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2013년 방글라데시 공장 붕괴의 현장.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관계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라나 플라자 Rana Plaza 죽음의 덫에 빠진 마지막 순간 속에서 서로를 구하려고 했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제31 여자중학교에서 14명의 학생이 화재로 숨졌다. 이 학교는 보수적인 성직자들이 관리하는 정부 기관 ‘여학생 교육 총회장 the General Presidency for Girls’ Education’에 의해 운영되던 곳이었다. 남녀의 완전한 분리를 위해 매우 폐쇄적이었던(폐쇄적인 구조였던) 이 학교는 과밀 위험 경고와 소화기, 화재경보기의 부족하다는 경고를 무시해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망은 ‘선행을 권장하고 악행을 방지하는 위원회the Committee for the Propagation of Virtue and the Prevention of Vice’[1] 소속 종교경찰들의 행동으로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 이들은 여학생들이 두건과 검은 예복(아바야 abayas)으로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들이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것을 저지했으며, 구조대원들의 구조를 방해했다. 종교경찰은 여학생들과 민간 구조대 사이에 신체적 접촉이 발생할 위험이 있고, 이는 결국 성적 유혹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 한 목격자는 경찰 3명이 여학생들을 구타해 탈출하는 것을 막았다고 이야기했고, 또 다른 목격자는 여학생들을 도우려고 했으나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제지당했다고 진술했다. 민간 구조대 관계자는 여학생들이 정문을 통해 나올 때마다 경찰들이 강제로 다른 곳을 통해 돌아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이는 1932년 도쿄에서 발생한 이른바 ‘시로키야 화재 사건 Shirokiya Incident’과 닮아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이 비극적 사건은 기모노의 단점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 많은 여성이 서구식 속옷을 입게 만든 계기를 만들었다. 당시, 시로키야 백화점 건물에 불이 나자, 기모노 차림의 여자 직원들이 5층에 갇혔다. 기모노를 입은 상당수의 직원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노출될까 두려워했고, 이에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아 결국]사망했다고 신문들은 보도했다. 사건 이후 즉시, 판매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속옷을 착용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메카 여학생들이 화재에서 탈출하지 못해 숨진 이 사건은, 제1세계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방글라데시 섬유 공장들에서 발생한 화재 사망 사건의 역사와 끔찍히 닮아 있다. 불과 1년 전인 2001년 8월, 미코Mico 공장에서도 24명의 여성 근로자가 숨지고 백여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7층에서 발생한 화재를 피하고자 탈출을 시도했으나, 출구가 잠겨 있어 출구 쪽 계단에 갇힌 채 발견되었다. 이는 시브푸르Shibpur에 있는 차우두리 니트웨어the Chowdhury Knitwear 공장에서 대부분 10대 소녀였던 54명의 근로자가 화재로 사망한 사건에 이어 발생한 일이다.  이들은 야근을 하던 중 화재가 발생해 대피하려 했으나 외부에서 비상구와 출구를 잠가 두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강제로 시행된 추가 업무 시 폐쇄된 출구와 과부하 된 전기회로가 원인이 된 화재에 대한 공포스러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반복되어 왔다.

2013년 방글라데시 공장 붕괴의 현장.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관계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라나 플라자 Rana Plaza 죽음의 덫에 빠진 마지막 순간 속에서 서로를 구하려고 했을 것이다.

인명 손실보다 직물 도난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잠겨진 문과 창문 창살은 2013년 카라치Karachi에 위치한 알리 엔터프라이즈Ali Enterprises에서 발생한 끔찍한 화재에서 293명의 사망자와 심각한 상태life-restricting의 부상자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일조했다. 현재, 화재의 원인이 업주들의 보호금 지급 실패 the failure of the owners to pay protection money라 주장하지만, 사망 원인이 된 것은 탈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사건 발생 불과 한 달 전, 공장이 서구에서 승인한 안전확인서Western-approved safety certificates를 발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일이었다.

