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토착민의 지식은 ... '왜' 라는 원인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에 대한 지식이다. undocumented affiliates그것은 또한 기록되거나 주제에서 소외될 수 없다. 오히려 토착지식을 다루거나 조종하는 주체의 헌신을 요구한다. 원주민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은 의식ritual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까바시또Caballito[1] 지역의 한 직물 스웻샵sweatshop[2]에서 발생한 화재로 밀입국 볼리비아 이민자 어린이 4명과 여성 2명 총 6명이 사망했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출신 노동자는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화재는 이민자 60여 명이 근무하던 작업장의 위험하고도 과도한 배선에 의한  누선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당시] 아이들은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에 갇혀 있었다. 공식적인 노동조합 대표자가 없는 상태에서 파르케 아베야네다[3] Parque Avellaned의 지역 모임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여성재봉사 노동조합 the Union of Seamstress Workers은 이전에도 노예와 같은 작업환경에 대한 보고서와 사례를 발표해왔다. 노조가 미등록 계열 회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경찰은 피해자들이 국민신분증인 DNI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작은 가게들 중 일부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고용하는 노동자들보다 아주 조금 더 버는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곳[스웻숍]에서는 싸구려 가짜-라벨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호Soho, 몽테뉴Montagne, 치키Cheeky 와 같은 아르헨티나의 시내 중심가 라벨을 위한 옷, [즉, 아르헨티나 시내의 작은 부티끄 옷집에 납품할 옷]을 만들었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은 이익을 벌어들이는 것은 바로 그들, 소매상들이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부유한 나라들이 자체 섬유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경쟁력을 가져야 했고, 이 때문에 ‘불법적인’ 이민을 허용한다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일례로, 이것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잘 입증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와 주변 지역에 있는 버논Vernon[4]의 스웻샵들은 이 도시의 더러운 비밀중 하나인데, 대략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작은 ‘스웻샵’이나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런 입지조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스앤젤레스는] 패션이나 스타일과 강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류 산업이 나쁜 평판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는 생활임금 조례의 통과를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생활임금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균열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권력을 가진 소매상들과 제조업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공장을 소유하거나 운영하지 않는” 시스템을 좋아한다. 의도적인 혼란을 야기하는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는 근로 조건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이다. 라틴계 노동자들은 하청 계약 사슬을 통해 나쁜 평판을 받는 경향이 있는 한국 사장들에 의해 자주 착취를 당한다. 이러한 압박은 언제나 짧은 납품 마감일, 포장이나 바코드 위치잡는데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벌금을 내게 하는 매우 엄격한 통제와 함께 위에서 내려온다. 한 제조업체는 “소매업자들이 상점이 아닌 부두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압박과 더불어, 덜 조직화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위험들이 찾아온다. [이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대응은 강제적으로 작업장을 회사로 전환하고, 이민 노동자들을 정식으로 고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라메다Alameda 운동단체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번 개혁은 작업장의 모든 책임을 작업장 운영자에게 전가하려는 것인데, 작업장 주인들도 역시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 그들도 큰 상표[회사]에 의해 착취당하고, 옷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은 돈이라도 지불해야한다, 결국 그들 도 다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개혁은 라벨들[회사들]의 모든 법적 책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좀 더 최근인 2010년 알라메다는 “노 체인” 을 트레이드 마크로 설정한 태국 회사와 함께 텍스타일 회사인 몬도 알라메다Mondo Alameda의 설립을 가능하게 했다.

[1] 부에노스 아이레스(스페인어: 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이다. 남아메리카 동남부 라플라타 강의 하구에 자리한 항구 도시이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2] 스웻샵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하는 작업장을 일컫는다. 대개는 1) 고용계약이 없고, 2) 노동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며, 3) 아무때나 해고당할 수 있는 등 아무 보장이 없는 작업조건 하에 일하는 곳을 말하며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산업혁명 당시, 즉 183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의 영국에서 처음으로 스웻샵이 나타났다. 기존의 도제와 장인으로 이루어지던 공방이 점차 스웻샵으로 대체되었으며 하도급제도가 이를 더욱 부추겨 말단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프리드리히 엥겔스로 하여금 그의 중요한 논문 “영국 노동자의 현황”(1844/1845)을 발표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이미 로ㄷ래전에 스웻샵이 사라졌으나 기업생산체계의 글로벌화로 인해 개발도상국가나 제 3세계로 이동한 것에 불가하다.

https://3space-environment-glossary.com/glossary/%EC%8A%A4%EC%9B%BB%EC%83%B5sweat-shop/

[3] 아베야네다(Avellaneda)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항구도시이다. 아베야네다 파르티도의 중심도시이며, 약 30여 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4] City of Vernon. 캘리포니아 주 소재이며, 트루 디텍티브 시즌 2에 등장하는 ‘빈치 시’의 모티브가 되는 도시다. 인구는 114명인데 상주하는 노동인력은 7만명이나 되는 곳이다.



