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kuña / Ritual Manta or Carrying Cloth              45

잉쿠냐inkuña는 4개의 셀비지selvage를 가진 직사각형 모양의 워프페이스warp-faced 기법으로 짜여진 운반용 천으로 코카 잎이나 음식을 담는 데 사용되었던 테두리가 잘린 천을 말한다. 그것은 대부분 여성들이 대지mother earth나 다른 신들deities에게 제물을 바치는 데 사용되었다. 

What was unthinkable in earlier centuries changed in the fifteenth.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Western clothing, grey – relegated until then to work clothes, the poor,

and the habits of Franciscan monks, which were meant to be colourless – became popular among the upper classes of Europe.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 15세기에 와서 바뀌었다. 이전까지 회색은 작업복, 가난한 자 그리고 채도가 없는 색을 사용하는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의 관습적으로 입는 색으로 격하되었으나, 서양 의복 역사상 처음으로 회색은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One main aim of the uprising led by Tupac Amaru II and Micaela Bastidas against the Spanish authorities of Peru, was to free Indians from the prisons that call themselves cloth workshops, where they “were destined for a quick civil death”.

 페루의 스페인 당국을 상대로 투팍 아마루 2세와 미카엘라 바스티다스가 주도한 봉기의 주요 목적은 “사람들을 빠르게 죽음으로 내모는” 직물 작업장으로 불리는 감옥으로부터 인디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Weaving substantiated women’s powers, as Andeans knew well. Neither colonialism nor modern capitalism can obliterate a textile’s soul.

안데스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베 짜는 것은 여성의 힘을 입증했다. 식민주의도 현대 자본주의도 직물의 영혼을 소거할 수 없다.

Woman’s Shirt                      32

2005 년 12 월 8 일 워싱턴 DC에서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알란 가르시아가 미국-페루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2006년 6월 페루와 2007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비준되었다. 2007년 12월 19일 페루 의회는 편무적(片務的) 법령에 따라 정부가 FTA 관련 법률을 시행하도록 6 개월의 위임 기간을 부여했다. 이러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행정부는 99개의 입법령 초안을 작성했다. 2009년 2월 1일 협정이 발효되었다. 많은 입법령은 페루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LD 1083(수자원의 효율적인 사용 및 보존 촉진)은 수자원을 광업 회사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쪽으로 민영화할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은 LD 1090(임업 및 삼림 동물법)이다.

Just as the crinoline craze had died down in Europe in 1875, it reached Africa. Its spread among black women with money horrified a puritan minister who “went with two elders from house to house … and we confiscated all crinoline to burn them to death before their eyes with the others joyfully laughing”.

1875년 유럽에서 크리놀린 열풍이 잦아들었을 때, 그것은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렀다. 크리놀린의 유행은 돈을 가진 흑인 여성들 사이에 퍼져 청교도 목사를 섬뜩하게 했다. 청교도 목사는 “집집마다 어른 두 분과 함께 다녔고… 그리고 우리는 모든 크리놀린을 압수하여 낄낄거리며 웃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눈앞에서 크리놀린을 태워 없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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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nger sewing machine becomes a worldwide tool both for industry and for domestic work. By 1913 the company was selling two and a half million machines per year. It gave more women their own means of production but also brought them into the realm of super-exploited work.

싱거 재봉틀은 산업과 가정을 위한 세계적인 도구이다. 1913년까지 그 회사는 매년 250만대의 기계를 팔았다. 이 재봉틀은 많은 여성들에게 생산수단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극도의 착취적 노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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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온드레이슈카Boris Ondreika (1969)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예술가, 큐레이터, 작가이자 tranzit.sk의 전 감독이다. 그는 매니페스타 8과 더이벤트2011을 공동 기획했고, 베니스, 프라하, 규므리, 빈, 토리노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Tullmas / 6 Everyday and Festival Hair Ties   16

라파스의 촐리타cholita는 센트로 centro라고 불리는 네 겹의 속치마, 밝은 폴레라/뽀예라 polleras(큰 원피스 스커트), 장식이 달려 있고 깔끔하게 접어 등을 감싸도록 입는 만타스mantas, 머리에 잘 맞는 작은 펠트 중산모를 쓴다. 그들은 쌀쌀한 겨울이나 비가 오는 여름엔 알파카나 아크릴 레그 워머를 입고 때로는 모자를 비닐봉지로 싸매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흙 투성이의 거리를 양말 없이 에나멜 가죽이나 투명한 플라스틱 슬립온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닌다. 촐리타 스타일은 두세 달마다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예를 들어 모자의 높이는 센티미터 단위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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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desired dye-stuff in a colourless Europe used to make the deepest red cloth, was a monopoly of the Spanish colonialists in Mexico despite espionage efforts to know its secrets. In the 16th century only gold had more value as a Mexican export.