[1] 전통 무슬림 행동 규범 감독을 담당하는 가자 지구The Gaza Strip의 한 단체


7 Aprons, 13 Photographs | 7개의 앞치마, 13장의 사진

20세기 말, 시장의 여성들이 착용한 면과 합성 섬유; 2008년 라파스 길거리 시장에서 수집. 크레타 섬의 풍요의 여신들과 아시리아 사제들은 신성한 앞치마를 입었고, 이집트의 통치자들은 보석이 박힌 앞치마를 입어 그들의 지위를 보여주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상인과 장인들이 옷을 보호하기 위해 앞치마를 입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일반적으로 ‘에이프런 맨’으로 불렸다. 에이프런 맨이 매우 흔해지자 몇몇 무역업자들은 그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스타일을 자랑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행동력에 관한 한, 안데스 사회는 여전히 패권적 유럽인들과 남성 중심의 역사 기록학이 만들어낸 구조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1930년부터 1960년까지 쿠스코Cuzco[1]의 시장 여성에 대한 마리솔 드 라 카데나Marisol de la Cadena[2]의 연구는 원주민과 메스티자의 분류가 원시인에서 문명인으로 발전하는 과정과 유사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상황을 다르게 설명한다. 오히려 이 연구에서 원주민에 대한 관점은 끝없는 관계 분류를 통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반영한다. 그녀는 인종적 범주가 인종 차별적 분류에 기초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특정한 상호작용에 의해 협상되는지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메스티자스mestizas는 원주민 여성과 달리 하인이 아니라 도시에 살면서 상인으로서 훌륭하게 생계를 꾸린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원단의 질, 블라우스 모양, 숄을 착용하는 방식, 모자 소재 등을 바탕으로 메스티자와 그들의 고객들은 원주민과 부엔 메스티자buen mestiza(좋은 메스티자)를 각각 최하와 최고 위치에 두는 분류 체계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그러면 여성은 원주민, 메스티자 심플(단순 메스티자), 카시 다마스casi damas(거의 숙녀), 다마스damas(숙녀) 및 부에나스 메스티자스buenas mestizas(좋은 메스티자스)로 인식된다.  일반적으로 계급을 나타내는 옷은 민족 의상과는 별개로, 각기 다른 경제 상황을 가리키는 권력 구조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계급은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는 상황에 따른 상호작용에 대한 해석 역시 허용한다. 예를 들어, 옷을 갈아 입음으로써 원주민은 다마dama가 되거나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으며, 그러므로 옷을 입는 방법을 배우는 오랜 과정에 선행하는 사회적 변혁을 표현한다. 식민지 지배자의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원주민 여성의 망토인 악수aksu는 계속해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더욱 외진 지역 사회에서는 스페인이 그들의 정책을 시행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볼리비아에서는 원주민 여성들이 스페인 스타일의 옷보다 악수aksu를 계속 입었다. 풀 스커트 위에 앞치마로 입는 오늘날의 시장 여성의 앞치마는 변형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1] 쿠스코는 페루 남동부 쿠스코 주에 있는 도시이다. 80 km 북서쪽으로 마추 픽추가 있으며, 안데스 산맥 사이의 해발 3600m에 있다. 현재 인구는 약 30만명이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하고 타완틴수유의 수도이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2] 마리솔 데 라 카데나 Marisol de la Cadena: 페루 리마 출신. 인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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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섬의 풍요의 여신들과 아시리아 사제들은 신성한 앞치마를 입었고, 이집트의 통치자들은 보석이 박힌 앞치마를 입어 그들의 지위를 보여주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상인과 장인들이 옷을 보호하기 위해 앞치마를 입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일반적으로 ‘에이프런 맨’으로 불렸다. 에이프런 맨이 매우 흔해지자 몇몇 무역업자들은 그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스타일을 자랑하기도 했다. 여성들의 행동력에 관한 한, 안데스 사회는 여전히 패권적 유럽인들과 남성 중심의 역사 기록학이 만들어낸 구조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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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elebrated Navajo weavers had trouble getting red yarn, despite their success with other dyes, especially black and yellow. They solved this by unravelling the red thread from commercial wool flannel used for Spanish army blankets, and then re-used it in their own weavings.

