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ket 자켓                                         25 

자켓에 수놓아져 있는,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Che Guevara[1] 의 상징적인 이미지는 전세계의 의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산주의 영웅의 이 얼굴은 “노스탤지어의 상품화된 표현”이라고 불리었다.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의 20세기 여러 독재 집권기 중 하나가 진행중이던 1987년10월 9일 볼리비아에서 CIA(미국중앙정보부) 배후의 암살단에 의해 살해당했다- 거의 모든 암살사건들은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히 미국의 배후를 받았다. 196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사이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선 억압과 대량학살과 고문이 비일비재 했고 미국의 훈련과 다양한 지원이 연루되어 있었다. 

 Read more  🎧

Representations in Holland had the woman at home spinning as the epitome of tranquil virtue, whereas women in a group were too sensual and wild. In Ireland young women in the home were seen as ‘unruly’, their idleness leading to “tearing hedges, robbing orchards or beggaring their fathers”. 
English proto-capitalists instituted labour discipline.

홀란드에서는 혼자 있는 여성을 평온한 미덕의 전형으로 재현되는 반면 무리 지어 있는 여성들은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거칠게 표현되었다. 아일랜드에서는 가정에 있는 젊은 여성들을 ‘제멋대로’라고 여겼고, 그들은 게을러서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과수원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아버지를 거지로 만든다’는 이야기할 정도였다.
영국의 초기 자본주의자proto-capitalists 들은 노동기강을 확립했다.

 Read more

The 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of India was founded as a trade union. It was kick-started by migrant women working as cart-pullers in Ahmedabad’s cloth market, who were then living on the streets, and ‘head-loaders’, women carrying loads of clothes between the wholesale and retail markets.

인도 자영업 여성 협회는 노동조합으로 설립되었다. 이를 촉진한 것은 길거리에 살면서 아마다바드의 옷 시장에서 수레 끄는 일을 하던 이주민 여성들이자 도매와 소매 시장 사이에 많은 옷을 나르는 ‘헤드 로더’들이었다.

 Read more

Well, obviously they knew my reputation, I mean, I don’t want to brag but I’ve dressed a lot of famous people. Maybe also, they knew I’d done a lot of my work with alpaca yarn, even though Bolivians themselves, the upper class, so to speak, they wouldn’t wear it; for them it was for their maid or their butler to wear alpaca.

글쎄, 분명히 그들은 내 명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 말은, 자랑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많은 유명인들에게 옷을 입혀왔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가 알파카 실로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상류층 볼리비아인들은 알파카를 입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에게 알파카는 하녀나 집사가 입는 것이었습니다.

 Read more  🎧

Simon Sheikh | 사이먼 셰이크

칼라스니코프 소총을 묘사한 아프간 양탄자.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레인에서 구입. 앤서니 다우니 박사의 소장품 제공

대상object과의 소통에 관해서: 대상이 나에게 말을 걸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일상적으로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대체로 그것은 미적 대상이거나 문화적 가공물이며,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을 걸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아주 흥미롭고 멋진 일이기도 하지만, 만일 그 대상이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 않거나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말하지 않을 경우에 수용자인 나에게는 [그것이]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의미나 감정affect의 전달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대상이 말을 건다고 전제하게 되는 언어는 그렇게 쉽게 식별되거나 분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목소리의 대행자나 저자가 있는 경우와 같이 의도적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수수께끼의 중심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대상이 주체의 응시gaze에 의해 활성화되는 경우인데, 이 때에는 소통이 가능하다. 둘째, 그러한 소통은 친숙하던 낯설던 간에 일종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독 및 번역이 가능하다.

우선, 먼저 의도하는 대상의 지위는 자연적이던 문화적이던 그것의 기원과 관련이 있으며, 후자인 문화적 대상의 경우에는 항상 재현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잠재적인 사용 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발견되는 대상들은 다소간의 미적인 즐거움을 주는 모양, 소리, 색깔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론 문화적 맥락과 판독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어느 정도 매력적이기도 하고, 불분명할 때도 있으며, 눈에 보이고 해독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상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거나 배경에 묻혀 보이게 하는 시각적 외양appearance이나 정체성identity을 대상이 의도한다고 볼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이는 어떤 대상이 마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단적인 믿음에서부터 기독교적 범신론을 넘어서는 종교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모더니즘의 난제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이러한 견해는 놀랍게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대상을 문화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보편적인 추상언어라는 모더니즘적 전술은 잘 알려져 있는 반면에, 우리가 이처럼 권위있는 방법authored policy의 변방에서, [다시 말해] 모더니즘적 사유의 가장자리에서 의도하는 대상에 대한 이론화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주변부에서 볼 때에만 전체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모호한 텍스트가 바로 그 가장자리에서 동시대 저자들과 조응하게 되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서 나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나 로제 카이유와Roger Caillois 같은 저자들이 주체subject에 대해서 언급한 글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비록 다른 접근법과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사물의 언어라고 일컫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카자 실버만Kaja Silverman[1]은 계획적인 제목이 붙은 『월드 스펙테이터World Spectators[2]이라는 저서에서 ‘사물의 언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사물이 어떻게 소통하고 상대방의 시선을 원하는지를 상술하며, 의도하는 사물들과 곤충들에 대해 서술한 카이유와의 이론을 정확히 그려냈다. 벤야민은 사물 소통 개념에 대해 텍스트를 썼는데 이는 정확히 「사물의 언어The language of Things」라는 제목을 가진 히토 슈타이얼의 에세이를 통해 최근 다시 논의되었다.