Pistachio | 피스타치오

‘아부 키르의 색깔들The Colours of Abu Kir’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483번째 밤에 시작되는 염색공 아부 키르와 아부 시르의 이야기- 아부 키르는 마음이 선한 아부 시르와 함께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오직 푸른 색으로만 직물을 염색하는 어느 이름모를 왕국으로 가는 악인이다. 비록 그 염색공들이 푸른색에 대해 들어만 봤을 지언정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방도가 있었다. 아부 키르는 왕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저는 모든 색깔의 가장 매력적인 색조를 어떤 옷감에도 담을 수 있습니다. 장미, 대추 같은 모든 종류의 붉은색, 숯, 칠흑, 콜가루 같은 모든 종류의 검은색, 풀, 피스타치오, 올리브, 잉꼬앵무새 같은 모든 종류의 녹색, 유자, 오렌지, 레몬, 금과 같은 모든 종류의 노란색 말입니다. 저는 이 모든 색들을 마음껏 다룰 수 있습니다만, 이 도시의 염색공들은 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한다. 『무굴 제국의 황제 아크바르가 선물 받은 의상의 순위에 대하여 On Ranking the Gifts of Cloth Received by the Mughal Emperor Akhbar』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황실 옷장에 보관된 의복은 들어온 일, 월, 년도에 따라, 또한 색깔, 가격, 무게에 따라 나열된다. 그러한 나열을 오늘날에는 세트라고 부른다. 관리원들은 그에 따라 모든 의상의 정도를 정하고, 이를 천 조각에 써서 옷 끝에 붙여 둔다. 황실 옷장에 같은 종류의 의복이 파르와딘지Farwardinj 달의 우르무즈드Urmuzd 날 (첫 번째 날)에 도착하면, 질이 좋다면, 다른 날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높은 등급을 부여 받는다. 의복의 가치나 우선고려 사항 또는 그 외의 사항이 동일한 경우에는 옷이 입고된 날의 특성에 의해 등급이 결정된다. 그러나 입고된 날의 특성까지 비슷할 때는 더 가벼운 것을 더 높은 등급에 두었고 무게가 같은 경우에는 색깔에 따라 나열했다. 색깔 별 등급 순서는 이러했다: 퍼스 fus, 사피달클리아safidalclia, 루비색, 황금색, 주황색, 황동색, 크림슨(진홍색), 잔디 녹색, 목화색, 산달우드색, 아몬드색, 보라색, 포도색, 앵무새 담자색, 꿀색, 갈색빛 라일락색, 라바만자니Ravaamanjani 꽃 색, 카스니(치커리)의 꽃 색, 사과색, 건초색, 피스타치오, 보즈파트라bhojpatra 색, 분홍색, 밝은 파랑색, 쿨가Qulghah 꽃 색, 물색, 오일색, 적갈색, 에메랄드색, 중국도자기풍 청색, 바이올렛색, 밝은 분홍색, 망고색, 사향색, 파크타Fakhtah 비둘기 색.” 일본의 전통색은 그 역사적 기원이 중국의 5원소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관위십이계(冠位十二階)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색과 위계에 연관된 정교하고 섬세한 법체계를 이룬다. 오늘날 465개의 전통색이 널리 알려져 사용되고 있다. 이름이 없는 색을 포함해 1300개 이상의 오래된 색상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이러하다: 따오기ibis 날개 색, 자두꽃쥐색, 팥색, 새벽색dawn colour, 오랑우탄색, 새우갈색, 새벽-색dawn-colour, 감물색, 멀건 감색, 사이프러스 껍질색, 우러난 겨자갈색, 강한 적갈색(중국 차 갈색), 헹궈낸 적색, 외국산 진홍색(크림슨), 고기색, 가죽밤색, 진한 치자나무색, 윤광나는 갈색, 세련된 감색, 삶은 갈색 빛 팥 색, 원추리꽃 색, 합법적 염료(신분에 따라 색 사용이 규제되었던 시기부터), 썩어가는 잎 색, 개량조개 황갈색, 쐐기풀 대나무(문자 그대로 ‘그을음’), 달걀색, 건조되지 않은 벽 색, 아첨꾼 갈색(문자그대로 아첨갈색), (건조하고 풍화시킨) 황금회색 대나무, 황금빛 오크, 빛 바랜/쇠퇴한 센노 리큐의 차, 천년 묵은 갈색, 달걀껍질 종이 색, 차 밭에서의 사색, 찐 밤색, 연한 어린 파, 천년된 녹색, 말꼬리색, 방울새 색, 버드나무 차, 요염한 쪽빛 차, 인디고 청각속조류(Podium -> Codium)의 연약한 미역 갈색, 버드나무 이파리 밑면, 병의 안쪽, 천가지 허브 색, 푸른 검은 가재, 항구 쥐, 철 창고, 기모노 보관소, 비밀의 색 / 청금석의 푸른색, 녹슨 연두색, 토끼귀 붓꽃, 꽃 반대의 색깔, 하늘색, 단지 안을 들여다 본 색, 거친 양모 색, 칙칙한 위스티리어 등나무, 비둘기 깃털 회색, 덩굴 포도, 가짜 보라색, 사라지는 붉은 쥐, 위스티리아 등나무와 타버린 대나무, 백람(白藍), 젖은 까마귀 날개.



Acrylic Rope | 아크릴 밧줄

2010년 라파스La Paz의 철물점에서 구입. 안데스 옷감에서 발견한 디자인들과 그 케추아어quechua [1]이름들: 알코 유삐alqo yupi (개 발톱을 뜻하는 뜨개질 디자인), 차스까chaska (별), 칠리-칠리chili-chili (약용 식물), 껜코k’enko (지그재그 모양의 장미들), 레이 빨레이ley pallay (밝은 배경위에 둘이나 세가지 색상의 추가 실로 만든 어두운 무늬), 야마 시유llama sillu (라마 발자국), 냐위ñawi (눈eye), 빠까이pakay (씨앗이 들어있는 꼬투리), 빨레이pallay (전 상태로 돌아가다, 실을 줍다), 빠따 빨레이pata pallay (둘이나 세가지 색상 만을 이용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히 많은 디자인들), 삔치초pichincho (안데스의 작은 새), 뿌마흐뿌뀐pumaqmaquin (퓨마 발자국), 뿌이또puyto (큰 다이아몬드), 껜꼬qenqo (지그재그, 종종 번개나 강을 상징), 라끼 라끼raki raki (양치식물), 띡까t’ika (꽃), 띠끄야tiqlla (불연속적 날실을 이용한, 복잡하고 뒤틀린 체계에서 비롯된 디자인), 비즈카차vizcacha (안데스의 쥐), 와카흐 냐윙wakaj ñawin (소의 눈).

페루의 몇 염료들: 칠쿡꽈chilq’ua (페루 전역에서 자라나는 잡초 덤불.밝은 녹색을 얻기 위해 사용하며 매염(媒染)성의 황산구리와 결합하면 훨씬 어두운 녹색을 만들 수 있다), 꾹오예q’uolle (노란색 염료, 코치닐 염색통과 함께 사용해서 황금색을 만든다. 싱싱한 상태로 쓰기 보다는 주로 채집해서 건조 후에 사용한다), 빠로-빠로palo-palo (복숭아빛 연어색 색채 범위를 만들어 내는 정글의 덩굴 식물), 낀사 꾹추kinsa q’uchu (실질적인 천연 염료, 검은 호두와 비슷함. 식물 이파리들에서 자라는 곰팡이에서 염색 속성을 발견했다. 매염제는 잎의 탄닌tannin[2]에서 추출했다. 그밖의 매염제는 필요하지 않으며 놀라운 터키/청록색을 자아낸다), 인디고indigo (낮은 고도에서 자라는 남미의 또다른 야생식물이지만 고지대에 도입되었다.)

