불가능한 부채에 직면하게 되자 농약을 마셨다. 이 농약은 농부들이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구입했지만, 구매비용이 다시 부채의 일부가 된 바로 그 농약이었다.

마르쿠스 뵈르괴테르Markus Wörgötter는 예술가이자  사진작가, 그래픽 디자이너로 빈에 거주하고 있다. https://www.markuswoergoetter.com/

Inkuña / Ritual Manta or Carrying Cloth              45

잉쿠냐inkuña는 4개의 셀비지selvage를 가진 직사각형 모양의 워프페이스warp-faced 기법으로 짜여진 운반용 천으로 코카 잎이나 음식을 담는 데 사용되었던 테두리가 잘린 천을 말한다. 그것은 대부분 여성들이 대지mother earth나 다른 신들deities에게 제물을 바치는 데 사용되었다. 

What was unthinkable in earlier centuries changed in the fifteenth.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Western clothing, grey – relegated until then to work clothes, the poor,

and the habits of Franciscan monks, which were meant to be colourless – became popular among the upper classes of Europe.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 15세기에 와서 바뀌었다. 이전까지 회색은 작업복, 가난한 자 그리고 채도가 없는 색을 사용하는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의 관습적으로 입는 색으로 격하되었으나, 서양 의복 역사상 처음으로 회색은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One main aim of the uprising led by Tupac Amaru II and Micaela Bastidas against the Spanish authorities of Peru, was to free Indians from the prisons that call themselves cloth workshops, where they “were destined for a quick civil death”.

 페루의 스페인 당국을 상대로 투팍 아마루 2세와 미카엘라 바스티다스가 주도한 봉기의 주요 목적은 “사람들을 빠르게 죽음으로 내모는” 직물 작업장으로 불리는 감옥으로부터 인디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Weaving substantiated women’s powers, as Andeans knew well. Neither colonialism nor modern capitalism can obliterate a textile’s soul.

안데스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베 짜는 것은 여성의 힘을 입증했다. 식민주의도 현대 자본주의도 직물의 영혼을 소거할 수 없다.

Woman’s Shirt                      32

2005 년 12 월 8 일 워싱턴 DC에서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알란 가르시아가 미국-페루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2006년 6월 페루와 2007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비준되었다. 2007년 12월 19일 페루 의회는 편무적(片務的) 법령에 따라 정부가 FTA 관련 법률을 시행하도록 6 개월의 위임 기간을 부여했다. 이러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행정부는 99개의 입법령 초안을 작성했다. 2009년 2월 1일 협정이 발효되었다. 많은 입법령은 페루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LD 1083(수자원의 효율적인 사용 및 보존 촉진)은 수자원을 광업 회사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쪽으로 민영화할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은 LD 1090(임업 및 삼림 동물법)이다.

Just as the crinoline craze had died down in Europe in 1875, it reached Africa. Its spread among black women with money horrified a puritan minister who “went with two elders from house to house … and we confiscated all crinoline to burn them to death before their eyes with the others joyfully laughing”.

1875년 유럽에서 크리놀린 열풍이 잦아들었을 때, 그것은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렀다. 크리놀린의 유행은 돈을 가진 흑인 여성들 사이에 퍼져 청교도 목사를 섬뜩하게 했다. 청교도 목사는 “집집마다 어른 두 분과 함께 다녔고… 그리고 우리는 모든 크리놀린을 압수하여 낄낄거리며 웃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눈앞에서 크리놀린을 태워 없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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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nger sewing machine becomes a worldwide tool both for industry and for domestic work. By 1913 the company was selling two and a half million machines per year. It gave more women their own means of production but also brought them into the realm of super-exploited work.

싱거 재봉틀은 산업과 가정을 위한 세계적인 도구이다. 1913년까지 그 회사는 매년 250만대의 기계를 팔았다. 이 재봉틀은 많은 여성들에게 생산수단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극도의 착취적 노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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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온드레이슈카Boris Ondreika (1969)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예술가, 큐레이터, 작가이자 tranzit.sk의 전 감독이다. 그는 매니페스타 8과 더이벤트2011을 공동 기획했고, 베니스, 프라하, 규므리, 빈, 토리노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Tullmas / 6 Everyday and Festival Hair Ties   16