유럽인들이 열망하는 진한 붉은 색 천을 만드는 염료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간첩 활동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독점하고있었다. 16세기에는 금만이 멕시코 수출품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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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l weavers in Wiltshire, England rioted against wage reduction, which, the cloth merchants said, “would not only make the poor more laborious, more diligent, more virtuous, and not at all lessen the consumption of provisions and necessaries, it would be a national blessing, and no real injury to the poor.”

 영국 윌트셔Wiltshire의 울 직조공들은 임금 삭감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직물 상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노동하도록 만들고, 더 부지런하고, 더 덕망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식료품과 생필품의 소비를 조금도 줄이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축복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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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광부. 라파스의 산업지구인 엘 아토El Alto에서 코미볼COMIBOL 광업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모임의 일원이다. 이 프로젝트는 2003년에 시작되고 볼리비아의 다른 광산 타운들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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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ano | 루치아노

“나는 45년간 구두닦이로 일했습니다. 나는 14세때부터 이 직업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나에게는 가족이 있었지만 얼마 후 아내는 죽었고, 현재 나는 자식들과 살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자식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제 모두 성장했습니다. 나는 항상 구두를 닦으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여기 볼리비아에서 많은 가정들이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웃의 볼리비아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오직 신만이 이들이 어떻게 매일매일을 헤쳐나가고 살아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이곳의 경제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 자신을 신께 맡기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 버려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무것도 없이 거리에 버려져 있으며, 집도 없이 거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 슬픈 일입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그들은 거리에서 자야만 합니다. 어린 아이들, 버려진 고아들 역시 모두 먹을 것도 없이 거리에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이곳에 살면서 이런 일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며, 여기 라파스에서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이 주택 공급과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크고 아름다운 나라. 그러나 이곳에는 주민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아름답고, 땅이 넓지만, 잘 조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물론 새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변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며, 경제 상황이 더 좋아진다면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볼리비아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조직이지만, 여전히 볼리비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아시죠? 그리고 또한, 나는 우리가 일자리 공급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여기에 더 많은 회사들이 있다면, 이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생계를 위해, 수프를 위해 몇 페소 쯤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돈을 가진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언제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우리는 이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구, 그리고 미래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미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새로운 미래를 찾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볼리비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세계의 사람들이고, 우리는 모두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신께서 우리를 모두 똑같이 만드셨음으로 우리는 어떤 색이든 간에 다 똑같습니다.  그것이 내 의견입니다.

나는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깁니다. 다른 나라에서 사람들이 오면 나는 항상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나에게는 전세계의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독일,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포르투갈에서 온 여행객들 말입니다. 그들은 내 직업을 통해서 나를 알았고, 나를 비디오나 사진으로 찍어줍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나에게 ‘당신은 국제적인 구두닦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전세계에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내가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나는 65살이고 여기, 내 자리, 이 호텔에서 45년간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이곳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매일 일합니다. 호텔에 도착하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내가 항상, 매일, 일년 내내 일하는 곳입니다. 언제든 당신이 돌아올 때마다 호텔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는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에 더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기억하도록 이 실뭉치 ball를 주겠습니다. 기념품입니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우리나라에서는 풀오버나 춤파chumpa[1]를 뜨기 위해서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뭉치를 만들면 됩니다. 보세요, 이렇게요. 잘 관리해주세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1] 춤파 chumpa: 짧고 허리에 꼭 조인 재킷