색 과정에서 인디고를 사용하는 것에는 세가지 방법이 있다: 1)  발효 (갓 딴 신선한 잎을 이용) 2) 환원된 천연 인디고와 요소(尿素, 소변에서 자연적으로 검출된 화학물) 3) 환원된 천연 인디고와 과당(많이 익거나 썩은 과일, 특히 사과, 배, 바나나에서 검출된 과당). 코치닐Cochineal (가시많은 배 선인장류에 서식하는 딱정벌레에서 주로 추출해내는 염색제), 아와이삘리awaypili (건조하여 염료로 사용하는 보라색 잎. 어두운 푸른빛 자주색을 만드는 매개를 제공한다.)

[1] 케추아어Quechua: 남미 안데스 지역 잉카 문명권 공용어

[2] 탄닌tannin: 식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주 떫은 맛의 성분. 해독, 살균, 소염작용 등을 한다.

Acrylic Rope                                      47 

The garments stored in the Imperial wardrobe of the Mughal Emperor Akhbar, a cloth connoisseur who took a managerial role in its production, were arranged according to the days, months, and years, of their entries, and according to their colour, price and weight.

무굴 제국의 황제 아크바르는, 옷감 생산을 관리 감독했던 직물에 관한 전문가로, 그의 황실 옷장에 보관되어 있는 의복은 들어온 일, 월, 년도에 따라, 또 색상, 가격, 무게에 따라 배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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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rments stored in the Imperial wardrobe of the Mughal Emperor Akhbar, a cloth connoisseur who took a managerial role in its production, were arranged according to the days, months, and years, of their entries, and according to their colour, price and weight.

무굴 제국의 황제 아크바르는, 옷감 생산을 관리 감독했던 직물에 관한 전문가로, 그의 황실 옷장에 보관되어 있는 의복은 들어온 일, 월, 년도에 따라, 또 색상, 가격, 무게에 따라 배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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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uenos Aires 6 undocumented Bolivian migrants were killed by a fire in a garment workshop where over 60 worked in slave-like conditions. As in so many richer countries, a textile industry is maintained by allowing a level of illegal immigration so as to compete with low-waged producing countries.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6명의 불법체류 볼리비아 이주자들이 노예같은 환경에서 60여명이 일했던 의류 작업장에서 화재로 사망했다. 많은 부유한 나라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섬유 산업은 저임금 생산국들과 경쟁하기 위해 불법 이민을 일정 수준 허용함으로써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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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worked as a shoeshiner for 45 years, since I was 14 years old. There’s a lot of abandoned people here, left in the streets with nothing. That’s what I see here in La Paz. Here in Bolivia, people have to leave. Things have changed a little bit, but let’s hope they change a bit more, you know? Because what’s changing is still not enough, we still need more changes, a few more changes.

나는 14살 때부터 45년간 구두닦이로 일했습니다. 여기에는 버려진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아무것도 없이 거리에 남겨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 라파스에서 내가 보는 것입니다. 볼리비아의 이곳에서 사람들은 떠나야 합니다. 상황이 조금 변하긴 했지만, 좀 더 변했으면 좋겠는데, 알죠? 변화가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변화, 조금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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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케 엥겔 Antke Engel

나는 하이브리드라 할 수 있는 어떤 남성정장suit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비즈니스 정장과 나들이 옷 Sunday best 사이 쯤에 적합한 변형된 형태의 정장으로 조깅복처럼 편안하며, 적절한 곳에 전시되면 디자이너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드러운 알파카 원단과 섬세한 흑백의 패턴이 그 옷을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이 패턴은 첫 눈에는 헤링본처럼 보이지만 사실 어떤 전형적인 양복 원단과도 유사하지 않다. 이 원단에는 지그재그로 둘러싸인 손가락만한 사각형 가운데 작은 점이 있고 무연탄의 지면에 흰색이 있으며 고운 섬유이기보다는 거친 천이다. 트위드? 너무 장난스럽다. 체비엇 Cheviot[1]? 훨씬 더 부드럽다. 나는 이 옷을 우연히 보게되었고, 처음는 이 양복의 배경이나 이야기에 대해 아무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그후 나는 이 옷이 볼리비아에서 왔으며, 우연히 유럽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이 정장이 [유럽에 오기를] 갈망해 왔다기보다, [어쩌다] 기회가 되어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 가까워졌을 때, 그 양복은 내가 그것의 메스티자 mestiza[2]적 존재에 더 많은 층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메스티자, 나는 그것이  하이브리드가 아니라고 배웠다) 양복의 안감은 밀가루 봉지로 만들어졌고, 이전의 용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생산을 담당하기 보다는 재현을 뒷받침하는 오래된 존재이지만, 식품 산업에서의 힘든 노동 생활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니, 생계형 생산이 아니다. 에크루 리넨 ecre linen에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인쇄된 시각 디자인과 제품 정보는 어떻게 해서든 세계화된 경제에 관련된 사업을 나타낸다. 사실, 이것이 메스티자의 모든 것이다. 이들은 세계 시장 경제나 식민지 역사의 여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질적인 역사와 사회 문화의 유산을 주장한다. [메스티자는] 토착민 생활, 이주, 출산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폭력에 의해 만들어진 접경 지대에 거주하며 결코 순수하지도, 일관적이지도 않은 태도로부터 진화하는 주체성과 관계성을 그들의 힘의 원천으로 만든다. 당신은 볼리비아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의 지역 시장에서 메스티자의 존재[이 양복]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판매중인 이 양복은 원주민 여성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녀는 자본주의 비즈니스 협상, 부르주아 정치, 기독교 제도, 또는 서구주의 지식의 지형에 들어가는 사람을 위한 고전적인 ‘재단’의 비즈니스 에 맞추기 위하여 감히 전통적으로 직조된 천을 잘랐을 것이다 (이는 천은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르는 행위로 인해 상처입으면 안된다는 모든 전통적인 지식을 공격하는 행위이다). 그 동안 당신은 세계 정치에서의 입지를 요구하는 메스티자헤mestizaje[3]를 발견할 수도 있다. 에콰도르(2008)와 볼리비아(2009)의 새 헌법은 내가 베를린에서 보았던 맞춤 정장과 형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사유재산권과 국권을 수호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와 신자유주의 국가주의를 수막 카우세이sumak Kawsay(좋은 생활, buen vivir)와 모든 존재의 나눌수 없는 유쾌함(어머니 지구, pachamama, madre tierra)의 원리에 굴복시키는 혼성적인 존재들이었다. 헌법은 국가를 다원성과 다양한 형태의 재산, 생산과 번식을 포함하는 경제적 형태의 복수성(다양성경제)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선언하고, 지구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자원의 활용 가능성을 제한하며, 거대 부동산의 크기를 제한한다. 그러나, 경제를 조직화하는 유일한 형태로서의 자본주의 경제의 독점은 깨졌지만, 세계 시장, 사유 재산 그리고 초국가적 기업들은 여전히 국가 상태를 유지하는 중요한 계기로 찬양 받고 있다. 서로 다른 형태의 경제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대단히 불평등한 권력관계, 지배와 착취가 그들의 관계를 구조화하면서 서로 경쟁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미스터리는 서류상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시장 경제와 가정, 생계, 공동체, 연대 경제 사이의 교환 경로는 반자본주의적 재분배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소반 Asoban(볼리비아의 민간 은행 협회)은 에보 모랄레스 Evo Morales 대통령의 소액 신용 대출자에 대한 채무 경감 요청을 거부했다. 페미니스트 조직 무헤레스 크레안도(Mujeres Creandos, 여성창조)의 부채 상환을 위해 사람들이 서명한 청원서 더미를 제출하려는 캠페인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회의에서 자국의 석유 자원이 개발되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을 국가 정부에 호소함으로써 야스니 국립공원을 구하려는 에콰도르의 계획은 초국가적 기업이나 에콰도르 주주들에게 어떤 공명이나 감명도 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종이 헌법의 살아있는 형제이자 지역의 접경 지대의 거주자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이 메스티자 양복이 어떻게 서로 다른 경제와 좋은 삶의 방식 사이의 교환을 연결하고 가능하게 하는 교통수단이 될 뿐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 경제의 지배력을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 가정과 생계, 공동체, 단체 그리고 연대 경제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1] 체비엇 Cheviot: 체비엇 양털로 짠 모직물