나바호족Navajo의 축복받은 방직공들은 멕시코의 스페인 군사들의 담요에서 실을 뽑듯 상업용 플란넬flannel 천인 바예타bayeta[1]천에서 붉은 실을 풀어내 다른 색실과 엮어 다시 짜고 방적기를 돌렸다.

[1] 바예타bayeta: 올이 촘촘하지 않고 느슨한 양모. 걸레를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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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teen Mecca schoolgirls trying to escape a fire at their school were forced back by members of the religious police because they were ‘not properly covered’, and were all killed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14명의 여학생들은 화재가 발생한 학교에서 도망치려고 하였으나, 그들의 몸을 제대로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 의해 학교에 억류되었고, 그들 모두는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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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ose strange animals – by now, I have unwrapped all and spread them out around me (a room full of aprons!) – from those strange animals, from those feathered birds emanates a story. (More likely, I am projecting onto the poor things, yet, clearly, a bond has been formed between us.) It is wrong to call them aprons, they answer to another name, old-fashioned, but much more apposite: “pinafore”.

이상한 동물들로부터 – 지금쯤이면, 나는 모든 포장을 풀고 앞치마들을 내 주위에 펼쳐 놓았다(방은 에이프런으로 가득 찼다!) – 그 이상한 동물들로부터, 그 흐트러진 새들로부터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나는 그 불쌍한 것들에 투영하고 있지만, 우리 사이에 분명히 유대감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앞치마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들은 ‘구식’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훨씬 더 빈틈없는: “피나포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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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Jorge Hinderer Cruz | 막스 요르게 힌더러 크루즈

역사상의 모든 이름. 큰/아름다운 눈을 가진 뼈라는 의미의 ‘차카 나이라Chaka Nayra’는 호기심으로써 리마Lima의 오래된 동네(구시가지)의 길거리 상인들의 담요에 다른 물건들과 나란히 펼쳐지는 것으로 끝나기 전에, 직조를 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기원이 불특정한 뼈로 만든 도구이다. 그리고 나서, 다양한 형태로 순환되어 그것은 이제 국가 성장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쯤, “내가 결국 역사의 모든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1]. 도구로써, ‘차카 나이라’는 주로 직조 빗의 기능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그것의 목적은 기하학적인 축을 형성하여 연결된 십자형 실을 서로 팽팽하게 조여, 실에 의해 나타난 여러 방향으로 함께 밀어내 고밀도 평면으로 된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차카 나이라’는 긴 천long weaves, 벨트, 밴드, 또는 세밀한 작업을 위한 아주 매우 가느다란 직조 뼈weaving bone이면서 가느다란 빗이다. 예를 들면, 값비싸고 거친 질감의 직조를 장식하거나 마무리하는 것이다.

가늘고 길쭉한 뼈(elongated bone)는 다양한 동물 모양의 판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일부는 물체 자체의 윤곽을 반영하여 추가 형상을 만들어 낸다. ‘차카 나이라’를 세로축 방향과 옆면으로 돌리면, 다른 하나의 형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거북이의 머리가 나타나는데, 라마나 악어, 또는 왜가리, 심지어 실제 같은 코끼리 머리도 있을 것이다. 이 도구에 생기를 불어넣는 야생동물들의 형상과 영혼은 동그랗고 하얗고 움푹 들어간 요소들과 눈처럼 우리를 쳐다보는 구멍들에 의해 생동감이 생기는 것이다. 몸은 하나의 조각과 길쭉한 뼈와 살구크기만한 골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손에 잘 맞으며 대략 11 센티미터의 길쭉하고 가늘게 튀어나온 손잡이 역할을 하는데, 우아하게 구부러진 목(혹은 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총 16센티미터 길이다. 이것은 양이나 라마의 움푹 들어간 뼈로 만들 수도 있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어 광택을 낼 수도 있다. 또는, 약 두 살 정도 된 아이의 허벅지 뼈로 만들 수도 있다. 뼈의 물질은 콘도르(남미 대형 독수리)의 뼈로 보기엔 너무 무거워 보이고, 성인 가톨릭 성직자의 척골 뼈로 보기엔 너무 크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다른 직조 뼈로 만들어지거나, 특정 직물에 대한 특정 작업이나 장식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뼈의 크기, 기원, 밀도와 더불어 빗의 이빨 수 같은 특징에 따라 나눠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차카 나이라가 생물학적으로 누군가의 뼈의 형태로 한때 중요한 역할을 했었는지, 또는 누구의 직물 형태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차카 나이라로 다양한 옷, 생필품, 유통품, 더 자세하게는 보형물, 도구, 정신적/형식적 구조를 표현한 민족지학적인 공예품들을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결국 차카 나이라는 객관성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간단히 말해, 차카 나이라는 항상 관계를 묘사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끈끈한 유대감, 많은 다른 사람들, 그 사람들의 온기, 서로의 관계, 그리고 특정한 문화적인 물건들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것은 노동의 도구로써 사용되어 우리에게 다시 완벽한 옷감과 도구들로 돌아와 우리를 보호해준다.