2005

"토착민의 지식은 ... '왜' 라는 원인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에 대한 지식이다. undocumented affiliates그것은 또한 기록되거나 주제에서 소외될 수 없다. 오히려 토착지식을 다루거나 조종하는 주체의 헌신을 요구한다. 원주민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은 의식ritual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까바시또Caballito[1] 지역의 한 직물 스웻샵sweatshop[2]에서 발생한 화재로 밀입국 볼리비아 이민자 어린이 4명과 여성 2명 총 6명이 사망했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출신 노동자는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화재는 이민자 60여 명이 근무하던 작업장의 위험하고도 과도한 배선에 의한  누선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당시] 아이들은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에 갇혀 있었다. 공식적인 노동조합 대표자가 없는 상태에서 파르케 아베야네다[3] Parque Avellaned의 지역 모임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여성재봉사 노동조합 the Union of Seamstress Workers은 이전에도 노예와 같은 작업환경에 대한 보고서와 사례를 발표해왔다. 노조가 미등록 계열 회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경찰은 피해자들이 국민신분증인 DNI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작은 가게들 중 일부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고용하는 노동자들보다 아주 조금 더 버는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곳[스웻숍]에서는 싸구려 가짜-라벨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호Soho, 몽테뉴Montagne, 치키Cheeky 와 같은 아르헨티나의 시내 중심가 라벨을 위한 옷, [즉, 아르헨티나 시내의 작은 부티끄 옷집에 납품할 옷]을 만들었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은 이익을 벌어들이는 것은 바로 그들, 소매상들이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부유한 나라들이 자체 섬유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경쟁력을 가져야 했고, 이 때문에 ‘불법적인’ 이민을 허용한다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일례로, 이것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잘 입증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와 주변 지역에 있는 버논Vernon[4]의 스웻샵들은 이 도시의 더러운 비밀중 하나인데, 대략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작은 ‘스웻샵’이나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런 입지조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스앤젤레스는] 패션이나 스타일과 강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류 산업이 나쁜 평판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는 생활임금 조례의 통과를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생활임금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균열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권력을 가진 소매상들과 제조업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공장을 소유하거나 운영하지 않는” 시스템을 좋아한다. 의도적인 혼란을 야기하는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는 근로 조건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이다. 라틴계 노동자들은 하청 계약 사슬을 통해 나쁜 평판을 받는 경향이 있는 한국 사장들에 의해 자주 착취를 당한다. 이러한 압박은 언제나 짧은 납품 마감일, 포장이나 바코드 위치잡는데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벌금을 내게 하는 매우 엄격한 통제와 함께 위에서 내려온다. 한 제조업체는 “소매업자들이 상점이 아닌 부두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압박과 더불어, 덜 조직화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위험들이 찾아온다. [이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대응은 강제적으로 작업장을 회사로 전환하고, 이민 노동자들을 정식으로 고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라메다Alameda 운동단체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번 개혁은 작업장의 모든 책임을 작업장 운영자에게 전가하려는 것인데, 작업장 주인들도 역시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 그들도 큰 상표[회사]에 의해 착취당하고, 옷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은 돈이라도 지불해야한다, 결국 그들 도 다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개혁은 라벨들[회사들]의 모든 법적 책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좀 더 최근인 2010년 알라메다는 “노 체인” 을 트레이드 마크로 설정한 태국 회사와 함께 텍스타일 회사인 몬도 알라메다Mondo Alameda의 설립을 가능하게 했다.

[1] 부에노스 아이레스(스페인어: 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이다. 남아메리카 동남부 라플라타 강의 하구에 자리한 항구 도시이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2] 스웻샵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하는 작업장을 일컫는다. 대개는 1) 고용계약이 없고, 2) 노동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며, 3) 아무때나 해고당할 수 있는 등 아무 보장이 없는 작업조건 하에 일하는 곳을 말하며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산업혁명 당시, 즉 183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의 영국에서 처음으로 스웻샵이 나타났다. 기존의 도제와 장인으로 이루어지던 공방이 점차 스웻샵으로 대체되었으며 하도급제도가 이를 더욱 부추겨 말단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프리드리히 엥겔스로 하여금 그의 중요한 논문 “영국 노동자의 현황”(1844/1845)을 발표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이미 로ㄷ래전에 스웻샵이 사라졌으나 기업생산체계의 글로벌화로 인해 개발도상국가나 제 3세계로 이동한 것에 불가하다.

https://3space-environment-glossary.com/glossary/%EC%8A%A4%EC%9B%BB%EC%83%B5sweat-shop/

[3] 아베야네다(Avellaneda)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항구도시이다. 아베야네다 파르티도의 중심도시이며, 약 30여 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4] City of Vernon. 캘리포니아 주 소재이며, 트루 디텍티브 시즌 2에 등장하는 ‘빈치 시’의 모티브가 되는 도시다. 인구는 114명인데 상주하는 노동인력은 7만명이나 되는 곳이다.