[2] 메스티자 mestiza: mestizo의 여성형. 인종이나 민족 조상이 혼합된 여성, 특히 라틴 아메리카, 아메리카 인디언과 유럽계 혼혈을 의미한다.

[3] 메스티자헤 mestizaje: mestizo와 mestizaje라는 단어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메스티자제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더 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인 사람들과 원주민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수 세대에 걸친 스페인 아메리카의 이민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위대한 민족과 문화적 혼합물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메스티자제에는 유럽 및 토착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출신과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들도 포함된다.

(https://www.smith.edu/vistas/vistas_web/units/surv_mestizaje.htm, 2020.05.17 접속)

참고자료

  1. 영어권에서는 봉건시대의 소작농을 의미하는 농민(peasant)과 근대적인 농업경영자를 의미하는 농민(famer)을 구분하고 있으나, 스페인어권에서는 양자를 포함하여 직접적으로 농업노동을 담당하는 농민을 모두 소농(campesino)으로 표현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농민과 식량주권|작성자 살구나무

  1. https://aha.confex.com/aha/2013/webprogram/Paper12121.html
  2. https://intopassion.tistory.com/entry/The-straw-that-broke-the-camel%E2%80%99s-back-%EC%9D%98%EB%AF%B8%EB%8A%94
  3. The peasant communities of highland Peru experienced a relatively calm relationship with the new national state along most of the 19th century. The weakness of successive central Peruvian governments between the Wars of Independence (1810-1825) and the War of the Pacific (1879-1883) may explain in part this rural calm, especially if compared with the well studied 18th-century rural rebelliousness that occurred in the Viceroyalty of Peru during the Bourbon Era. Despite the numerous civil wars confronting different regionally-based “caudillos,” only two peasant rebellions occurred in this post-Independence period: in Huanta, Ayacucho (1827-1829), and in Huancan and Azángaro, Puno (1866-1868). The Indian rebellion in these two Northern provinces of Puno involved the participation of a famous “mestizo” traveler, Liberal politician, and pro-Indian activist, Juan Bustamante (1808-1868). His intermediation and eventual leadership of the movement, which actually cost him his life, has ironically obscured our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the indigenous leadership of the rebellion. The paper explores the local system of indigenous community authority in the North of Puno, to better understand their actions in a rebellion that started as an anti-tax protest and ended as part of the civil war between Liberals and Conservatives in 1860s Peru.
  4.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Ramon-Castilla
  5. Bustamente rebellion (1866-1868)
  6. In 1852, Peru promulgated its own civil code (based on a project of 1847), which was not a simple copy or imitation of the French one, but presented a more original text based on the Castillan law (of Roman origin) that was previously in force on the Peruvian territory.
  7. A brief history of Peru

https://books.google.co.kr/books?id=vaawuxOTpOMC&pg=PA165&lpg=PA165&dq=peru+%221852%22+wool+trade+William+Ricketts&source=bl&ots=EHVxf7rqNH&sig=ACfU3U3coi9hq4_nzZjeR6SBs7EDSkycJA&hl=en&sa=X&ved=2ahUKEwiyj4uSmY3rAhVHw4sBHSRiDBkQ6AEwAHoECAoQAQ#v=onepage&q=peru%20%221852%22%20wool%20trade%20William%20Ricketts&f=false

  1. https://www.jstor.org/stable/3338346?read-now=1&seq=4#page_scan_tab_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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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

페루인과 아프리카 노예 600만 명이 230년에 걸쳐 산의 은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은의 채굴, 분쇄, 안입 가공, 운반 과정중에 탈진, 호흡기 질환,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미지에는 '저승의 제왕'으로 추정되는 엘티오 El Tio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는 광산을 지배함과 동시에 보호와 파괴를 관장한다.
안데스 부활절 기념행사의 일부로 전시된 직물과 함께 세워진 아치 장식