20세기와 21세기의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차카 나이라의 변화는 콜럼버스 이전의 생산과 생계 형태와 식민지 노동과 착취의 폭력 형태 사이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반대로, 모든 조산한 라마, 어린아이의 예상치 못한 죽음, 탐욕스러운 성직자들은 모두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들의 정당한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한 시도로, 우리는 그들을 다시 상기시키고 구현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도구를 통해 그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는 차카 나이라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우리가 그것의 축을 한 바퀴 돌린다면, 모든 역사 속의 이름들이 살아있을 때의 눈으로부터 우리에게 말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1] 여기서 우리는 라파스La Paz의 마녀 시장Witches Market에서 우리의 작은 손가락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손가락 인형은 즉시 우리의 직조골을 입히고, 그것을 두 배로 하고, 거울을 보고, 말을 하도록 도와준다. 역사의 이름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프리드리히 니체로부터 제공받았다. 1889년 1월 5일 스위스의 유명한 문화사학자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에게 보낸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니체는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의 겸허함을 꺾는 것은, 내가 결국 역사에서의 모든 이름이라는 점이다”라고 썼다. 역사가들은 니체의 마지막 편지를 Wahnbriefe (“미친 편지”)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손가락 인형과 관련되듯이 차카 나이라라는 단어 조합은 이름처럼 듣기 좋으나 아이마라에서는 정확한 의미가 없다. 챠카 ’chaka’는 뼈라는 뜻이고, 나이라 ’nayra’는 눈 혹은 큰 눈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이라 ‘nayra’는 눈의 확장으로, 혹은 시선이나 멀리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차카 나이라 ‘chaka nayra’는 “큰/아름다운 눈을 가진 뼈” 혹은 “멀리 바라보는 뼈”로 번역될 수도 있다.



Poncho Huayruru

독일령 식민지 토고의 한 면화 수집소.

 미국 앨라배마주의 흑인학교인 터스키기 공립 학교를 졸업한 존 W. 로빈슨 John W. Robinson 은 독일이 식민지배하고 있던 토고에 목화 재배학교 및 실험 농장을 개설한다. 터스키기는 부커 T. 워싱턴 세력이 탄탄한 지지를 받는 지역으로, 그는 노예로 태어나 19-20세기 전환기의 미국 흑인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1895년 애틀랜타 연설에서 그는 인종차별적 짐 크로 법 Jim Crow laws을 감내하면서도 흑인의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또한 목화에 기반한 ‘새로운 남부 New South’의 미덕을 선언했는데, 이는 노예제를 대체한 소작제도 아래에 고도로 훈련된 노동력들 곧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채집 기술에 의존한 것이었다.

