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her | 깃털

머리부터 윗부리 끝까지 능선을 따라 아름다운 노란 줄무늬가 이어져 있다. 같은 너비의 더 진한 노란색 줄무늬는 얼굴에서 부리 끝까지 직각으로 떨어진다. 이어 그 절반 넓이의 검은 줄무늬는 능선에서 직각으로 떨어지며 가장자리를 따라가다 부리 끝으로부터 반 인치 안쪽으로 좁아진다. 나머지 부분은 밝은 빨간색이다. 아랫부리에는 노란 선이 없으며 윗부리와 같은 모양으로 검은색과 빨간색이 펼쳐져 있다. 차이라면 끝에서부터 1인치 정도의 위치에 검은색이 있다는 것이다. 윗부리의 짙은 노란색 줄무늬와 맞닿는 줄무늬 부분은 하늘색이다. 이 부리가 가진 모든 찬란한 색깔들이 새의 몸체 깃털과 눈 주변 피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파란색을 제외한 모든 색상은 본래 갖고 태어났다. 파랗게 나타나는 부분은 실제로는 투명한 하얀색이며 그 내부의 파란색 엷은 피부 조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 뛰어난 부리는 죽음과 함께 색이 바래지고 삼사일 내로 고유의 색을 잃는다.

스페인 수도승은 잉카문명인들이 정글 위로 “새와 같이” 날 수 있다고 보고했으며, 스페인 종교계 권위자들은 날개로 짠 직물들의 샤머니즘적 능력을 크게 두려워하고 그들을 파괴할 것을 명령했다. 스페인인들은 쿠스코Cuzco인근의 잉카 군부대에서 10만 마리가 넘는 양의 말린 새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날개는 제복에 사용되기 위해 보관되어 있었으며 군사들은 그 날개로 봉급을 지급받았다.

깃털 예술 작품은 남미의 많은 고대 사회에서 사용되었으나 주로 식민지 이전pre-Columbian 페루와 현재의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보존되었다. 마야 초기부터 불운의 아즈텍 문명에까지 이르러, 귀족과 사제, 장군들은 그야말로 깃털들을 숭배했고 이들로 망토나 머리장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완장을 즐겨 꾸몄다. 목테쭈마Moctezuma황제는 이국적인 종種으로 이루어진 자기만의 사육장을 소유했는데 새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300명의 하인이 필요할 만큼 규모가 컸으며, 목테쭈마만을 위한 깃털 예술가 단체도 후원하고 유지했다. 식민지 이전의 셀 수 없이 많은 깃털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여덟 개뿐이며,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목테쭈마의 머리장식물로 알려진 작품이다. 길이 166cm에 넓이 177cm로 상당히 거대하며, 케트살Quetzal[1]의 녹색-금색 꼬리 깃털 장식 500개로 구성되었고, 흰색, 파란색과 붉은색 깃털 밴드와 작은 금색 로제트로 장식됐다. 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éz[2]가 스페인 침략 중에 목테쭈마를 시해한 뒤 그의 왕관 (뻬나초 Penacho)은 스페인인이 압수했다. 왕관은 18세기에 티롤Tyrol에 위치한 암브라스 성Ambras Castle의 창고 상자에서 다시 발견됐고 비엔나 민족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성의 저장고에 있었던 1566년부터, 식민지 이전 남미였던 이 머리 장식의 기원은 잊혔고 “무어인의Moor-ish[3]모자”라 불렸다.

  1986년부터는 아즈텍 국가의 후손들과 멕시코 정부에서, 비록 이 장식이 목테쭈마의 소유였다거나 모든 날개들이 진품이라고 인증 받진 못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에 반환을 요청했다. 반환 요청의 진행 과정에서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 전 관장 올리버 파겟Oliver Paget은 오스트리아가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유럽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합법적인” 방식으로 대부분의 소장품을 얻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위 장식의 복제품은 멕시코 혁명기의 국가상징으로 제작되었으며, 목테쭈마의 거처 유적 위에 건립된 멕시코시티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2011년부터는 이 왕관을 비엔나 인류학 박물관에서 일시적으로 대여해 오는 걸 고려 중에 있다. 아직 운송 문제, 의사소통 문제, 정치 법률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협상은 현재 진행중이다. 파라과이의 아요레오Ayoreode[4]족장들이 패배하고 선교 사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모피와 깃털들을 남기고 떠났다. 그들의 입을 권리와 자부심을 잃은 채.