Pistachio | 피스타치오

‘아부 키르의 색깔들The Colours of Abu Kir’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483번째 밤에 시작되는 염색공 아부 키르와 아부 시르의 이야기- 아부 키르는 마음이 선한 아부 시르와 함께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오직 푸른 색으로만 직물을 염색하는 어느 이름모를 왕국으로 가는 악인이다. 비록 그 염색공들이 푸른색에 대해 들어만 봤을 지언정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방도가 있었다. 아부 키르는 왕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저는 모든 색깔의 가장 매력적인 색조를 어떤 옷감에도 담을 수 있습니다. 장미, 대추 같은 모든 종류의 붉은색, 숯, 칠흑, 콜가루 같은 모든 종류의 검은색, 풀, 피스타치오, 올리브, 잉꼬앵무새 같은 모든 종류의 녹색, 유자, 오렌지, 레몬, 금과 같은 모든 종류의 노란색 말입니다. 저는 이 모든 색들을 마음껏 다룰 수 있습니다만, 이 도시의 염색공들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다. 『무굴 제국의 황제 아크바르가 선물 받은 의상의 순위에 대하여 On Ranking the Gifts of Cloth Received by the Mughal Emperor Akhbar』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황실 옷장에 보관된 의복은 들어온 일, 월, 년도에 따라, 또한 색깔, 가격, 무게에 따라 나열된다. 그러한 나열을 오늘날에는 세트라고 부른다. 관리원들은 그에 따라 모든 의상의 정도를 정하고, 이를 천 조각에 써서 옷 끝에 붙여 둔다. 황실 옷장에 같은 종류의 의복이 파르와딘지Farwardinj 달의 우르무즈드Urmuzd 날 (첫 번째 날)에 도착하면, 질이 좋다면, 다른 날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높은 등급을 부여 받는다. 의복의 가치나 우선고려 사항 또는 그 외의 사항이 동일한 경우에는 옷이 입고된 날의 특성에 의해 등급이 결정된다. 그러나 입고된 날의 특성까지 비슷할 때는 더 가벼운 것을 더 높은 등급에 두었고 무게가 같은 경우에는 색깔에 따라 나열했다. 색깔 별 등급 순서는 이러했다: 퍼스 fus, 사피달클리아safidalclia, 루비색, 황금색, 주황색, 황동색, 크림슨(진홍색), 잔디 녹색, 목화색, 산달우드색, 아몬드색, 보라색, 포도색, 앵무새 담자색, 꿀색, 갈색빛 라일락색, 라바만자니Ravaamanjani 꽃 색, 카스니(치커리)의 꽃 색, 사과색, 건초색, 피스타치오, 보즈파트라bhojpatra 색, 분홍색, 밝은 파랑색, 쿨가Qulghah 꽃 색, 물색, 오일색, 적갈색, 에메랄드색, 중국도자기풍 청색, 바이올렛색, 밝은 분홍색, 망고색, 사향색, 파크타Fakhtah 비둘기 색.” 일본의 전통색은 그 역사적 기원이 중국의 5원소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관위십이계(冠位十二階)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색과 위계에 연관된 정교하고 섬세한 법체계를 이룬다. 오늘날 465개의 전통색이 널리 알려져 사용되고 있다. 이름이 없는 색을 포함해 1300개 이상의 오래된 색상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이러하다: 따오기ibis 날개 색, 자두꽃쥐색, 팥색, 새벽색dawn colour, 오랑우탄색, 새우갈색, 새벽-색dawn-colour, 감물색, 멀건 감색, 사이프러스 껍질색, 우러난 겨자갈색, 강한 적갈색(중국 차 갈색), 헹궈낸 적색, 외국산 진홍색(크림슨), 고기색, 가죽밤색, 진한 치자나무색, 윤광나는 갈색, 세련된 감색, 삶은 갈색 빛 팥 색, 원추리꽃 색, 합법적 염료(신분에 따라 색 사용이 규제되었던 시기부터), 썩어가는 잎 색, 개량조개 황갈색, 쐐기풀 대나무(문자 그대로 ‘그을음’), 달걀색, 건조되지 않은 벽 색, 아첨꾼 갈색(문자그대로 아첨갈색), (건조하고 풍화시킨) 황금회색 대나무, 황금빛 오크, 빛 바랜/쇠퇴한 센노 리큐의 차, 천년 묵은 갈색, 달걀껍질 종이 색, 차 밭에서의 사색, 찐 밤색, 연한 어린 파, 천년된 녹색, 말꼬리색, 방울새 색, 버드나무 차, 요염한 쪽빛 차, 인디고 청각속조류(Podium -> Codium)의 연약한 미역 갈색, 버드나무 이파리 밑면, 병의 안쪽, 천가지 허브 색, 푸른 검은 가재, 항구 쥐, 철 창고, 기모노 보관소, 비밀의 색 / 청금석의 푸른색, 녹슨 연두색, 토끼귀 붓꽃, 꽃 반대의 색깔, 하늘색, 단지 안을 들여다 본 색, 거친 양모 색, 칙칙한 위스티리어 등나무, 비둘기 깃털 회색, 덩굴 포도, 가짜 보라색, 사라지는 붉은 쥐, 위스티리아 등나무와 타버린 대나무, 백람(白藍), 젖은 까마귀 날개.