실버만은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하는 제목인 『돌들의 글쓰기The writing of stones』[3]와 같은) 곤충과 바위에 관한 카이유와의 글을 읽었다. [그 글에서 카이유와는] 곤충과 바위는 아름다운 외양을 통해서 관심을 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미적 주체성을 확립하는 경우에는 (인간) 주체가 아니라 세계의 사물에 의해서 촉발되는 욕망의 교환을 통해 소통하며, 형태, 모양, 윤곽, 색 등과 같은 사물의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미적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경우라도, 소통은 의미적이지 않고 신체적corporeal이다. 반면, 벤야민의 글은 두 개의 실재를 상정하고 비교한다. 만일 두개의 언어, 사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를 구분하고, 사물의 언어는 소리가 없는 것mute, 인간의 언어는 제도화된 활동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는 것immersed이라 했다.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벤야민의 글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슈타이얼은 벤야민의 인간의 언어를 국가와 민족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 관행, 즉 담론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번역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결정적으로 슈타이얼에게 그러한 번역은 예술 활동 안에서 이미지의 아쌍블라주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하나의 구조적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의 번역이었다.

이러한 사물의 언어는 이네스 도우약의 별난 직물 컬렉션처럼 ‘원래original’ 형식form과 맥락으로부터 벗어나 혹은 작가의 수정을 거친 번역된 아쌍블라주와 같이 제도적으로institutionally 조작되어 기술된 대상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는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경우, 볼리비아의 지도, 독수리 간판, 기관총이나 북미 인디언들이 쓰던 피스 파이프와 같은 이미지들을 해석하고, 직접적이고 명확한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색채의 밝기나 직조의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보다, 사물을 사물로서 생각해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사물이 나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1] 카자 실버만은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서 수사학과 영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전문 분야로 기호학과 정신분석학이 있으며, 철학에 근거한 시각예술을 연구하고 있다.

[2] 『월드 스펙테이터: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 World Spectators』, 카자 실버만 지음, 전영백과 현대미술연구회 옮김,예경,2010

책의 제목인 ‘월드 스펙테이터’는 저자인 실버만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한나 아렌트에게서 빌려온 것인데, 아렌트는 공간적으로 제한받지 않고 외부세계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시각의 주체, 그리고 사회에서 책임, 의무, 권리를 지니는 주체를 철학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 ‘세계 관찰자’라는 말을 지어냈다.

[3] 암석의 형태와 무늬에 대한 카이유와의 논의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는, 대리석을 실제 예술작품인 것처럼 틀을 만들고 거기에 틀을 만든 사람의 서명을 새겼던 19세기 중국의 관습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예술가는 발견의 순간에 매우 강렬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대상의 의도를 주관화 한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의 언어」, 『월드 스펙테이터』,p.206)

카이유와는『돌들의 글쓰기』의 한 부분에서 암석의 무늬를 “특별한 기호들(의 집합)”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그는 글들을 “읽음”으로써 그들이 보이고자 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창조물과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배운다고 주장한다 (ibid.,pp.214-215)

 