[1] 케트살Quetzal: 중미 산의 꼬리가 긴 고운 새; 과테말라의 국조

[2] 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éz: 1521년 오늘날의 멕시코인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였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첫 개척자 세대에 속한다.

[3] 무어족Moor; Moorish: 아프리카 북서부에 살았던 이슬람 종족. 8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했다.

[4] 아요레오족Ayoreode; Ayoreo: 파라과이 서부 아마존 강 유역의 토착 민족


Wichuna / Llama-Bone Pick Tool | 위추나/라마 뼈로 만든 직조 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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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쿠스코에서 수집, 개인 소장, 아카이브에 임대. 손가락 인형, 막스 요르게 힌더러 크루즈의 아카이브에서 임대.

직조를 위해서는 베틀을 뒤트는 방법과 백스트랩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정하여 가장자리를 고르게 유지하는 등의 기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토착 미국인들의 직조방식은 유럽식의 플로어 베틀treadle loom과는 다르다. 미국인들의 직조의 경우 날실의 개수와 색상이 아주 신중하게 계산되어 디자인을 만드는데 이러한 기술은 나이든 여성들로부터 전수된다. 직조공은 디자인을 기억하기 위해서 라마뼈로 만든 위추나 집게 wichuna pick를 사용하여 날실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직조의 기본 구조 위에 유지되는 이 여분의 원사들은 표면을 가로질러 떠있고,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복잡한 공정에서 디자인이 완성된다. 직조공은 추가하거나 줄이기 위해서 원사를 집어 들어야 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혹은 계산하지 않고서도 디자인 형식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직조공은 간단한 장비를 사용하여 비교적 복잡한 패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디자인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직조는 직조과정에서 디자인이 양쪽면에 동시에 만들어지는지 혹은 단지 한쪽 면만 양호한 상태가 되도록 하는지에 따라서 ‘하나 혹은 두개의 면’을 갖는다. Through the reports of those who took it upon themselves to burn idols, we know a little about local belief systems starting around the early 17th century 우상을 불태워버린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서, 우리는 17세기 초에 시작된 지역의 믿음 체계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전통적인 토착신앙에 대한 대규모 캠페인을 시작했다. 스페인사람들은 조상숭배를 금지했고, 와카huaca(신성한 신전)들이 대거 파괴되었다. 조상을 모시는 신사에는 물레가락spindle, 집게 도구와 면 한줌과 같은 물건들이 있었다. 이런 도구들은 월식때면 숨겨져야 했다. 왜냐하면 여자로 여겨지는 달이 혜성에 의해 위협을 받으면, 물레가락이 독사로 변하고, 베틀은 곰과 호랑이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옷감은 (생명력)을 담는 그릇일 뿐 아니라 직조기구 자체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힘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Wichuna / Llama-Bone Pick Tool    24  

직조를 위해서는 베틀을 뒤트는 방법과 백스트랩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정하여 가장자리를 고르게 유지하는 등의 기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토착 미국인들의 직조방식은 유럽식의 플로어 베틀treadle loom과는 다르다. 미국인들의 직조의 경우 날실의 개수와 색상이 아주 신중하게 계산되어 디자인을 만드는데 이러한 기술은 나이든 여성들로부터 전수된다. 직조공은 디자인을 기억하기 위해서 라마뼈로 만든 위추나 집게 wichuna pick를 사용하여 날실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직조의 기본 구조 위에 유지되는 이 여분의 원사들은 표면을 가로질러 떠있고,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복잡한 공정에서 디자인이 완성된다. 직조공은 추가하거나 줄이기 위해서 원사를 집어 들어야 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혹은 계산하지 않고서도 디자인 형식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직조공은 간단한 장비를 사용하여 비교적 복잡한 패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디자인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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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re-colonial Mexico the emperor Moctezuma had an aviary of exotic birds to garner feathers for cloaks and head-dresses which needed 300 attendants. The Spanish invaders in the Andean region were so worried at their use by Indigenous shamans that they banned them.