한편 아프리카 토고 남부에서는 이미 에우족Ewe이 자생적으로 목화를 재배하고 있었고 지역 시장에는 “매우 내구성이 강한 면직물”이 있었지만, 수출 사업으로 하기에는 섬유 가격이 너무 높았다. 오직 여성만이 목화를 재배하고, 솜에서 씨를 제거하고 실로 뽑아, 그 방적실을 남성인 직조공에게 팔았다. 일부일처제가 아닌 관계에서 이는 여성에게 독립적인 수입이 있음을 의미했다. 독일 식민주의자의 눈에는 여성 중심의 가정에 너무 큰 힘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사회정책협회Verein für Sozialpolitik 연구소의 인종주의 지식인들의 지원을 받던 식민주의자들은 매우 초기부터 목화 농업의 이러한 시스템을 바꾸고 싶어했다. 다른 유럽인들이 그랬듯이 그들도 “대미(對美) 면화 문화투쟁 Kulturkampf”을 외치며 미국의 면섬유 독점을 와해시키고 싶어했다. 이는 중대 사업이었다. 1900년까지 독일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면화 생산국으로서 업계에 40만 명이 종사했지만, 원면(原綿) 가격의 빠른 상승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칼 헬페리치 Karl Helfferich 는 “유럽 면화 산업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지배”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식민지에서의 생산뿐 이라고 주장했다. 독일령 동아프리카에서 시도한 대농장제는 결과적으로 임금 노동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과 그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발생시켰다. 토고에서는 [대농장제] 대신 명목상으로는 자유농부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세계 시장에 내놓을 면화를 생산하지만 만약 농부들이 생산하지 않을 시에는 생산을 강요하는 폭스쿨투어 Volkskultur[1]를 만들고자 했다. 경작 및 노동 규율에 있어서의 현대적인 방법이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면화 생산에 기여할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경작으로의 전환과 이에 필요한 육체적 힘은 여성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식민-가부장적 꿈인 부르주아 가정상을 사회 규범화 하기 위한 초석을 놓을 것이었다. 

부커 T. 워싱턴이 “당신들은 우리가 남부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목화만 기르도록 가르친 그 실수 말이다.” 라고 경고했음에도, 독일 사회정책협회 멤버들은 터스키기 및 부커 T.워싱턴 주변 그룹과 맺은 연계를 통해서, 그 방면 전문가인 미국의 ‘니그로 Negro’가 토고 남부인들이 세계 면화 시장의 생산업자가 되기 위한 완벽한 롤 모델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독일인들은 터스키기 학교 졸업생들이 식민지 당국을 존중하며 씨앗과 전문지식을 가져와서 농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901년 네 명의 졸업생이 도착했고 여성들이 사용했던 괭이를 대신할 쟁기 역시 가져왔다. 사람들은 쟁기를 보고 열광했으나 쟁기를 끌게 한 여러 동물들이 모두 체체파리 때문에 죽었다. 그리하여 ‘전문가들’ 중 한 명인 캘로웨이 Calloway는 남자들이 동물 역할을 맡아 쟁기를 직접 끌게 했으며 이는 하나의 표본, 즉 식민적 진보의 잔인한 아이러니가 되었다. 면화의 수출이 증가하고 여성의 힘은 약해졌으나, 1904년이 되자 식민지 권력은 모범적인 ‘니그로 Negro’ 농부들의 방식을 버렸고 그 대신 앞서 말한 네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존 로빈슨 John Robinson이 노스테 Nosté에 토고 면화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합리적 목화 농사를 가르치는 3년 과정이었으며 식민지의 모든 구역에서 학생들을 보내야 했다. 학생들은 ‘자유’ 농부가 되기 위해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터스키기 학교와 달리 식민 당국은 그들이 학업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다양한 비공식적인 저항 전략을 사용했는데, 식민지 개척자들에게는 타고난 ‘나태함’ 탓으로 치부당했고, 자국민들 사이에서는 위신을 잃었다. 이들이 위신을 잃는 것은 가부장적 가정 모델을 만들어 내고자 한 식민지적 목표를 약화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의 감독을 받는 모범 농장 생활에 배우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외롭고 불쌍한 젊은이들”을 적잖게 배출했다. 초기부터 가격보증제, 터스키기 농가에 의해 개발된 전문종자, 철도 건설 등을 활용하여, 1909년까지 면화 수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다가 이후 차츰 감소했다. 로빈슨은 워싱턴이 처음부터 공언했던 방침에 의거하여, 목화는 사람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 것이지만 “사람들이 오로지 목화만을 쫒아 살 수는 없다 … 그들은 목화와 얌을 더 잘 기르도록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식민지배 체제에서 열외의 처지에 놓였다. 사실 토고의 농부들은 언급될 필요조차 없다. 철도, 시장, (너무나 낮았던) 가격 보증은 재배자들이 자급자족 농사를 포기하고 단일재배 생산을 하도록 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단일재배 생산은 더 노동 집약적이면서도 추가 보상은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의 영국 경우와 달리 독일 식민주의자들은 과세와 신용 거래의 착취적 시스템을 통해서 강제력을 제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 시장에 대한 저항은 계속되었다.