1917

The Indian leader Mohandas Gandhi reads as he sits cross-legged on the floor next to a spinning wheel at home, photographed in 1946. # Margaret Bourke-White / The LIFE Picture Collection via Getty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는 의식적으로 서양과 인도의 다양한 복식을 체험했고, [이후]  인도 독립  운동의 상징으로 차르카charka(물레)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그도 거리낌없이 인정했듯 1915년에 인도로 돌아올 때까지 간디는 차르카를 본 적이 없었고, 인도에 도착해서도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손으로 방추를 이용해 실을 뽑는 기술이 거의 사라져가던 시기였던 1908년부터 간디는 실용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도구로 손으로 직접 직조 짜는 홈스펀homespun[1] 직조활동을 지지하고 있었다. 사실 간디는 [한때] 차르카하르가kharga(베틀)과 혼동하기도 했다. 이 활동은 추상적인 이데올로기 상징을 사용하면 자칫 발생할 수 있을 위험에 대한 교훈을 보여줄 사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차르카 자체가 실용성이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도 발전될 수 있었기에 위험을 상쇄할 수 있었다. 수백 년 간 인도는 품질 좋은 면직물 생산국이자 세계적인 수출국이었다. [그런데] 영국산 면직물이 인도에 상당히 침투했고, [이에] 인도의 수출시장은 큰 손실을 입었다. 따라서 집에서 직물을 짜는 일이 반식민주의 정치에서 중요한 운동이 된 것이나, 19세기 막바지에 “손으로 베를 짜는 행위가, 이젠 사라져가는 시골의 공예를 인도의 윤리적, 정신적 재생산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옷이] 단순히 지위를 말해주는 대부분의 사회와는 달리 [인도에서는] 상징적인 힘이 옷에 깃들어 있으며, “개인의 윤리적, 물리적인 본질에 변화를 주고, 그 본질이나 영혼을 흡수하여 수년간 간직할 수 있다고 간주되었다.” 벵골에서 일어난 스와데시 운동the Swadeshi movement [2]은 이러한 생각들을 종합하여 실현해 낸 정치 캠페인으로 영국산 물품 불매 운동을 이루어 낸 것이다. 공장 기계식 제작에 반하는 ‘홈스펀’의 미덕을 실질적으로 구현함으로써 더욱 실용적인 방식으로 앞서 나간 간디는, 계급에 관계없이 한번이라도 실을 잦아 직조해본 적이 있는 수많은 무직 여성들에 괌심을 가졌다.  그는 자신이 출판한 『영 인디아Young India』에서 1820년대 한 미망인이 쓴 편지를 소개했다. 그녀는 세 딸을 키웠고, 자신의 딸들을 무시하지 않으며, 또한 그들이 방적공으로 일하며 받는 소득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남자들과 결혼시켰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벵골 지역 신문인 사마차 다판 Samachar Darpan에도 실렸었는데, 여기에서는 급격하게 달라진 그녀의 상황이 잘 드러난다. “앞으로 3년 동안 우린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방직공들은 이제 전처럼 실을 잦으러 집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실을 팔면 원가의 사분의 일도 되지 않는 값을 받습니다.” 그녀는 이 일이 벵골 서부 빌라티bilati 외국 실 때문이라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 방직공 여성들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아이러니할 수 있지만, 그녀는 외국실이 그렇게 싸다면 그 실을 만든 여성들도 그만큼 무척 가난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간디는 그의 동시대 여성들이 다시 한번 “노동 제작 공정에 투입되어 인도의 생산력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도] 산스크리트의 중요 법전일 뿐 아니라 기원전 200년과 기원 200년 사이에 기록된 현생과 내세의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옛 법전이었으며, 복장 규칙들을 포괄하는 힌두교 사회의 실용 윤리 규범을 담고 있는 다르마 샤스트라Dharma Shastra의 저자이자 동명의 문헌이기도 한 마누Manu[3] 속 전설적 인물을 언급하면서 “여성의 고전적인 위치를 재확인”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한 간디는 ‘케인즈 식Keynesian’의 수익창출과 고용의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4]가 지역적으로, 특히 여성들에게 적용될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간디의 생각을 실현해낸 사람은 바로 ‘진취적인 미망인’ 강가벤 무즈무더Gangaben Mujmuder였다. 1917년 무즈무더는 바로다Baroda 지방의 비자푸Vijapur에서 물레들을 찾아 돌아다닌 끝에 그곳에 방직 센터를 세웠다. 그의 또 다른 추종자 마간할 간디Maganhal Gandhi는 물레의 바퀴를 기술적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공장에서만 직물을 제작할 수 있었던 시대에 방직공들이 집에서 직접 직물을 짤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은 바로 무즈무더가 찾은 한 무슬림 방직공이었다. 방직공들은 집에서 카디khadi(손으로 짠 인도 무명) 옷을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자급자족의 상징이 되었다. 특정 민족주의나 가공되지 않은 옷에 의지하는 그들의 전통의 측면에서 본다면 산스크리트 법칙과 힌두교가 중요한 요소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방직공들은 반드시 무슬림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즈무더는 간디가 더이상 “짧고 거친 도티dhoti(인도 남자들이 몸에 두르는 천)를 입어야 하는 건” 아니도록, 훨씬 폭이 큰 카디khadi제작법을 고안한 사람이기도 했다. 카디로 만든 도티와 모자는 반식민주의를 표현하는 의상이었고 영국인들에게도 동일한 의미로 인식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벤 람지Gangbehn Ramji라는 또 다른 여성은 카디 도티khadi dhotis 제작의 전문 교육자가 되었다. 반면에 간디는“물레에 대한 연구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우리는 수십 개의 물레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린 이제 기계적 제조법에 숙달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며 본인이 갖고 있던 사상과는 상충되게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1] 홈스펀Homespun: 집에서 소박하게 손으로 짠. 또는 그렇게 만든 거친 모직물.