부스타만테Bustamente의 반란으로 알려진 페루 우앙카네Huancané[1] 지방의 캄페시노Campesino(농민) 폭동이 올해[1866년] 시작되었다. 인도의 새로운 인두세[2]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하나의 지푸라기(the straw that broke camel’s back)+각주’였다.(영국인 울 상인 윌리엄 리케트William Ricketts가 페루에 도착한 해인) 1852년에 [제정된] 민법이 페루 남부의 인디언 공동체의 부담과 분노를 가중시켰다. [이 법은] 인디언에게 제한된 시민권을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전통적인 집단적 존립권에 대한 공격이었고, 그들을 개별적인 계약에 종속되게 만들었다. 울의 수출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던 무렵 민법도 제정되었다. 그 결과, [스페인의]  토지 보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히스패닉화된 대농장(haciendas)과 인디언 농민 소유지(estancias)의 비율이 거의 비슷해졌다. 1860년대에 스페인의 140개의 공증된 토지 매입이 이루어졌고, 1867년에 정점을 찍었다. 이것은 정치-문화적 공세로 진행되었는데, 이로 인해 평등한 대우를 받았던 특권층 원주민들도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역학 관계는 군사적 약탈외에도 “값싼 울을 찾아 고산지대를 돌아다니는 상인들의 증가”를 의미했는데, 값싼 양과 알파카의 울은 ‘계약’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허울뿐인 계약이었다. ‘값이 싸다’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울 상인 대리인(울 중개상)이라 할 수 있는  레스카티스타 rescatista는 ‘대출’이나 값비싼 영국 상품을 선금으로 지급하였고, [생산된 울의] 양이 부족하거나 품질이 나쁘다고 주장하며 대신 땅이나 동물들을 빼앗았는데, 그들의 배후에는 무장한 세력이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양털 가격이 높을수록 이 과정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것은 페루의 엘리트들과 (이후 국가 채무 불이행으로부터 페루인들을 ‘구제’하게 될) 영국의 금융자본가 모두 수출 주도 경제가 그들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인디언 문제가 국가적으로 시급한 우선순위는 아니었지만, 농업자본가, 상인, ‘문명의 대리인들’은 인디언 산악지대의 재 식민지화를 열망하는 정치인들의 관심을 요구했다.” 페루 정부는 “테러에 관한 법률”을 사용하여 봉기를 진압하고 테러 상황를 설계했다. 리마에서 ‘인디언 사회 동맹 Sociedad Amiga de los Indios’을 결성한 떠돌이 상인들의  ‘대령(colonel)’이라 불렸던 후안 부스타만테[3]가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인디언 사회동맹은 ‘원주민’의 ‘후진성’에 대해 우려해 왔지만, 부스타만테는 공동체를 자유민으로도 시민으로도 간주하지 않는 이러한 조건이 가지고 있는 의도와 물질적 영속화에 반대했다. “인디언의 갱생에 반대하고 선의의 모든 노력을 좌절시켰다… 인디언의 무지와 굴욕, 포기를 악용하여 그들의 부를 축적하였다.” 그의 희망은 ‘자발적인’ 봉기가 이러한 악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란군은 제대로 무장하지 못한 채 푸노Puno[4]의 군대에 패배했다. 부스타만테와 60명의 인디언들이 처형되었고 “반란을 일으킨 고원지대 마을은 전멸되고, 주민들은 카라바야Carabaya[5]의 푹푹찌는 정글에 있는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 1881년 태평양 전쟁에서 칠레군에 맞서 싸운 원주민들은 그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이 상황을 그들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여, 1882년부터 1884년까지 반란을 지속했다. 결국 대농장 관리자들이 암살되고 ‘협동자’ 대농장haciendas도 점령되었다. 1884년 마침내 게릴라 지도자들이 붙잡혀 처형되었지만, 그 반란은 대농장 소유주들이 원주민 지역사회를 다루는데 있어 더욱 신중해지게 만들었고, 부스타멘테 반란을 촉발시킨 대농장이 확장되는 사태를 막았다.

[1] Huancané는 페루 Huancané 지방의 수도로 티티카카 호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Huancané의 7,000 명의 거주민 대다수는 Aymara를 사용합니다

[2] 인두세(人頭稅, tax per head; poll tax)란 사람 머릿수에 맞추어 걷는 세금을 말한다. 영국 역사상 1380년에 부과된 인두세가 가장 유명한데, 이는 1381년 와트 타일러가 이끈 농민반란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3] Juan Bustamante Dueñas는 페루의 원주민 지도자로, 사회 정의를 요구하며 1867년부터 1868년 사이 푸노에서 농민 반란을 일으켰다.

[4] 푸노(Puno)는 페루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푸노 주의 주도이다. 푸노 시는 티티카카 호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푸노 지방과 푸노 도의 중심 도시로 인구 약 100,000명을 가지고 있다.

[5] 카라바 야 지방은 페루 남부 푸노 지방의 지방입니다.



Silver 은

헤겔에겐 상호관계의 호혜성이란 개념이 없다. 이 도판을 보면, 주인이 노예의 의식을 비웃고 있다. 주인이가 노예에게 원하는 것은 공로를 알아주는 인식이 아니라 단지 일하는 노동력일 뿐이다.

8~13 세기에 구성되고 수집된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에는  포목[1] 도매상들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그 이야기 안에] 의복 자체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의복들에는 종종 금이나 은사가 들어가 있었다. 호머의 작업들과 아시리아 조각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이미 이러한 금속들의 활용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도 다수의 전문적인 장인을 통해 그러한 실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예술이었다. 일반적으로 ‘금’사金絲라 하면 은에 [금을] 도금한 것이었는데, 도금에 사용된 은 자체는 순은이었다. 은사銀絲는 [은을]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진 실 뽑는 전용 판을 통과시킨 다음 윗 부분이 둥근 모루[2] 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들겨 순은 또는 금으로 도금된 은으로 된 둥근 바bar 형태를 만든 후에 이것을 가늘게 실로 뽑아낸 것이었다. 또한 실크나 리넨과 같은 직물을 짜는 실을 가운데에 두고 납작한 금속소재를 단단히 감싸서 은사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들은 비잔틴 제국과 후기 유럽에서 부자들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옷에 사용되었다.이러한 저속한 화려함은 직물 자체를 크게 변형하며 옷감을 지나치게 무겁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이를 모방한 모조 실들이 개발되었다. 멤브레인 골드와 멤브레인 실버라 불리는 모조실을 개발한 결과 훨씬 더 많은 직물에 금속소재가 사용되게 되었고, 의상 한벌에 들어가는 고가의 금속 사용을 줄일 수 있었다.