식민지 이전 멕시코의 목테쭈마Moctezuma 황제는 300여명의 참석자에게 필요한 망토와 머리장식용 깃털을 모으기 위해 이국적인 새들을 키우는 커다란 사육장을 가지고 있었다. 안데스 지역의 스페인 침략자들은 원주민 샤먼들이 이 깃털 장식을 이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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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erman-colonised Togo, there was call for a “cotton Kulturkampf” against the USA, and to this end freed black American slaves were brought in as role models. Their insistence on using the plough undermined women’s independence as cultivators.

독일 식민지 토고(Togo)에서는 미국에 대항하는 “면직 문화캠프cotton Multurkampf”에 대한 요구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 해방된 흑인 미국 노예들이 역할모델로 유입되었다. 그들은 쟁기 사용을 주장했고, 이는 경작자로서의 여성의 독립성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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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combination chaka nayra sounds nice as a name, but has no exact meaning in Aymará. Chaka means bone and nayra means eyes or big eyes. But nayra can also be understood as an extension of the eyes, or as gaze or gaze into the distance. Chaka nayra, then, could just as well be translated as “bone with the big/beautiful eyes” or “bony gaze into the distance”.

챠카 나이라chaka nayra라는 단어조합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이마라어Aymara[1]에는 이에 해당하는 정확한 의미는 없다. 챠카chaka는 뼈라는 뜻이고, 나이라nayra는 눈 혹은 큰 눈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이라nayra는 눈의 확장으로, 혹은 시선이나 멀리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차카 나이라 chaka nayra는 “큰/아름다운 눈을 가진 뼈” 혹은 “멀리 바라보는 뼈”로 번역될 수도 있다.

[1] 아이마라어Aymara: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과 알티프 고원지역에 사는 아이마라 민족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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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a / Carrier Cloth         19

안데스의 직조는 긴 역사동안 양면이 같은 직물을 창조해왔다. 양면을 가진 천cloth of two faces이라고 칭해지는 이 직물은 유럽에서 보기 드문 품질이었다. “이 전체에서 실 한오라기도 그 직물이 끝나는 점도 찾을 수 없도록 안데스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작업을 양면으로 제작했습니다.” (아코스타Acosta, 1590년,  4권 42부) [안데스인들은] 흠이나 얼룩 없이 잘 짜여진 직물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There was a time in the Renaissance when the cost of the colour was as crucial as the hue itself, costing “at least five good florins an ounce” according to one painter’s contract. By contrast, the 19th-century factory version of the colour has been compared to fast food.

르네상스 시대에는 [후원자와] 화가의 계약에 따라 “온스당 최소 5 플로린의 가격”을 지불하며, 안료의 비용이 안료의 색조 만큼  결정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세기의 공장에서 생산된 색상은 패스트푸드에 비유되어 왔다.

 Attacks on independent textile trade unions and their demands for a proper minimum wage in post-earthquake Haiti use the worldwide rationalisation that it would make their product ‘uncompetitive’.

독립적인 섬유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과 지진 후 아이티에서 적절한 최저 임금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아이티의 제품을 ‘경쟁력이 없게’ 만들 것이라는 국제적인 합리화를 이용한다.

While the beauty of the naked male ‘native’ Australian could not be reconciled with European notions of masculinity, their ‘lack’ of shame has to be met with disgust or ridicule. The ridicule was returned in full by Aboriginal women to the faces of fully dressed invaders.

벌거벗은 남성 호주 원주민의 아름다움은 유럽의 남성성에 대한 관념과 조화될 수 없었고, [나체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던 그들[원주민]은 혐오나 조롱에 직면해야 한다. 호주 원주민 여성들은 그 비웃음을 옷을 입은 침략자들의 면전에 그대로 되돌려줬다.