[2] 스와데시 운동 Swadeshi movement은 20세기 초 인도에서 반식민주의 민족 해방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국산품 애용 운동이다.

[3] 마누Manu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류의 시조. <샤파타파 브라마나>를 비롯하여 서사시 <푸라나> 등의 문헌에 의하면, 만물을 휩쓸어버린 대홍수가 지나간 뒤 마누만이 살아남았다고 전해지며, 최초의 법전인 <마누법전>의 창제자로도 알려져 있다.

[4]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는, 경제 현상에서, 어떤 경제 요인의 변화가 다른 경제 요인의 변화를 유발하여 파급효과를 낳고 최종적으로는 처음의 몇 배 증가 또는 감소로 나타나는 총 효과를 말한다.

Indian Yellow | 인디언 옐로우

일부 힌두인들은 소의 소변이 건강에 좋다며 이를 마셨고, 그 중 몇몇은 암을 치료한다고 주장했다.

인디안 옐로우Indian Yellow는 19세기 유럽, 특히 영국의 화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다양한 피부 톤, 특히 컬러 차트의 끝의 어두운 색조”를 표현하는데 획기적인 성과를 보였다. 이 점에서 [인디안 엘로우는] 영국산 오커ochre나 인도나 극동산 수지로 만든 갬보지gamboge라 불리는 노란색 안료에 비해 뛰어났다. 이 안료는 회화에서 인종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특정 색조합을 사용해야 하며, 정형화된 얼굴을 표현해야 한다는 등 그들 스스로 ‘과학적’이라고 불렀던 다양한 인종차별주의에 맞물려 인기를 얻었다. 당시 영국의 미술 교사들이 ‘탁한dusky’과 ‘거무스름한swarthy’과 같은 색채 용어를 표준화하는 데 몰두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주의 정책이 바뀌면서 우선순위가 달라지게 되고, 이에 따라 팔레트에서 인디언 옐로우가 사라진다. 인디언 옐로우 혹은 퓨리purree는 주로 벵골지역에서 망고 잎 만을 먹인 소의 소변으로 생산되었다. 수익은 엄청났다.

캘커타에서 인디안 옐로우의 시장가격은 농부에게서 산 가격 보다 100~200배나 비싸게 팔렸다. 그러나 세기말 즈음, 일부 보도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사육된 소는 영양실조로 고통받으며, 일찍 폐사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영국의 동물복지단체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영국은 1880년대 토착 힌두교 인도인의 소 보호단체들이 발전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러한 초창기 공동 계율 공식 발표는 그들이 꿈꾸는 커뮤니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성명서로 발전되었다.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어머니 소’에 대한 숭배는 그 뜻이 매우 모호했기 때문에 운동가들은 지역 정체성과 더 폭넓은 범위의 이데올로기적 운동의 가치를 연결 짓기에 용이했다. 성스러운 소의 이미지는 “…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통합하는데 사용될 수 있었고, 개혁주의자와 전통주의자의 목적에 기여할 수 있었으며, 시민들과 소작농과 같은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다.” 랜스다운 경 Sir. Landsdowne[1]은 “인도 반란Indian Mutiny[2]”이후로 이러한 흐름이 영국 정부에게 가장 큰 위협이라고 언급했다. 사실상 1860년 영국이 제정한 인도 형법Indian Penal Code에서 소는 신성한 대상이 아니었으며, 이 사항은 1888년 재검토되었다. 이념적 통합의 발전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명확한 법률도 제정하지 않은 채 인디언 옐로우를 금지하고 이를 선포했다. 요르다나 베일킨Jordanna Bailkin[3]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이는 “식민지인들을 지배해야하는 임무와 그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그리려는 욕구가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된 경우”였다. 예를 들면, 불교 승려의 승복 염료로 사용된 겜보지는 인디안 옐로우의 대체물로 사용되었고, 캄보디아에서 생산되었으며,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걸치는 동안 무시무시한 평판 macabre reputation을 얻었다. [왜냐하면] 라디오랩 Radiolab[4]이 「퍼펙트 옐로우The Perfect Yellow」에서 보도한 바와 같이 겜보지에는 캄보디아 내전기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총알과 전쟁터의 진흙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1] 영국 정치가로, 5대 캐나다 총독, 전쟁 및 국무부장관, 외무부장관 등 영국 정부에서 여러보직을 맡았으며, 1888~1894년 인도의 총독을 지냈다.

[2] 세포이항쟁Sepoy Mutiny 또는 1 차 독립 전쟁First War of Independence이라고도하는 인도반란Indian Mutiny는 1857 ~ 59 년 인도의 영국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널리 퍼졌지만 실패한 반란이다.