직물의 역사에서 은의 진정한 의미는 은이란 금속 자체의 채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1545년에 거의 산 전체가 은 광석으로 만들어진 광산(Cerro Rico)[3]이 지금은 볼리비아Bolivia에 속지만 당시에는 페루 부왕령에 속했던 포토시Potosí에서 발견되었다. 이 엄청난 은광은 당시 부의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라마와 노새의 등에 짐을 싣고 팔던 상인들은 마치 입[4]에서 피를 흘리는 듯 은을 쏟아내는 포토시 광산에서부터 아리카Arica의 항구로 은을 실어 날랐다. 긴 항해 끝에, 유럽에 도착한 은괴는 유럽의 전쟁과 평화 그리고 진보를 위한 자금줄이 되었다.” [여기에서] ‘진보’란, 유럽 자본주의의 시작과 세계 무역 패턴들의 변화로부터 이루어졌다. 수억 페소에 달하는 은이 채굴되고 정제되어 포토시 조폐국(Casa de la Moneda)에서 주화로 만들어졌다. 생산과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광산 소유자들은 노예 노동(mita)이 필요했다. 원주민과 납치된 아프리카 노예들의 짧은 노동 생활은 유례없이 잔혹했다. 그래서 1659년 페루의 총독인 레모스 백작Court Lemos이 스페인 국왕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세상에 이보다 더 지친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폐하께 분명하게 전달함으로써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자 합니다.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은 은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피와 땀입니다.” 마드리드의 서인도 식민청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들은] 광산에서 행해지는 강제 노동에 대한 금지에 반대했다. [그 결과] 광산 노동 기간인 1556년부터 1783년 동안 80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채굴된 은은 인도의 직물 생산자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을 유럽 무역상이 제공 할수 있게 했다. 이전에는 그들이 인도의 직물 생산자들에게 제공할 것이 거의 없었다. 은이 금보다 순도가 낮다고 여겨졌으나, 중동, 인도, 중국 전역에서 [이미] 주화로 사용되고 있었다.“지금까지의 벵골의 국제무역에 관하여 말하자면, 국제 시장에서 벵골의 직물과 실크에 막대한 수요가 있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의 구매자들을 매료시켰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650년에서 부터 1757년 사이의 벵골은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수입 상품 시장은 엄격하게 제한되었기 때문에 유럽인과 아시아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무역상은 벵골에서의 수출 상품을 조달하기 위해 귀금속, 주로 은을 가져와야 했다. 따라서 17세기와 18세기 초반에 은이 벵골로 유입된 것은 벵골이 세계 나머지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유리한 위치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역의 범위와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하는 중개인으로서 유일무이한 역할을 했던 인도 면화 산업과의 이러한 접촉은 유럽인, 특히 영국인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해군력과 아프리카 노예를 사용하면서 면직물의 생산법을 모방하고 산업화하여 세계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자극했다.

한편, 광산에서 노예를 착취하여 벼락 부자가 된 포토시 광산 관리자들은 –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 마냥the world their oyster[5]– 전 세계에서 고급 직물을 수입하고 마을을 말그대로 은으로 도배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급 직물은 안데스 은으로 만든 은판Solid-cut sheets을 [수출하여] 스페인에서  금속 방적사Metallic yarn[6]로 만들고 포토시에 다시 역수입된 원사로 제작했다. 전통적인 기술과 미감(good taste)을 가지고 있던 원주민 방직공들은 열정적으로 하지만 아껴가며 실크, 리넨, 또는 면 코어 얀(core-yarn)에 은사를 감았고, 때로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대안적으로 노란색과 흰색 실을 번갈아 사용하기도 했다. 사진과 컴퓨가 등장하면서, 은은 더 이상 가치와 아름다움 때문에 단순하게 갈망하게 되는 금속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변했다. 은은 뛰어난 전기 전도체이고, 사진 처리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며, 컴퓨터와 전자 장비에는 물론 영화제작 과정에서도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2003년 스포츠 패션 카탈로그에 소개된 란제리와 ‘액티브 웨어’에는 “은 이온이 직물에 내장되어 있어  냄새를 방지하고 옷에서 세균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쓰여있다

[1] 포목(布木): 베와 무명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모루: 단조나 판금작업 때 공작재료를 얹어놓고, 해머로 두드려 가공하는 대

[3] Cerro Rico: 볼리비아의 산이며 스페인어로 “rich mountain”이며 Cerro Potosí 로 불리우며 볼리비아 도시 Potosí 근처 안데스 산맥에 있는 산

[4] 광산 입구를 은유적으로 표현

[5] the world is thier oyster: “the world is your oyster”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The Merry Wives of Widsor’(윈저의 행복한 아낙네들/17세기) 극본에 처음 등장했으며 세상은 당신의 굴이라는 말은 당신에게 기회와 능력이 있기때문에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거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 메탈릭 얀(Metallic Yarn):가느다란 금은실 (金銀線)등을 평평하게 압연한 실



Man's Suit 남성 정장

밀가루 포대에서 추출한 목화 안감 모직물; 2010년 푸노Puno의 골동품상에게서 구입. 현재 페루에서 토착민족들이 서양 복식으로 옷을 갖춰 입는 것을 [일컬어서] 문명화된 사람들이 civilizarse, ‘누군가를 교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만일] 그들이 너무 가난해서 옷을 살 돈이 없으면 어떤 특정 가게에 가서 옷을 빌려입기도 한다. 밀가루 면직 포대를 잘라 만든 안감을 손으로 짠 이 정장의 옷감은 영국식 트위드tweed[1]를 흉내내고 있다.

1575년,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의 권위를 내세운 톨레도Toledo 총독은 잉카 식 복장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안데스 원주민들이 “우리식(스페인 식) 옷을 입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장려했는데 이는 안데스 원주민들이 스페인 식의 복장, 즉 셔츠, 바지, 치마, 블라우스를 입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떤 옷이든 “상처와 애통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 것만 입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스페인 법령은 사회 계급별로 입을 수 있는 옷과 시기를 법으로 정해 놓음으로써 사치스러운 직물의 사용을 통제했었다. 식민지 페루 부왕령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으로 사회 계층과 인종 구분에 입각해 복장을 규제했다. 예를 들어, 원주민 여성이 입을 수 있는 비단의 양은 제한되어 있었고, 그녀의 망토에 붙일 수 있는 레이스 조각의 개수 역시 정해져 있었다.

1571년 당시 혼혈 여성은 비단 망토, 금, 진주 같은 것을 착용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18세기에는 과하게 사치스러운 옷을 입은 듯한 안데스 원주민을 향한 불쾌감이 부왕권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그 결과 원주민들이 “우리(스페인 사람)처럼 입는 것이 금지”됐다 (1791년 법률 개정판, p.403). 그 즈음, 투팍 아마루 혁명Túpac Amaru rebellion[2]의 결과로 잉카 식의 옷이 급속도로 정치적인 색을 띄게 되자 행정관들은 이를 걱정하기 시작했으며, 1781년에는 이러한 옷을 입는 것을 불법으로 만듦으로써, 다시는 옛날 통치자들의 이상적인 모습과 고대의 기억을 불러내지 못하게 했다.
반면 같은 시기의 잉카 복장은, 쿠스코Cuzco와 포토시Potosí의 1555년 성체축일Corpus Christi[3] 행진에서 과거를 재연하고 잉카문명의 유산을 ‘연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처럼, 잉카 복장은 식민지 민중을 보여주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보존된 많은 식민지 튜닉tunic[4] 역시 특별히 민중 행진을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안데스 원주민의 느슨하게 감긴 드레스가 ‘외설/무례함indecency’을 보여준다고 우려한 1570년대 부왕령 행정관들은 (그들의) 옷들을 꿰맬 것을 요구하는 법을 제정했다. 잉카의 몇 태피스트리tapestry[5]  이크야lliclas(숄)[6]의 표면에는 가짜 솔기가 수놓아져 있다. 이는 랩 무늬 망토의 두 깔루callu가 맞붙는 선을 모방한 것으로, 법에 대한 저항의 행동일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내용을 넣어 미적 형태를 이어가려고 했던 것일 수도 있다.