라파스의 촐리타cholita는 센트로 centro라고 불리는 네 겹의 속치마, 밝은 폴레라/뽀예라 polleras(큰 원피스 스커트), 장식이 달려 있고 깔끔하게 접어 등을 감싸도록 입는 만타스mantas, 머리에 잘 맞는 작은 펠트 중산모를 쓴다. 그들은 쌀쌀한 겨울이나 비가 오는 여름엔 알파카나 아크릴 레그 워머를 입고 때로는 모자를 비닐봉지로 싸매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흙 투성이의 거리를 양말 없이 에나멜 가죽이나 투명한 플라스틱 슬립온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닌다. 촐리타 스타일은 두세 달마다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예를 들어 모자의 높이는 센티미터 단위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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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desired dye-stuff in a colourless Europe used to make the deepest red cloth, was a monopoly of the Spanish colonialists in Mexico despite espionage efforts to know its secrets. In the 16th century only gold had more value as a Mexican export.

유럽인들이 열망하는 진한 붉은 색 천을 만드는 염료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간첩 활동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독점하고있었다. 16세기에는 금만이 멕시코 수출품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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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l weavers in Wiltshire, England rioted against wage reduction, which, the cloth merchants said, “would not only make the poor more laborious, more diligent, more virtuous, and not at all lessen the consumption of provisions and necessaries, it would be a national blessing, and no real injury to the poor.”

 영국 윌트셔Wiltshire의 울 직조공들은 임금 삭감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직물 상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노동하도록 만들고, 더 부지런하고, 더 덕망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식료품과 생필품의 소비를 조금도 줄이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축복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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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광부. 라파스의 산업지구인 엘 아토El Alto에서 코미볼COMIBOL 광업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모임의 일원이다. 이 프로젝트는 2003년에 시작되고 볼리비아의 다른 광산 타운들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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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ano | 루치아노

“나는 45년간 구두닦이로 일했습니다. 나는 14세때부터 이 직업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나에게는 가족이 있었지만 얼마 후 아내는 죽었고, 현재 나는 자식들과 살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자식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제 모두 성장했습니다. 나는 항상 구두를 닦으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여기 볼리비아에서 많은 가정들이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웃의 볼리비아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오직 신만이 이들이 어떻게 매일매일을 헤쳐나가고 살아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이곳의 경제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 자신을 신께 맡기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 버려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무것도 없이 거리에 버려져 있으며, 집도 없이 거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 슬픈 일입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그들은 거리에서 자야만 합니다. 어린 아이들, 버려진 고아들 역시 모두 먹을 것도 없이 거리에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이곳에 살면서 이런 일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며, 여기 라파스에서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이 주택 공급과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크고 아름다운 나라. 그러나 이곳에는 주민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아름답고, 땅이 넓지만, 잘 조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물론 새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변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며, 경제 상황이 더 좋아진다면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볼리비아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조직이지만, 여전히 볼리비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아시죠? 그리고 또한, 나는 우리가 일자리 공급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여기에 더 많은 회사들이 있다면, 이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생계를 위해, 수프를 위해 몇 페소 쯤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돈을 가진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언제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우리는 이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구, 그리고 미래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미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새로운 미래를 찾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볼리비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세계의 사람들이고, 우리는 모두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신께서 우리를 모두 똑같이 만드셨음으로 우리는 어떤 색이든 간에 다 똑같습니다.  그것이 내 의견입니다.

나는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깁니다. 다른 나라에서 사람들이 오면 나는 항상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나에게는 전세계의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독일,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포르투갈에서 온 여행객들 말입니다. 그들은 내 직업을 통해서 나를 알았고, 나를 비디오나 사진으로 찍어줍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나에게 ‘당신은 국제적인 구두닦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전세계에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내가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나는 65살이고 여기, 내 자리, 이 호텔에서 45년간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이곳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매일 일합니다. 호텔에 도착하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내가 항상, 매일, 일년 내내 일하는 곳입니다. 언제든 당신이 돌아올 때마다 호텔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는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에 더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기억하도록 이 실뭉치 ball를 주겠습니다. 기념품입니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우리나라에서는 풀오버나 춤파chumpa[1]를 뜨기 위해서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뭉치를 만들면 됩니다. 보세요, 이렇게요. 잘 관리해주세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1] 춤파 chumpa: 짧고 허리에 꼭 조인 재킷