[3] 요르다나 베일킨Jordanna Bailkin은 워싱턴대학교의 국제학과 제레 L. 바카라크Jere L. Bacharach 석좌교수이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근대 영국, 제국시대의 영국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탈식민지화, 비교 식민주의, 성의 역사, 아프리카 연구 등을 지속하고 있다. ‘Unsettled : Refugee Camps and the Making Multicultural British'(Oxford, 2018)의 저자로, 20세기 영국의 수 많은 난민 수용소의 벨기에, 유대인, 폴란드인, 헝가리안 등에 대해 저술했다.

[4] 라디오랩Radiolab은 2002년 설립되어 미지의 세계를 조사해오는데 전념해왔다. 라디오 호스트, 작곡가 및 프로듀서인자드 자드 아붐라드Jad Abumrad가 창립하고 자드와 TV 저널리스트이자 NPR의 과학 특파원인 로버트 크럴위치Robert Krulwich가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피버디상Peabody Awards, 내셔널 아카데미 커뮤니케이션 어워드National Academies Communication Award을 수상했다.

https://www.wnycstudios.org/podcasts/radiolab/segments/211193-perfect-yellow

K’eperina/Manta/Carrier Cloth             17

코카 잎을 던져 만든 패턴, 번개에 의해 새겨진 바위 위의 이미지, 도자기의 디자인, 무용수나 동물들이 지구 위에 남긴 흔적들, 경로의 패턴에 의해 조직된 역사적 의례 장소, ‘허공에 글씨를 쓰면서’ 만들어지는 그들의 몸짓, 은신처의 상형 문자, 그리고 종이에 쓰는 것까지 모두가 안데스산맥 주민들의 글쓰기에 포함된다. 모든 새로운 직물 ‘존재’의 개발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것의 창발적인 말하기 능력이다. 씨실과 잉아의 결합 동작은 직물에 호흡, 빛 그리고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며 또한 말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씨실의 움직임은 호흡하는 효과를 갖는다. 서로 다른 색깔의 실 세트의 각 면에는 말의 힘이 있으며, 각 씨실이 지나갈 때마다 정맥 같은 실이 영양을 공급해 왔다. 호흡과 색채, 색의 놀이는 여성의 것이었다. 남성은 단지 흰색과 황갈색 만을 다룰 수 있었는데 만일 그들도 색채를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남성들 역시 직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마라족 사람들 중 여성들은 자신의 직물에서 무지개를 보여줄 수 있을 때 훌륭한 직공으로 여겨진다.

 Read more 🎧

This expensive dye was produced from the urine of cows fed exclusively on mango leaves. The animals died early from malnutrition and when this was taken up as an issue by Hindu cow protection societies, the British colonialists saw it was a threat and put a stop to production.

이 값비싼 염료는 망고 잎 만을 먹고 사는 소의 소변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염료 생산에 이용되는 소는 영양실조로 인해 일찍 폐사한다. 이러한 사실을 힌두 소보호협회에서 이슈로 다루자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염료 생산을 중단시켰다.

 Read more 🎧

As he admitted, Mahatma Gandhi had never seen a spinning wheel in his life, even though he had chosen it as the symbol of the Indian independence movement. It took the‘enterprising widow’ Gangaben Mujmuder to make it practical.

마하트마 간디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그는 인도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물레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물레를 본 적이 없었다. 물레는 ‘미망인 기업가’ 강가벤 무즈무더Gangaben Mujmuder에 의해 실질적으로 이용되었다.

 Read more 🎧

Insects and rocks can be read as aesthetic,as drawing attention to themselves through their beautific appearance, and thus as communication, a desirous exchange that is nonetheless initiated by the objects of the world rather than the (human) subject, thus creating a language of things in the forms, shapes, contours, colours, and so on.

곤충과 바위는 미적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외양appearance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관심을 끌게 하려는 드로잉으로, 소통으로 읽힐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주체에 의해서이기 보다 세계의 사물로부터 촉발된 갈망하는 교환 desirous exchange이며, 그래서 형태, 모양, 등고선, 색채 등과 같은 것 안에서 사물의 언어를 창조한다.