Acrylic Rope | 아크릴 밧줄

2010년 라파스La Paz의 철물점에서 구입. 안데스 옷감에서 발견한 디자인들과 그 케추아어quechua [1]이름들: 알코 유삐alqo yupi (개 발톱을 뜻하는 뜨개질 디자인), 차스까chaska (별), 칠리-칠리chili-chili (약용 식물), 껜코k’enko (지그재그 모양의 장미들), 레이 빨레이ley pallay (밝은 배경위에 둘이나 세가지 색상의 추가 실로 만든 어두운 무늬), 야마 시유llama sillu (라마 발자국), 냐위ñawi (눈eye), 빠까이pakay (씨앗이 들어있는 꼬투리), 빨레이pallay (전 상태로 돌아가다, 실을 줍다), 빠따 빨레이pata pallay (둘이나 세가지 색상 만을 이용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히 많은 디자인들), 삔치초pichincho (안데스의 작은 새), 뿌마흐뿌뀐pumaqmaquin (퓨마 발자국), 뿌이또puyto (큰 다이아몬드), 껜꼬qenqo (지그재그, 종종 번개나 강을 상징), 라끼 라끼raki raki (양치식물), 띡까t’ika (꽃), 띠끄야tiqlla (불연속적 날실을 이용한, 복잡하고 뒤틀린 체계에서 비롯된 디자인), 비즈카차vizcacha (안데스의 쥐), 와카흐 냐윙wakaj ñawin (소의 눈).

페루의 몇 염료들: 칠쿡꽈chilq’ua (페루 전역에서 자라나는 잡초 덤불.밝은 녹색을 얻기 위해 사용하며 매염(媒染)성의 황산구리와 결합하면 훨씬 어두운 녹색을 만들 수 있다), 꾹오예q’uolle (노란색 염료, 코치닐 염색통과 함께 사용해서 황금색을 만든다. 싱싱한 상태로 쓰기 보다는 주로 채집해서 건조 후에 사용한다), 빠로-빠로palo-palo (복숭아빛 연어색 색채 범위를 만들어 내는 정글의 덩굴 식물), 낀사 꾹추kinsa q’uchu (실질적인 천연 염료, 검은 호두와 비슷함. 식물 이파리들에서 자라는 곰팡이에서 염색 속성을 발견했다. 매염제는 잎의 탄닌tannin[2]에서 추출했다. 그밖의 매염제는 필요하지 않으며 놀라운 터키/청록색을 자아낸다), 인디고indigo (낮은 고도에서 자라는 남미의 또다른 야생식물이지만 고지대에 도입되었다.)

색 과정에서 인디고를 사용하는 것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1)  발효 (갓 딴 신선한 잎을 이용) 2) 환원된 천연 인디고와 요소(尿素, 소변에서 자연적으로 검출된 화학물) 3) 환원된 천연 인디고와 과당(많이 익거나 썩은 과일, 특히 사과, 배, 바나나에서 검출된 과당). 코치닐Cochineal (가시많은 배 선인장류에 서식하는 딱정벌레에서 주로 추출해내는 염색제), 아와이삘리awaypili (건조하여 염료로 사용하는 보라색 잎. 어두운 푸른빛 자주색을 만드는 매개를 제공한다.)

[1] 케추아어Quechua: 남미 안데스 지역 잉카 문명권 공용어

[2] 탄닌tannin: 식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주 떫은 맛의 성분. 해독, 살균, 소염작용 등을 한다.

Acrylic Rope                                      47 

The garments stored in the Imperial wardrobe of the Mughal Emperor Akhbar, a cloth connoisseur who took a managerial role in its production, were arranged according to the days, months, and years, of their entries, and according to their colour, price and weight.

무굴 제국의 황제 아크바르는, 옷감 생산을 관리 감독했던 직물에 관한 전문가로, 그의 황실 옷장에 보관되어 있는 의복은 들어온 일, 월, 년도에 따라, 또 색상, 가격, 무게에 따라 배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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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rments stored in the Imperial wardrobe of the Mughal Emperor Akhbar, a cloth connoisseur who took a managerial role in its production, were arranged according to the days, months, and years, of their entries, and according to their colour, price and weight.