Fighting Glove                        9

팅구’Tinku’라 불리는 의식은 한때 안데스 세계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고, 어쩌면 서기 1100년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갈 것이다.2월 초 볼리비아 고원 사람들은 사카카 마을로 걸어간다. ( 산악 지대를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걸어 다니는 것) 주로, 자급자족 농민들이 춤을 추고 치차([그 지역에서] 호밀로 만든 발효 음료)를 마시고 피가 대지를 물들일 때까지(Stain) 서로 싸운다. 남자들이 거리에서 서로 맞서 싸우지만 때로는 여성들도 똑같이 싸운다. 일부 남성은 가죽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지만, 전투는 맨주먹으로도( 맨손으로) 할수 있다. 구경꾼들은 때때로 한쪽이 불공평한(경쟁이 안되는) 시합을 파하기 위해 끼어들기도 한다. 얼굴과 팔다리에 타박상을 입을 뿐만 아니라 사망자도 발생 할 수 있다.

One of the first weaving innovations was that of passing the weft over two warp threads instead of one, which in Bronze Age Europe needed the invention of a loom with more than one heddle. In the same period, perhaps earlier, Peruvian weavers were using similar techniques. The distinctive twill pattern is of diagonal lines and diamond shapes.

최초의 직조 기술 중 하나는 한 가닥이 아닌 두 가닥의 워프 실을 넘기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에 유럽은 한 쪽 이상의 손잡이를 가진 베틀의 발명이 필요했다. 같은 시기에, 혹은 더 일찍이 페루 스웨터에도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독특한 트윌 패턴은 대각선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되어 있다.

Following 20 years of mass protests by Bangladeshi workers and the deaths of many of them in factory fires and collapses, they win a 76% increase in the minimum wage. This was opposed by the employers even though wages remain the lowest in a low-paid global industry.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20년간의 대규모 시위와 공장 화재와 붕괴로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한 후, 그들은 최저임금을 76% 인상받았다. 임금이 저임금 글로벌 산업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은 이를 반대했다.

I am beginning to understand what was never explained to me. I was only presented with incomplete facts. My family drew the cowl over me, but I am no nun. I wear a suit of armor, I am Catalina de Erauso. I killed one of them with this weapon. It was simple. He had not anticipated that I would come so close. His bloody breath clung to me as he was laid low. I do not know how many came before him. It is also of no consequence. Not to me. And they are used to making sacrifices. On this we agree.

나는 나에게 설명되지 않았던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불완전한 사실만을 전달받았다. 우리 가족은 나를 속였지만, 나는 수녀가 아니다. 나는 갑옷을 입은 카탈리나 데 에라우소이다. 난 이 무기로 그들 중 한 명을 죽였다. 그것은 간단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가까이 올 줄 몰랐었다. 그의 피비린내 나는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 왔는지 모른다. 그것은 또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겐 아냐. 그리고 그들은 희생을 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동의한다.

Ujutas, Ajotas / Sandals     26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샌들. 사슬을 매고 있는 누비아인과 아시리아 죄수들의 모습이 그러져 있다. 이집트의 오랜 숙적을 상징하는 8개의 아치 또한 그려져 있다. 이로써 그는 그의 적을 계속해서 짓밟을 수 있다. 18세기 브라질에서,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흑인들은 노예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 도시 거리를 걸을 때 신발을 신었다. 일례로 노동권을 가졌는지 여부가 불분명했던 한 여성은 “신발을 신는 사람으로 여겨졌다”는 이유로 공무원에 의해 곤경을 모면할 수 있었다.

 “And off they sailed in a pea-green boat” “into the snot-green sea”, “dressed in goose-shit green”.

“그리고 그들은 완두같은 초록색pea-green 배를 탔다네” “콧물같은 초록색snot-green 바다 속으로” “거위 똥 같은 초록색goose-shit green 옷을 입고”

 

When, in desperation, Zoran Bulatovic, leader of the RASKA textile workers trade union, cut off his little finger with a hacksaw on live television in Novi Pazar, the Serbian media were quick to equate labour disputes with psychopathic acts.

RASKA 섬유노동자 노동조합의 대표인 조란 불란토비치가 절망에 가득차 노미 파자르 TV 생방송에서 줄톱으로 그의 새끼손가락을 절단했을 때, 세르비아 언론은 재빠르게 노동쟁의를 정신병적 행위와 동일시했다.