 Read more 🎧

K'eperina / Manta/ Carrier Cloth | 케페리나 / 모포 / 운반용 직물

울, 아크릴; 2008년, 라파스의 가게에서 구입. 코카 잎을 던져 만든 패턴, 번개에 의해 새겨진 바위 위의 이미지, 도자기의 디자인, 무용수나 동물들이 지구 위에 남긴 흔적들, 경로의 패턴에 의해 조직된 역사적 의례 장소, ‘허공에 글씨를 쓰면서’ 만들어지는 그들의 몸짓, 은신처의 상형 문자, 그리고 종이에 쓰는 것까지 모두가 안데스산맥 주민들의 글쓰기에 포함된다. 모든 새로운 직물 ‘존재’의 개발에서 중요한 부분은 그것의 창발적인 말하기 능력이다. 씨실과 잉아[1]의 결합 동작은 직물에 호흡, 빛 그리고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며 또한 말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씨실의 움직임은 호흡하는 효과를 갖는다. 서로 다른 색깔의 실 세트의 각 면에는 말의 힘이 있으며, 각 씨실이 지나갈 때마다 정맥 같은 실이 영양을 공급해 왔다. 호흡과 색채, 색의 놀이는 여성의 것이었다. 남성은 단지 흰색과 황갈색 만을 다룰 수 있었는데 만일 그들도 색채를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남성들 역시 직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마라족 사람들 중 여성들은 자신의 직물에서 무지개를 보여줄 수 있을 때 훌륭한 직공으로 여겨진다. “우리 어머니는 ‘저것들은 키사스k’isas[2]야, 그들은 달콤해,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멋있기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대모께서는 잘 짜인 직물을 보았을 때 ‘헤이 마마 지와키! 지와키! (hay mama jiwaki! Jiwaki!)’ 라고 외치기도 했는데 이는 그것이 너무 예뻐서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꽤 예쁘게 직물을 짰다고 말했다. 비가 그친 후, 그들은 무지개kürmi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왜냐하면 누군가 무지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무지개를 가리킨 손가락이 썩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는 것으로 색을 모방하곤 했다. 사람들은 최고의 직공은 자신이 짠 직물에서 마치 무지개가 보이는 것처럼 만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안데스 신화는 아카마니Akhamani 같은 신성한 산이 눈과 머리카락과 같은 인간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아카마니를 가리키며 신성한 산이라고 말하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산이 살아있으며 지역사회를 돌본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할아버지는 산을 아차칠라achachilas, 즉, 수호신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동물을 가리키며 라마와 알파카의 털은 산의 머리카락이고, 작은 라군은 산의 눈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바라보며, 여성들은 산의 머리카락을 직조를 하는 데에 사용했고, 라군은 직공들이 그 조각에 포함시킨 마름모꼴의 작은 모양이라고 이야기하셨다. 라군은 직물과 직공을 돌보는 눈이라고 하셨다. 또한 사람들은 농작물을 위한 충분한 물을 찾는 일에 이 눈[라군]을 직물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펠리파 바르가스Felipa Vargas, 칼라와야Kallawaya 문화, 카니자야kañizaya 지역공동체, 라파스의 지역). 볼리비아 카카차카Qaqachaka[3] 지역의 여성들은 직물을 짜는 요일에 따라서 다른 내용의 기도를 한다. 그들은 죽은 이들을 기리는 날인 월요일에는 [한때] 훌륭한 직공이었던 죽은 조상에게 기도를 하고, 악마의 날인 화요일에는 직물을 짜지 않는다.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직물을 짜게 되면 마미타스mamitas 중 한 명에게 기도하고, 목요일에 직물을 짜는 경우에는 남신, 킬락 타탈라Killak Tatala 혹은 파나카치 타탈라Panakach Tatala에게 기도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악마의 날 중 하나인 금요일에는 직물을 짜지 않는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쉰다. 11월의 죽은 자의 축제부터 다음 카니발까지의 장마 기간 동안 천을 짜야 한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으며, 만약 카니발 전에 직조 작업을 끝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결코 끝낼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면] 직공은 무기력함에 빠져, 한없이 땅으로 꺼져달어가는 듯 느꼈다.

[1] 잉아: 베틀의 날실을 한 칸씩 걸러서 끌어올리도록 맨 굵은 실. 종사(綜絲)

[2] 키사스 k’isas: 밝은 단계에서 어두운 단계까지의 연속성을 형성하기 위해 단계별로 등급이 매겨진 색의 배열, 무지개빛의 줄무늬와도 같다.

[3] 카카차카 Qaqachaka: 역사적으로 남부 중앙 안데스에 있는 콘도콘도의 식민지 연합 교구의 전 교회 부속 건물이었으며 현재는 볼리비아의 아바로아 지방에 위치해있다.

       8

전체적으로 동물의 이미지가 사선으로 패턴화된 중간 사이즈의 벨트는 끈으로 묶는 고리를 끝에 꿰매고 엮어서 만들어진다. 허리띠는 케추아어로 춤피chumpi 또는 와카 wak’a로 불린다. 또한 이것은 머리띠, 즉 윈차 wincha로도 쓸 수 있다. 둘 중 어느 것이든 나이, 결혼 여부, 계급 및 소속 단체를 나타내는 민족 의상의 일부분이다.