무굴 제국의 황제 아크바르는, 옷감 생산을 관리 감독했던 직물에 관한 전문가로, 그의 황실 옷장에 보관되어 있는 의복은 들어온 일, 월, 년도에 따라, 또 색상, 가격, 무게에 따라 배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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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uenos Aires 6 undocumented Bolivian migrants were killed by a fire in a garment workshop where over 60 worked in slave-like conditions. As in so many richer countries, a textile industry is maintained by allowing a level of illegal immigration so as to compete with low-waged producing countries.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6명의 불법체류 볼리비아 이주자들이 노예같은 환경에서 60여명이 일했던 의류 작업장에서 화재로 사망했다. 많은 부유한 나라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섬유 산업은 저임금 생산국들과 경쟁하기 위해 불법 이민을 일정 수준 허용함으로써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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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worked as a shoeshiner for 45 years, since I was 14 years old. There’s a lot of abandoned people here, left in the streets with nothing. That’s what I see here in La Paz. Here in Bolivia, people have to leave. Things have changed a little bit, but let’s hope they change a bit more, you know? Because what’s changing is still not enough, we still need more changes, a few more changes.

나는 14살 때부터 45년간 구두닦이로 일했습니다. 여기에는 버려진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아무것도 없이 거리에 남겨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 라파스에서 내가 보는 것입니다. 볼리비아의 이곳에서 사람들은 떠나야 합니다. 상황이 조금 변하긴 했지만, 좀 더 변했으면 좋겠는데, 알죠? 변화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변화, 조금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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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Quispe | 후안 끼스페