The peasant weaver of exquisite hand-made baskets confounds the economic ‘law’ of economies of scale. He tells a businessman why it is that the more he produces, the more it will cost: if he or he and all his neighbours and family started production, no-one would any longer work his fields. “In such a case corn and beans would get so expensive that none of us could buy any and we would all starve to death.”

정교한 수제 바구니를 짜는 농민은 규모의 경제 ‘법칙’에 당혹한다. 그는 한 사업가에게 그가 더 많이 생산할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이유를 말한다. 만일 그 혹은 그의 이웃과 가족이 바구니를 만들기 시작한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아무도 일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경우 우리 중 누구도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옥수수와 콩은 비싸질 것이고 우리는 모두 굶어 죽을 것입니다.”

Eke’ko / Ceramic Figure     2

에케코Eke’ko는 두 팔로 넓은 몸짓을 하고 때로는 갈라진 입술 사이로 타오르는 담배를 꽂아 넣어 꾸민 유쾌한 작은 사람이다. 에케코는 아이마라어로 ‘나를 사줘’라는 뜻이다. [에케코] 그는 알라시타스 미니어쳐를 [파는] 행상인으로 팔과 등에 짐을 지고 있다. 에케코는 또한 안데스 대지의 어머니인 파차마마Pachamama와 관련되어 있으며, 생명의 유지자로서 매우 존경을 받고 있다.

The customisation of denim matches a demand for what is not mass-produced. Strike Gold, Pure Gold, and Iron Heart ranges have understood how personal identity can be manifested in exclusive denim.

데님의 맞춤 제작은 대량 생산이 아닌 제품에 대한 전세계적 요구에 부합했다. 스트라이크 골드Strike Gold, 퓨어 골드Pure Gold, 아이언 하트Iron Heart 등의 제품군은 어떻게 개인의 정체성이 특정한 데님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In India, an estimated 100,000 GM cotton farmers committed suicide in the period 1991 to 2009 when the promise of greater yields did not materialise. They were faced with impossible debt, drinking the very pesticide they had bought to improve their situation but whose cost formed part of that debt.

생산량 증대라는 전망이 실현되지 않았던 1991년부터 2009년 사이 인도에서는 약 100,000명의 GM목화 농부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은 상환이 불가능한 부채에 직면하게 되자 농약을 마셨다. 이 농약은 농부들이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구입했지만, 구매비용이 다시 부채의 일부가 된 바로 그 농약이었다.

마르쿠스 뵈르괴테르Markus Wörgötter는 예술가이자  사진작가, 그래픽 디자이너로 빈에 거주하고 있다. https://www.markuswoergoetter.com/

Inkuña / Ritual Manta or Carrying Cloth              45

잉쿠냐inkuña는 4개의 셀비지selvage를 가진 직사각형 모양의 워프페이스warp-faced 기법으로 짜여진 운반용 천으로 코카 잎이나 음식을 담는 데 사용되었던 테두리가 잘린 천을 말한다. 그것은 대부분 여성들이 대지mother earth나 다른 신들deities에게 제물을 바치는 데 사용되었다. 

What was unthinkable in earlier centuries changed in the fifteenth.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Western clothing, grey – relegated until then to work clothes, the poor,

and the habits of Franciscan monks, which were meant to be colourless – became popular among the upper classes of Europe.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 15세기에 와서 바뀌었다. 이전까지 회색은 작업복, 가난한 자 그리고 채도가 없는 색을 사용하는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의 관습적으로 입는 색으로 격하되었으나, 서양 의복 역사상 처음으로 회색은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One main aim of the uprising led by Tupac Amaru II and Micaela Bastidas against the Spanish authorities of Peru, was to free Indians from the prisons that call themselves cloth workshops, where they “were destined for a quick civil death”.

 페루의 스페인 당국을 상대로 투팍 아마루 2세와 미카엘라 바스티다스가 주도한 봉기의 주요 목적은 “사람들을 빠르게 죽음으로 내모는” 직물 작업장으로 불리는 감옥으로부터 인디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Weaving substantiated women’s powers, as Andeans knew well. Neither colonialism nor modern capitalism can obliterate a textile’s soul.