Though its mass production is now centred on China, after an intermission in a Scotland far distant from the goats of Tibet, its production as a shawl was a near-monopoly of the merchants of Kashmir. From the 16th century the fleeces were carried there by human load carriers with 55 kilos on their backs for three weeks over the roughest terrain.

비록 현재 대량 생산은 중국에 집중되어 있지만, 티벳의 염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에서의 생산이 중단된 이후, 숄의 생산은 카슈미르 상인들의 거의 독점했다. 16세기부터 함대는 가장 험한 지형을 넘어 3주 동안 55kg의 짐을 등에 지고 그곳에 운반되었다.

On International Women’s Day in 1917 – a Day Clara Zetkin had called for some years earlier at a meeting of international women socialists – women textile workers did a walk-out in Petrograd which prompted a city-wide strike that was directly instrumental in bringing about the fall of the Tsarist state.

1917년 국제 여성의 날에 – 몇 년 전부터 국제 여성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에서 클라라 제트킨이 이날을 명명했다. – 여성 직물 노동자들이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으킨 파업은 차르주의Tsarist 국가의 몰락을 가져오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도시 전체의 파업을 촉발시켰다.

심린 길Simryn Gill은 1959년 싱가포르 생으로, 호주 시드니와 말레이시아 포트딕슨에서 거주하며 설치, 사진, 드로잉, 글쓰기 등의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Read more

추유Ch’ullus는 일반적으로 고원(알티플라노Altiplano) 지역의 남성이 일상에서나 축제기간 동안 직접 만들어 착용하는 것으로, 잘 만들어진 추요chullo는 자부심의 원천이다. 예전 추유는 천연 염료로 염색한 양털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면이나 아크릴 재질로 짜이고 밝은 인공색으로 염색된다. 이것은 여러가지 대담한 디자인과 원뿔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뾰족한 끝부분을 언급하면서 엘비라 에스페초Elvira Especho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잉카인들은 두상을 길어지게 하려고 [머리를] 끈으로 묶었다, 저주받은 사람처럼/아주 빌어먹게도. 이것은 좋은 두상을 갖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그 [모자]들이 머리통을 길어지게 하려고 뒤쪽에 넓은 밴드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Dye chemistry was the basis of the whole chemical industry and in the early years of the 20th century it was dominated by Germany, including its factories in the USA. The First World War, with embargoes and factory seizures, saw the start of a long competition with the USA, which involved the use of industrial espionage by both sides.

염색 화학Dye chemistry은 모든 화학 산업의 기초가 되었으며 20세기 초반 이 산업은 미국의 공장을 포함하여 독일이 지배하고 있었다.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은] 금수 조치내리고 공장을 무력으로 장악하여 미국과의 오랜 경쟁의 시작을 보였는데 이는 미국과 독일 양측의 산업 스파이 활동과 연루되어 있다.

The successful revolution by slaves in the indigo and other plantations of Haiti, which led to the formation of an independent state in 1804, soon inspired revolts of cotton slaves in the USA.

아이티의 인디고 농장과 다른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예들이 이끌어낸 성공적인 혁명은 1804년 독립 국가를 형성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미국의 면화 노예들의 반란을 고무시켰다.

이네스, 의복에 동물을 묘사하는 건 말레이 사람들의 암묵적 금기입니다. 특히 이슬람이 그들의 아-딘Ad-Din(신앙)이 되었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옷이 한번 ‘소유’되고 나면 희미하지만 강렬한 향을 내뿜습니다. 또 다른 영역의 향기, 멀리 있는 영혼의 향기입니다. 동물[형상]은 인간 신체body에 금기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인간의 머리가 동물을 묘사한 것과 마주보고 있으면 안되었다고 합니다.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송곳니가 있는 동물이라면 [그들이 옷이든 어딘가에 수놓아져 있다면] 거친 짐승으로 변할거라고 믿었습니다.

Montera Tarabuqueña / Felt Helmet                                  3

이 헬멧같은 모자는 마른 이끼로 된 딱딱한 껍질로 만들어졌고, 얇은 가죽 조각으로 덮여 있으며, 시퀸과 구슬로 장식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타라부코 출신의 남자들이 썼다. 남자가 죽으면 아내는 애도의 표시로 가끔 모자를 쓰기도 했다.

The imports of this wonderfully dyed cotton from India threatened home-spun English wool to such a degree that many prohibitions against its import were made until the secrets of its production became known. In the meanwhile the writer Daniel Defoe was especially moralistic against its use by women servants.

멋지게 염색된 인도산 수입 면화는 생산의 비밀이 알려지기 전까지 수입금지가 내려질 정도로 영국산 홈스펀[1]home-spun 양모를 위협했다. 한편 작가 다니엘 데포는 여성 하인들이 인도산 수입 면화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며 도덕주의자적 면모를 보였다.