[1] 트위드tweed: 비교적 굵은 양모를 이용, 간간히 다른 색깔의 올을 가미하여 수평 수직으로 짜낸 두꺼운 천.

[2] 투팍 아마루 혁명Túpac Amaru rebellion : 스페인 식민통치에 대항했던 운동이다. 투팍 아마루 1세는 스페인의 정복에 대항하다 페루 부왕 톨레도에 의해 1571년 처형됐으며, 200년 후엔 투팍 아마루2세가 안데스 지역 광산에서 혹사 당하는 원주민을 위해 스페인에 대항하여 운동을 일으켜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상징적인 보복을 했으나 처형당했다.

[3] 성체축일Corpus Christi: 그리스도교 축일 중 하나이다.

[4] 튜닉tunic: 헐렁하고 긴 상의를 말하는데, 보통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여성용의 낙낙한 블라우스 또는 코트이다. 모양은 소매가 달린 티(T) 자 형이고 보통 허리에 벨트를 매어 입는다.

[5] 태피스트리tapestry: 여러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혹은 그 제작 기술.

[6] 이크야Lliclas: 페루 여성 전통 의상으로, 여인들이 사용하는 숄, 어깨걸이.

 

 

Man’s Suit                                            41

항상 용맹한 전사로 알려진 폰초스로호스는 볼리비아에서 새로운 ‘원주민의 시대’의 상징이었다. 2006년에 아이마라 다수민족 출신에서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로, 현지인들의 신뢰를 향상시킨 것을 보여준다. 볼리비아 아차카치의 웹페이지에서, 폰초스로호스는 그들을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Evo morales Ayma)가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 볼리비아 육군예비대는 새로운 볼리비아 연립국가의 권력의 일부로 토착국가들이 편입되는 과정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해 현지 민병대으로 바뀌었다.” 폰초스 로호스는 산타크루스 부처의 지주들의 분리주의자와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움직임들에 맞서기 위한 현지 민병대로써, 오래된 볼리비아 리퍼블릭의 인종차별자들이 재 집합하는 것에 경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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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pite the prominence of silver thread used in the clothes of the rich and powerful, its real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global textile trade was in its mining, specifically from Spanish colonial Potosi. Millions died in extracting it while it provided, for the first time, a commodity for Europeans that the producers of cloth and spices in Asia actually wanted.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옷에 은사가 많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섬유 무역의 역사에서 은사의 진정한 의미는 광업, 특히 스페인의 식민지 포토시Potosi에서 시작된 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는 아시아에서 옷과 향신료를 만드는 사람들이 원했던 그 은이 처음으로 유럽인들을 위한 상품으로 공급되는 동안, 은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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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Peruvian province of Huancane, peasants rose  in the Bustamente rebellion against the re-colonisation of the highlands by agrarian wool capitalists, merchants and ‘agents of civilisation’.

페루 우안카네Huancane 지역에서 일어난 부스타멘테 반란에서 양모 자본가, 상인, ‘문명의 대리인’이 고산지대를 다시 식민지화하는 것을 반대하며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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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actually, what mestiza is all about: Acknowledging that one cannot escape global market economy or the aftermath of colonial history, yet claiming the legacy of heterogeneous histories and social cultures.

사실, 이것이 메스티자 mestiza 가 의미한 모든 것이다. 이들은 세계 시장 경제나 식민지 역사의 여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질적인 역사와 사회 문화의 유산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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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Quispe | 후안 끼스페

“내 이름은 후안 끼스페Juan Quispe이다. 나는 티티카카[1] 호수Lake Titicaca 의 타킬레[2]Taquile 섬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입고 있는지, 특히 여자들이 엮어 만든 파하 faja (넓은 벨트)와 남자들이 짠 추요 ch’ullu (울모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러나 먼저 너그러움(generosity)의 표시로 해석되는 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예를 들어] 내가 비록 천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천이 가지고 있는 그 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그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자연은 항상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베풀것이다. 내 말은, 음식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영혼이 피폐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기쁨 역시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천은 결핍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그 끝자락에 있다.  파하와 추요에 사용되는 상징은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이 사용했던 것과 같다. 예를 들어 현대 달력이 도입되었지만, 달력 벨트(chumpi calendario)를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새, 꽃, 농작물의 짜임새 패턴을 통해 시간을 본다. 우리는 집을 짓는 시기와 낚시철을 읽는다. 그리고 [그 벨트에는] 망자의 날, 새로운 동물의 탄생, 새해와 같은 몇몇 축제들이 적혀있다. 우리의 조부모님들도 같은 우주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직물은 발전되었고, [지금은] 무지개 색을 꽤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많은 색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왜 조상들은 무지개 색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조상들은 무지개를 경외시했고, 무지개 색은 사람을 태우거나 장(腸)을 꺼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변하고 있고, 우리는 무지개 색을 사용해서 [사람을] 불에 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조부모님들은 그런 식으로 무지개를 경외시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6월이나 5월에 무지개가 지면, 비가 곧 그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해가 질 때 무지개가 있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해가 뜰 때 무지개가 있다면 비가 올 것이다. 이것이 [일기]예보다. 아마도 우리 조부모님의 태도는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색상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직물이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로, 내 여동생 중 한 명이 파하에 우주 왕복선 이미지를 엮였던 적이 있다. 나는 동생에게 왜 [우주선을] 엮었는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물었고, 여동생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해에 챌린저 우주왕복선[3]이 이륙 직후 공중에서 폭발했을 때, 그 소식이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졌고, 여동생은 그 비극적 장면을 모두 보았었다.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자신이 느꼈던 것을 파하로 엮어냈던 것 같다.