2005

"토착민의 지식은 ... '왜' 라는 원인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에 대한 지식이다. undocumented affiliates그것은 또한 기록되거나 주제에서 소외될 수 없다. 오히려 토착지식을 다루거나 조종하는 주체의 헌신을 요구한다. 원주민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은 의식ritual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까바시또Caballito[1] 지역의 한 직물 스웻샵sweatshop[2]에서 발생한 화재로 밀입국 볼리비아 이민자 어린이 4명과 여성 2명 총 6명이 사망했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출신 노동자는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화재는 이민자 60여 명이 근무하던 작업장의 위험하고도 과도한 배선에 의한  누선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당시] 아이들은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에 갇혀 있었다. 공식적인 노동조합 대표자가 없는 상태에서 파르케 아베야네다[3] Parque Avellaned의 지역 모임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여성재봉사 노동조합 the Union of Seamstress Workers은 이전에도 노예와 같은 작업환경에 대한 보고서와 사례를 발표해왔다. 노조가 미등록 계열 회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경찰은 피해자들이 국민신분증인 DNI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작은 가게들 중 일부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고용하는 노동자들보다 아주 조금 더 버는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곳[스웻숍]에서는 싸구려 가짜-라벨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호Soho, 몽테뉴Montagne, 치키Cheeky 와 같은 아르헨티나의 시내 중심가 라벨을 위한 옷, [즉, 아르헨티나 시내의 작은 부티끄 옷집에 납품할 옷]을 만들었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은 이익을 벌어들이는 것은 바로 그들, 소매상들이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부유한 나라들이 자체 섬유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경쟁력을 가져야 했고, 이 때문에 ‘불법적인’ 이민을 허용한다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일례로, 이것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잘 입증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와 주변 지역에 있는 버논Vernon[4]의 스웻샵들은 이 도시의 더러운 비밀중 하나인데, 대략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작은 ‘스웻샵’이나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런 입지조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스앤젤레스는] 패션이나 스타일과 강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류 산업이 나쁜 평판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는 생활임금 조례의 통과를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생활임금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균열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권력을 가진 소매상들과 제조업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공장을 소유하거나 운영하지 않는” 시스템을 좋아한다. 의도적인 혼란을 야기하는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는 근로 조건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이다. 라틴계 노동자들은 하청 계약 사슬을 통해 나쁜 평판을 받는 경향이 있는 한국 사장들에 의해 자주 착취를 당한다. 이러한 압박은 언제나 짧은 납품 마감일, 포장이나 바코드 위치잡는데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벌금을 내게 하는 매우 엄격한 통제와 함께 위에서 내려온다. 한 제조업체는 “소매업자들이 상점이 아닌 부두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압박과 더불어, 덜 조직화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위험들이 찾아온다. [이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대응은 강제적으로 작업장을 회사로 전환하고, 이민 노동자들을 정식으로 고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라메다Alameda 운동단체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번 개혁은 작업장의 모든 책임을 작업장 운영자에게 전가하려는 것인데, 작업장 주인들도 역시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 그들도 큰 상표[회사]에 의해 착취당하고, 옷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은 돈이라도 지불해야한다, 결국 그들 도 다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개혁은 라벨들[회사들]의 모든 법적 책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좀 더 최근인 2010년 알라메다는 “노 체인” 을 트레이드 마크로 설정한 태국 회사와 함께 텍스타일 회사인 몬도 알라메다Mondo Alameda의 설립을 가능하게 했다.

[1] 부에노스 아이레스(스페인어: 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이다. 남아메리카 동남부 라플라타 강의 하구에 자리한 항구 도시이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2] 스웻샵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하는 작업장을 일컫는다. 대개는 1) 고용계약이 없고, 2) 노동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며, 3) 아무때나 해고당할 수 있는 등 아무 보장이 없는 작업조건 하에 일하는 곳을 말하며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산업혁명 당시, 즉 183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의 영국에서 처음으로 스웻샵이 나타났다. 기존의 도제와 장인으로 이루어지던 공방이 점차 스웻샵으로 대체되었으며 하도급제도가 이를 더욱 부추겨 말단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프리드리히 엥겔스로 하여금 그의 중요한 논문 “영국 노동자의 현황”(1844/1845)을 발표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이미 로ㄷ래전에 스웻샵이 사라졌으나 기업생산체계의 글로벌화로 인해 개발도상국가나 제 3세계로 이동한 것에 불가하다.

https://3space-environment-glossary.com/glossary/%EC%8A%A4%EC%9B%BB%EC%83%B5sweat-shop/

[3] 아베야네다(Avellaneda)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항구도시이다. 아베야네다 파르티도의 중심도시이며, 약 30여 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4] City of Vernon. 캘리포니아 주 소재이며, 트루 디텍티브 시즌 2에 등장하는 ‘빈치 시’의 모티브가 되는 도시다. 인구는 114명인데 상주하는 노동인력은 7만명이나 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