Feather | 깃털

머리부터 윗부리 끝까지 능선을 따라 아름다운 노란 줄무늬가 이어져 있다. 같은 너비의 더 진한 노란색 줄무늬는 얼굴에서 부리 끝까지 직각으로 떨어진다. 이어 그 절반 넓이의 검은 줄무늬는 능선에서 직각으로 떨어지며 가장자리를 따라가다 부리 끝으로부터 반 인치 안쪽으로 좁아진다. 나머지 부분은 밝은 빨간색이다. 아랫부리에는 노란 선이 없으며 윗부리와 같은 모양으로 검은색과 빨간색이 펼쳐져 있다. 차이라면 끝에서부터 1인치 정도의 위치에 검은색이 있다는 것이다. 윗부리의 짙은 노란색 줄무늬와 맞닿는 줄무늬 부분은 하늘색이다. 이 부리가 가진 모든 찬란한 색깔들이 새의 몸체 깃털과 눈 주변 피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파란색을 제외한 모든 색상은 본래 갖고 태어났다. 파랗게 나타나는 부분은 실제로는 투명한 하얀색이며 그 내부의 파란색 엷은 피부 조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 뛰어난 부리는 죽음과 함께 색이 바래지고 삼사일 내로 고유의 색을 잃는다.

스페인 수도승은 잉카문명인들이 정글 위로 “새와 같이” 날 수 있다고 보고했으며, 스페인 종교계 권위자들은 날개로 짠 직물들의 샤머니즘적 능력을 크게 두려워하고 그들을 파괴할 것을 명령했다. 스페인인들은 쿠스코Cuzco인근의 잉카 군부대에서 10만 마리가 넘는 양의 말린 새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날개는 제복에 사용되기 위해 보관되어 있었으며 군사들은 그 날개로 봉급을 지급받았다.

깃털 예술 작품은 남미의 많은 고대 사회에서 사용되었으나 주로 식민지 이전pre-Columbian 페루와 현재의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보존되었다. 마야 초기부터 불운의 아즈텍 문명에까지 이르러, 귀족과 사제, 장군들은 그야말로 깃털들을 숭배했고 이들로 망토나 머리장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완장을 즐겨 꾸몄다. 목테쭈마Moctezuma황제는 이국적인 종種으로 이루어진 자기만의 사육장을 소유했는데 새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300명의 하인이 필요할 만큼 규모가 컸으며, 목테쭈마만을 위한 깃털 예술가 단체도 후원하고 유지했다. 식민지 이전의 셀 수 없이 많은 깃털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여덟 개뿐이며,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목테쭈마의 머리장식물로 알려진 작품이다. 길이 166cm에 넓이 177cm로 상당히 거대하며, 케트살Quetzal[1]의 녹색-금색 꼬리 깃털 장식 500개로 구성되었고, 흰색, 파란색과 붉은색 깃털 밴드와 작은 금색 로제트로 장식됐다. 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éz[2]가 스페인 침략 중에 목테쭈마를 시해한 뒤 그의 왕관 (뻬나초 Penacho)은 스페인인이 압수했다. 왕관은 18세기에 티롤Tyrol에 위치한 암브라스 성Ambras Castle의 창고 상자에서 다시 발견됐고 비엔나 민족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성의 저장고에 있었던 1566년부터, 식민지 이전 남미였던 이 머리 장식의 기원은 잊혔고 “무어인의Moor-ish[3]모자”라 불렸다.