어쨌든, 한 사람의 인생, 과거와 미래, 감정, 계획 그리고 경험은 파하에 기호를 통해 기록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는 문화는 그 시대의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며, 더 이상 그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많은 문화와 관습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그 문화가 자신들의 문화라고 말한다. 그들이 축하하는 방식, 그들의 옷,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들의 과거가 존재하는 곳은 박물관이나 전통옷으로 꾸며진 인형들이다. 하지만, 타킬레에서는 아니다. 문화는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타킬레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파하 역시 살아있다, 그것은 몸과 같다. 심장이 있고, [그 심장은] 마치 팔처럼 파하를 뒤에서 안전하게 지켜준다. 판매용이 아닌 흰색 줄무늬의 언더벨트가 있는 파하는 힘겨운 농사일을 하는 동안 그것을 찬 사람의 등을 받쳐준다.  그런가 하면 [파하는] 땋은 머리카락 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살아있다.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뜨개질을 하거나 직물을 짜는 사람은 자신의 직물을 자를 수 없고, 그것은 죄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쉽게 직물을 자를 수 없다. 이제 추요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어렸을 때 뜨개질 하는 할아버지를 지켜보곤 했는데, 나는 거기에 정말 빠져들었다. [할아버지가 짠 추요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나도 추요를 짜고 싶었다. 내가 놀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어느 틈엔가 실[과 같은] 모든 뜨개질 재료를 꺼내 놓고서 ‘뜨개질을 해보련?’하고 말하셨고, 나는 ‘네. 뜨개질을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음, 할아버지가 나에게 막 실을 주려던 참이었는데, 할머니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한테 나가서 양떼를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뜨개질인데 왜 양떼를 먼저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나는 어쨌든 밭으로 나가 양들과 함께 뛰어 놀았다. 그것 역시 매우 재미있었다. 양들과 같이 호수로 내려가서 목초지를 찾아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뜨개질을 하고 싶었다. 어쨌든 몇 년이 지나서, 아니 몇 달 혹은 몇 년이 흘러 처음으로 어린 양이 태어나는 것과 양털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양털을 깎을 준비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양털을 깎으며, ‘그래, 너도 이제 너만의 실을 만들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나는 아뿌스칸 apuscan, 물레가락을 꿰어 보았다.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신념이나 할아버지의 믿음이 작용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말은, 그것은 나를 치료해준 약이었다.[그만큼] 나는 정말 [나의] 실을 만들고 싶었었다. [마침내] 나는 나의 실을 만들었다. 내가 막 실만들기를 마쳤을 때, 할아버지는 바늘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 이제 뜨개질을 해보자’라고 하셨다. 하얀색으로만, 양처럼 흰색으로만, 그때 나는 작은 새들과 상징들을 넣어가며 뜨개질을 하고 싶었지만, 먼저 완전히 하얀 모자를 완성해야 했다. 지루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뜨개질하는 것은 인내심, 즉 양털에서부터 모자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셨다. 나는 그 일을 해내었다, 무지의 흰 추요를 완성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형편없었다. 모양도 별로였다. 내가 추요를 완성했을 때, 할아버지는 빨강, 파랑, 초록, 노랑 실을 꺼내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실을 바로 앞에 꺼내놓으셨다. [그리고는]‘이제 너만의 추요을 만들 수 있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작하였다. 우선 나는 그 색깔 조합 좋아하지 않았다. 나만의 조합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추요을 완성하고 나서 알게된 것은 나이든 형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놀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나는 [나의 추요에 사용한] 색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사용한 색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왜냐하면 내가 노란색과 초록색 혹은 [노란색과] 파란색을 조합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색깔은 언제나 이곳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내가 색 코드를 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색깔들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만약 내가 파란색 대신 검은색을 사용했다면, 그리고 빨간색 대신 더 어두운 색을 사용했다면, 사람들은 ‘왜 추요가 이런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너는 아니?’라고 물어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두운 색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란색은 너무 많이 반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색을 보고] 당신은 홀아비인가요? 어디에서 왔나요? 아마 다른 행성에서 온 거 아니예요? 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요는 색상 코드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적인 것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두 똑같이 보이지만, 타킬레 사람들은[4]Taquileño는 직물을 보면 바로 알아차린다. 만약 당신이 나의 추요를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당신에게 후안의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뜨개질이나 직물로 서로를 알아 본다. 육안으로는 모두 똑같아 보이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색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함께 모여 살기로 할 때 커플이 직물을 짜는 기술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때로 소녀의 아버지가 추요가 만들어진 상태를 확인하기도 한다. 추요는 튼튼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튼튼해야 하고, 촘촘히 짜여져야 한다. [그래서] 또 어떤 가정에서는 [추요에] 물을 붓는 경우도 있다. 거의 온 가족이 그 젊은 남자가 추요를 잘 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방수가 되게 짰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 물이 여전히 추요 안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 안에서 역할을 시작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남서 해안 프랑스는 헥타르당 한 마리의 양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황폐한 습지였다. 양치기들은 그들의 양들이 먹을 더 좋은 풀을 찾으러 매일 긴 거리를 이동하고, 발을 건조하게 하기 위해 죽마를 사용했다. 그들은 쉬고 싶을 때면 막대기를 사용하여 삼각대를 만들었다. 3미터 상공에 자리잡고 털실로 옷을 짜면서 양떼들을 찾기 위해 지평선을 살폈다. 멀리서 양치기들을 본 사람들은 그들을 작은 뾰족탑과 거대한 거미에 비유했다.

2000년 당시 인구가 1900명으로 추산된 타킬레 섬은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작은 섬으로, 해발 13,000피트(3,815m)에 있는 안데스 알티플라노(고원)의 안디안스 알티카카(고원)에 있는 섬이다. 케추아어Quechua를 사용하는 이 지역의 주민들은 드라마틱한 색감의 정교한 직물과 지역사회가 통제하는 관광의 모델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05년 유네스코는 타킬레와 그 직물 예술을 구전 유산과 무형 유산의 걸작으로 인정하였다.

[1] 티티카카 호는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호수이다. 운송로로 이용 가능한 호수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이다. 또한 남아메리카에서 수량이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하다. 

[2] 타킬레은 티티카카 호수의 페루쪽에 위치한 섬으로 푸노시에서 45km 떨어져 있습니다. 섬에는 약 2,200 명이 살고 있는데, 크기는 5.5 x 1.6 킬로미터이고 면적은 5.72km²입니다.

[3] 챌린저 우주왕복선은 두 번째로 임무에 투입된 미국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이다. 이름은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를 최초로 측정한 영국 탐험선 HMS 챌린저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4] 타킬레 섬 출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