[1] 스카치 종류 양모의 굵은 방사로 성글게 평직(平織)하거나 능직(綾織)한 천. 농가에서 수방(手紡)의 굵기가 고르지 않은 방모사(紡毛絲)를 사용해서 수직하거나 평직으로 짠 방모직물. 영국의 가정에서 시작되어 대륙으로 퍼졌다고 한다. 그 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종류와 양질의 홈스펀이 생산되게 되었다. 현재는 기계방적사인 자동직기로 짜고 캐주얼코트슈트, 스커트, 스포츠웨어, 아동복지로 쓰인다.

 Read more

The Peruvian gay movement decided to reclaim the significance of Francisco Pro by celebrating “Gay Pride” in Lima on this day. He was discovered wearing women’s clothes in 1803, brought to trial, charged with sodomy, condemned on the grounds that tailoring was a “strange” profession for a man and sentenced to a “public shame walk” and prison.

페루의 동성애자 운동은 8월 2일에 리마Lima에서 ‘게이 프라이드’를 통해 프란시스코 프로Francisco Pro를 기념하며 그 의미를 되찾기로 했다. 프란시스코 프로는 1803년 여성의 옷을 입은 채 발견되어 소도미sodomy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프로의 직업은 재단사였는데, 남성이 가지기에는 “이상한” 직업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프로는 “치욕의 행진public shame walk” 형벌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Read more

The Bolivian government built a museum for the returned weavings in Coroma, but the people didn’t want to put their ancestors there because it was like a jail. So the museum is built, and it’s empty. Either the people must be able to live in the museum, to make rituals there, to look after them, or if they can’t have that then the museum should only be for pictures of the weavings.

볼리비아 정부는 코로마로 돌아온 직물을 위한 박물관을 지었지만, 코로마 사람들은 감옥 같은 곳에 자신들의 조상들을 가두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박물관이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비어 있게 되었습니다. 박물관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면서 제사를 지낼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돌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박물관은 오직 직물 사진만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Read more

1790년에 처음 공연된 ‘광부의 춤’은 식민지 시대에 광산 입구인 오루로Oruro[1]에서 생겨났으며 오늘날의 디아블라다Diablada, 악마 춤Devil Dance으로 진화했다. 이 춤은 악Evil과 칠죄종Seven Deadly Sins[2][2]와의 싸움을 상징한다: 오직 러스트Lust(성욕)의 죄만이 볼리비아에서 토종 치나 수빠이china supay[3][3]의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카니발 기간 동안 그녀는 곰들과 콘도르의 호위를 받으며, 그녀의 모든 매력을 이용하여 구경꾼들을 유혹한다. 신화의 춤은 안데스인들의 현실(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몫을 한다.

[1] Oruro오루로:  볼리비아의 도시로 오루로 주의 주도이며 면적은 1,633km², 높이는 3,735m, 인구는 264,700명이다. 세계적인 주석 광산으로 알려져 있다.

[2] 칠죄종Seven Deadly Sins은 그 자체가 죄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범하는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것을 일곱 가지로 분류한 것을 일컫는 그리스도교의 용어이다. 칠죄종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절부터 사용된 용어로서 인간이 죄를 범하기 쉬운 경향에 대해 교회가 가르치고 훈육하기 위하기 위해 대두되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가 칠죄종에 속하는 죄로 분류된다.

[3] China supay https://blog.naver.com/yupanqui/30184594484

The jean cloth originated in 16th-century Genoa, used by its far-travelling sailors, and was worn by poor working people. Denim started around the same time in France. Especially receptive to indigo, denim won out as the cloth but in a 20th-century marriage, jean(s) supplied the name.

청바지 천은 16세기 제노아에서 유래했다. 이는 먼 곳을 여행하는 선원들이나 가난한 노동자들이 입는 옷에 쓰였다. 데님은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천으로 사용되던 데님은 20세기에 들어 인디고와의 결혼을 통해 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Read more

With women at the forefront, the partial success of a strike at the Misr Spinning and Weaving Company in Mahalla, Egypt created a precedent for further strikes in the industry, and for community support two years later when a general strike in the same city became a pioneering attack on the Mubarak regime.

이집트 마할라의 미스르 방적·직조 회사에서 여성들이 앞장서 일으킨 파업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이후 방직산업에서 일어난 파업의 전례가 되었다. 2년 뒤 같은 도시에서 일어난 총파업이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선도적인 공격이 되면서 공동체의 지원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Read more

ome images have to pay a price in order to remain in the public imaginary. Something is kept, but it is stripped of everything, like when a museum buys a piece: especially in Peru, it loses all its value and all its political power.

어떤 이미지들은 대중들의 상상 속에 남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떤 것은 보관되어 있지만, 박물관이 작품을 살 때와 같이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특히 페루에서는 박물관의 모든 가치와 정치력을 상실한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