안데스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베 짜는 것은 여성의 힘을 입증했다. 식민주의도 현대 자본주의도 직물의 영혼을 소거할 수 없다.

Woman’s Shirt                      32

2005 년 12 월 8 일 워싱턴 DC에서 당시 대통령 조지 W. 부시와 알란 가르시아가 미국-페루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2006년 6월 페루와 2007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비준되었다. 2007년 12월 19일 페루 의회는 편무적(片務的) 법령에 따라 정부가 FTA 관련 법률을 시행하도록 6 개월의 위임 기간을 부여했다. 이러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행정부는 99개의 입법령 초안을 작성했다. 2009년 2월 1일 협정이 발효되었다. 많은 입법령은 페루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LD 1083(수자원의 효율적인 사용 및 보존 촉진)은 수자원을 광업 회사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쪽으로 민영화할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은 LD 1090(임업 및 삼림 동물법)이다.

Just as the crinoline craze had died down in Europe in 1875, it reached Africa. Its spread among black women with money horrified a puritan minister who “went with two elders from house to house … and we confiscated all crinoline to burn them to death before their eyes with the others joyfully laughing”.

1875년 유럽에서 크리놀린 열풍이 잦아들었을 때, 그것은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렀다. 크리놀린의 유행은 돈을 가진 흑인 여성들 사이에 퍼져 청교도 목사를 섬뜩하게 했다. 청교도 목사는 “집집마다 어른 두 분과 함께 다녔고… 그리고 우리는 모든 크리놀린을 압수하여 낄낄거리며 웃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눈앞에서 크리놀린을 태워 없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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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nger sewing machine becomes a worldwide tool both for industry and for domestic work. By 1913 the company was selling two and a half million machines per year. It gave more women their own means of production but also brought them into the realm of super-exploited work.

싱거 재봉틀은 산업과 가정을 위한 세계적인 도구이다. 1913년까지 그 회사는 매년 250만대의 기계를 팔았다. 이 재봉틀은 많은 여성들에게 생산수단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극도의 착취적 노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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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온드레이슈카Boris Ondreika (1969)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예술가, 큐레이터, 작가이자 tranzit.sk의 전 감독이다. 그는 매니페스타 8과 더이벤트2011을 공동 기획했고, 베니스, 프라하, 규므리, 빈, 토리노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Tullmas / 6 Everyday and Festival Hair Ties   16

라파스의 촐리타cholita는 센트로 centro라고 불리는 네 겹의 속치마, 밝은 폴레라/뽀예라 polleras(큰 원피스 스커트), 장식이 달려 있고 깔끔하게 접어 등을 감싸도록 입는 만타스mantas, 머리에 잘 맞는 작은 펠트 중산모를 쓴다. 그들은 쌀쌀한 겨울이나 비가 오는 여름엔 알파카나 아크릴 레그 워머를 입고 때로는 모자를 비닐봉지로 싸매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흙 투성이의 거리를 양말 없이 에나멜 가죽이나 투명한 플라스틱 슬립온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닌다. 촐리타 스타일은 두세 달마다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예를 들어 모자의 높이는 센티미터 단위로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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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desired dye-stuff in a colourless Europe used to make the deepest red cloth, was a monopoly of the Spanish colonialists in Mexico despite espionage efforts to know its secrets. In the 16th century only gold had more value as a Mexican export.

유럽인들이 열망하는 진한 붉은 색 천을 만드는 염료는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간첩 활동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독점하고있었다. 16세기에는 금만이 멕시코 수출품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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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l weavers in Wiltshire, England rioted against wage reduction, which, the cloth merchants said, “would not only make the poor more laborious, more diligent, more virtuous, and not at all lessen the consumption of provisions and necessaries, it would be a national blessing, and no real injury to the poor.”

 영국 윌트셔Wiltshire의 울 직조공들은 임금 삭감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직물 상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노동하도록 만들고, 더 부지런하고, 더 덕망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식료품과 생필품의 소비를 조금도 줄이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축복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실질적인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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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광부. 라파스의 산업지구인 엘 아토El Alto에서 코미볼COMIBOL 광업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모임의 일원이다. 이 프로젝트는 2003년에 시작되고 볼리비아의 다른 광산 타운들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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