“내 이름은 후안 끼스페Juan Quispe이다. 나는 티티카카[1] 호수Lake Titicaca 의 타킬레[2]Taquile 섬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입고 있는지, 특히 여자들이 엮어 만든 파하 faja (넓은 벨트)와 남자들이 짠 추요 ch’ullu (울모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러나 먼저 너그러움(generosity)의 표시로 해석되는 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예를 들어] 내가 비록 천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천이 가지고 있는 그 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그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은 항상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것이다. 내 말은, 음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영혼이 피폐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기쁨 역시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천은 결핍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그 끝자락에 있다.  파하와 추요에 사용되는 상징은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이 사용했던 것과 같다. 예를 들어 현대 달력이 도입되었지만, 달력 벨트(chumpi calendario)를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새, 꽃, 농작물의 짜임새 패턴을 통해 시간을 본다. 우리는 집을 짓는 시기와 낚시철을 읽는다. 그리고 [그 벨트에는] 망자의 날, 새로운 동물의 탄생, 새해와 같은 몇몇 축제들이 적혀있다. 우리의 조부모님들도 같은 우주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직물은 발전되었고, [지금은] 무지개 색을 꽤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많은 색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왜 조상들은 무지개 색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조상들은 무지개를 경외시했고, 무지개 색은 사람을 태우거나 장(腸)을 꺼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변하고 있고, 우리는 무지개 색을 사용해서 [사람을] 불에 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조부모님들은 그런 식으로 무지개를 경외시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6월이나 5월에 무지개가 지면, 비가 곧 그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해가 질 때 무지개가 있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해가 뜰 때 무지개가 있다면 비가 올 것이다. 이것이 [일기]예보다. 아마도 우리 조부모님의 태도는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색상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직물이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내 여동생 중 한 명이 파하에 우주 왕복선 이미지를 엮였던 적이 있다. 나는 동생에게 왜 [우주선을] 엮었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물었고, 여동생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해에 챌린저 우주왕복선[3]이 이륙 직후 공중에서 폭발했을 때, 그 소식이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졌고, 여동생은 그 비극적 장면을 모두 보았었다.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자신이 느꼈던 것을 파하로 엮어냈던 것 같다.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 과거와 미래, 감정, 계획 그리고 경험은 파하에 기호를 통해 기록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는 문화는 그 시대의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며, 더 이상 그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많은 문화와 관습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그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들이 축하하는 방식, 그들의 옷,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들의 과거가 존재하는 곳은 박물관이나 전통옷으로 꾸며진 인형들이다. 하지만, 타킬레에서는 아니다. 문화는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타킬레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파하 역시 살아있다, 그것은 몸과 같다. 심장이 있고, [그 심장은] 마치 팔처럼 파하를 뒤에서 안전하게 지켜준다. 판매용이 아닌 흰색 줄무늬의 언더벨트가 있는 파하는 힘겨운 농사일을 하는 동안 그것을 찬 사람의 등을 받쳐준다.  그런가 하면 [파하는] 땋은 머리카락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살아있다.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뜨개질을 하거나 직물을 짜는 사람은 자신의 직물을 자를 수 없고, 그것은 죄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쉽게 직물을 자를 수 없다. 이제 추요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어렸을 때 뜨개질 하는 할아버지를 지켜보곤 했는데, 나는 거기에 정말 빠져들었다. [할아버지가 짠 추요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나도 추요를 짜고 싶었다. 내가 놀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어느 틈엔가 실[과 같은] 모든 뜨개질 재료를 꺼내 놓고서 ‘뜨개질을 해보련?’하고 말하셨고, 나는 ‘네. 뜨개질을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음, 할아버지가 나에게 막 실을 주려던 참이었는데, 할머니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한테 나가서 양떼를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뜨개질인데 왜 양떼를 먼저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어쨌든 밭으로 나가 양들과 함께 뛰어 놀았다. 그것 역시 매우 재미있었다. 양들과 같이 호수로 내려가서 목초지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어쨌든 몇 년이 지나서, 아니 몇 달 혹은 몇 년이 흘러 처음으로 어린 양이 태어나는 것과 양털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양털을 깎을 준비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양털을 깎으며, ‘그래, 너도 이제 너만의 실을 만들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나는 아뿌스칸 apuscan, 물레가락을 꿰어 보았다.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신념이나 할아버지의 믿음이 작용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말은, 그것은 나를 치료해준 약이었다.[그만큼] 나는 정말 [나의] 실을 만들고 싶었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실을 만들었다. 내가 막 실만들기를 마쳤을 때, 할아버지는 바늘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 이제 뜨개질을 해보자’라고 하셨다. 하얀색으로만, 양처럼 흰색으로만, 그때 나는 작은 새들과 상징들을 넣어가며 뜨개질을 하고 싶었지만, 먼저 완전히 하얀 모자를 완성해야 했다. 지루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뜨개질하는 것은 인내심, 즉 양털에서부터 모자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그 일을 해내었다, 무지의 흰 추요를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형편없었다. 모양도 별로였다. 내가 추요를 완성했을 때, 할아버지는 빨강, 파랑, 초록, 노랑 실을 꺼내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실을 바로 앞에 꺼내놓으셨다. [그리고는]‘이제 너만의 추요을 만들 수 있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작하였다. 우선 나는 그 색깔 조합 좋아하지 않았다. 나만의 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추요을 완성하고 나서 알게된 것은 나이든 형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놀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추요에 사용한] 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사용한 색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왜냐하면 내가 노란색과 초록색 혹은 [노란색과] 파란색을 조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색깔은 언제나 이곳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색 코드를 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색깔들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만약 내가 파란색 대신 검은색을 사용했다면, 그리고 빨간색 대신 더 어두운 색을 사용했다면, 사람들은 ‘왜 추요가 이런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너는 아니?’라고 물어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두운 색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란색은 너무 많이 반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색을 보고] 당신은 홀아비인가요? 어디에서 왔나요? 아마 다른 행성에서 온 거 아니예요?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요는 색상 코드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적인 것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두 똑같이 보이지만, 타킬레 사람들은[4]Taquileño는 직물을 보면 바로 알아차린다. 만약 당신이 나의 추요를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당신에게 후안의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뜨개질이나 직물로 서로를 알아 본다. 육안으로는 모두 똑같아 보이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색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함께 모여 살기로 할 때 커플이 직물을 짜는 기술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때로 소녀의 아버지가 추요가 만들어진 상태를 확인하기도 한다. 추요는 튼튼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튼튼해야 하고, 촘촘히 짜여져야 한다. [그래서] 또 어떤 가정에서는 [추요에] 물을 붓는 경우도 있다. 거의 온 가족이 그 젊은 남자가 추요를 잘 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방수가 되게 짰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 물이 여전히 추요 안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 안에서 역할을 시작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남서 해안 프랑스는 헥타르당 한 마리의 양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황폐한 습지였다. 양치기들은 그들의 양들이 먹을 더 좋은 풀을 찾으러 매일 긴 거리를 이동하고, 발을 건조하게 하기 위해 죽마를 사용했다. 그들은 쉬고 싶을 때면 막대기를 사용하여 삼각대를 만들었다. 3미터 상공에 자리잡고 털실로 옷을 짜면서 양떼들을 찾기 위해 지평선을 살폈다. 멀리서 양치기들을 본 사람들은 그들을 작은 뾰족탑과 거대한 거미에 비유했다.

2000년 당시 인구가 1900명으로 추산된 타킬레 섬은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해발 13,000피트(3,815m)에 있는 안데스 알티플라노(고원)의 안디안스 알티카카(고원)에 있는 섬이다. 케추아어Quechua를 사용하는 이 지역의 주민들은 드라마틱한 색감의 정교한 직물과 지역사회가 통제하는 관광의 모델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05년 유네스코는 타킬레와 그 직물 예술을 구전 유산과 무형 유산의 걸작으로 인정하였다.

[1] 티티카카 호는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호수이다. 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다. 또한 남아메리카에서 수량이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하다. 

[2] 타킬레은 티티카카 호수의 페루쪽에 위치한 섬으로 푸노시에서 45km 떨어져 있습니다. 섬에는 약 2,200 명이 살고 있는데, 크기는 5.5 x 1.6 킬로미터이고 면적은 5.72km²입니다.

[3] 챌린저 우주왕복선은 두 번째로 임무에 투입된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이다. 이름은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를 최초로 측정한 영국 탐험선 HMS 챌린저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4] 타킬레 섬 출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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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볼리비아 티후아나쿠 Tihuanacu(Tiwanaku) 에서 열린 제2차 미국 조직 및 운동 회의 American Organisations and Movements 에서 아이마라 족(族) 군사지도자 바르톨리나 시사 바르가스 Bartolina Sisa Vargas 를 기리며 9월 5일이 공식적으로 국제 토착 여성의 날로 지정되었다.

1780년대 초 페루와 알토 페루(현 볼리비아)의 고지대에서 퀘추아 족과 아이마라 족 일당이 스페인 압제자들과 싸웠다. 바르톨리나 시사는 남편 투팍 카타리와 함께 1781년 라파스를 포위한 4만여 명 이상의 군대를 이끌고 토착민 봉기를 이끌었다. 시사는 184일 동안 유지되었던 포위 공격의 지휘관이었으며, 11개월 후 반란군이 진압되며 처형당했다. 초기부터 바르톨리나는 혁명의회에서 여성을 고려하게 하는 등 이 운동에 역동적인 공헌을 하였다. 민중 봉기는 오늘날 사회 운동의 목표, 토착권의 회복, 안데스 지역의 풍부한 천연자원들에 대한 공평한 재분배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바르톨리나 시사는 말의 꼬리에 묶여 목에는 밧줄이 감기고, 벌거벗겨진 채 피를 흘리며 감옥에서 나온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반란군 지휘관인 그녀의 시누이 그레고리아 아파자 Gregoria Apaza 는 당나귀에 얹혀 나온다. 그들 각자의 오른손에는 셉터 scepter 같은 지팡이 십자가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 가시관이 쓰여져 있다. 그들 앞에서 죄수들은 나뭇가지로 땅을 깨끗이 쓸고 있다. 바르톨리나와 그레고리아는 교수형이 행해지기 전까지 볼리비아 라파스의 주요 광장을 몇 바퀴씩 돌면서 그들을 인도 여왕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돌과 비웃음 속에 고통 받는다. 선고문에는 그들의 머리와 손이 지역의 도시들에서 [본보기로] 전시될 것이라고 쓰여 있다.

 

바르톨리나의 숙명fate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9월 5일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날일 뿐만 아니라 500년간의 탈식민화, 토지개혁, 사회정의 투쟁의 역사에서 이름이 지워진 토착 여성들이 행했던 중요한indispensable 역할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날 볼리비아 농민 여성 바르톨리나 시사 전국 연맹 Bartolina Sisa National Federation of Bolivian Peasant Women (FNMCB-BS 또는 바르톨리나스 Bartolinas)은 힘있는 단체로 성장했다. 2010년 바르톨리나 지도자 닐다 코파 leader Nilda Copa 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 되었으며, 플뤼니얼 입법회 Plurinational Legislative Assembly 에는 여성대표자가 전체의 30%에 이르렀다. 더불어 전체 볼리비아 의회 의원 중 43%가 여성이다. 또한 현 정치 행정부는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예를 들어] 2006년과 2008년 사이에 정부는 농촌 여성들에게 10,300개의 부동산 소유권을 분배했다.

온두라스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서방으로부터 비난받지 않았던 2009년 쿠데타가 일어난 이래, 자신들의 토지를 보호하려 했던 마야인 12명과 31명의 노동조합원이 무차별적으로 살해된 바 있다. 이 쿠데타에는 섬유와 의류 분야에서 일하는 11만 명의 여성들이 참여했으며, 당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미국의 ‘자유 무역’ 이자에 대항해 아메리카 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 Bolivarian Alternative for America 에 서명했던 마누엘 셀라야 Manuel Zelaya 정부에 맞선 쿠데타였다. 바르톨리나와는 달리 베르타 카세레스 Berta Cáceres 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토착민 출신의 환경주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사실이 2016년 그녀의 암살이나 2017년 딸의 목숨을 노리는 뻔뻔한 시도를 막지는 못했다. 정권의 테러 전략이나 노동자와 협상하기보다는 공장 문을 닫아버리는 섬유 기업들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2015년과 2017년 캐나다 소유의 길단 Gildan 공장에서 9,000명의 여성들이 2년간의 투쟁 끝에 노조 결성권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