  1986년부터는 아즈텍 국가의 후손들과 멕시코 정부에서, 비록 이 장식이 목테쭈마의 소유였다거나 모든 날개들이 진품이라고 인증 받진 못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에 반환을 요청했다. 반환 요청의 진행 과정에서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 전 관장 올리버 파겟Oliver Paget은 오스트리아가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유럽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합법적인” 방식으로 대부분의 소장품을 얻었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위 장식의 복제품은 멕시코 혁명기의 국가상징으로 제작되었으며, 목테쭈마의 거처 유적 위에 건립된 멕시코시티 국립인류학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2011년부터는 이 왕관을 비엔나 인류학 박물관에서 일시적으로 대여해 오는 걸 고려 중에 있다. 아직 운송 문제, 의사소통 문제, 정치 법률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협상은 현재 진행중이다. 파라과이의 아요레오Ayoreode[4]족장들이 패배하고 선교 사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모피와 깃털들을 남기고 떠났다. 그들의 입을 권리와 자부심을 잃은 채.

[1] 케트살Quetzal: 중미 산의 꼬리가 긴 고운 새; 과테말라의 국조

[2] 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éz: 1521년 오늘날의 멕시코인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였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첫 개척자 세대에 속한다.

[3] 무어족Moor; Moorish: 아프리카 북서부에 살았던 이슬람 종족. 8세기에 스페인을 점령했다.

[4] 아요레오족Ayoreode; Ayoreo: 파라과이 서부 아마존 강 유역의 토착 민족


Wichuna / Llama-Bone Pick Tool | 위추나/라마 뼈로 만든 직조 집게

1978년 쿠스코에서 수집, 개인 소장, 아카이브에 임대. 손가락 인형, 막스 요르게 힌더러 크루즈의 아카이브에서 임대.

직조를 위해서는 베틀을 뒤트는 방법과 백스트랩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정하여 가장자리를 고르게 유지하는 등의 기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토착 미국인들의 직조방식은 유럽식의 플로어 베틀treadle loom과는 다르다. 미국인들의 직조의 경우 날실의 개수와 색상이 아주 신중하게 계산되어 디자인을 만드는데 이러한 기술은 나이든 여성들로부터 전수된다. 직조공은 디자인을 기억하기 위해서 라마뼈로 만든 위추나 집게 wichuna pick를 사용하여 날실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직조의 기본 구조 위에 유지되는 이 여분의 원사들은 표면을 가로질러 떠있고,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복잡한 공정에서 디자인이 완성된다. 직조공은 추가하거나 줄이기 위해서 원사를 집어 들어야 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혹은 계산하지 않고서도 디자인 형식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직조공은 간단한 장비를 사용하여 비교적 복잡한 패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디자인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직조는 직조과정에서 디자인이 양쪽면에 동시에 만들어지는지 혹은 단지 한쪽 면만 양호한 상태가 되도록 하는지에 따라서 ‘하나 혹은 두개의 면’을 갖는다. Through the reports of those who took it upon themselves to burn idols, we know a little about local belief systems starting around the early 17th century 우상을 불태워버린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서, 우리는 17세기 초에 시작된 지역의 믿음 체계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전통적인 토착신앙에 대한 대규모 캠페인을 시작했다. 스페인사람들은 조상숭배를 금지했고, 와카huaca(신성한 신전)들이 대거 파괴되었다. 조상을 모시는 신사에는 물레가락spindle, 집게 도구와 면 한줌과 같은 물건들이 있었다. 이런 도구들은 월식때면 숨겨져야 했다. 왜냐하면 여자로 여겨지는 달이 혜성에 의해 위협을 받으면, 물레가락이 독사로 변하고, 베틀은 곰과 호랑이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옷감은 (생명력)을 담는 그릇일 뿐 아니라 직조기구 자체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힘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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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를 위해서는 베틀을 뒤트는 방법과 백스트랩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정하여 가장자리를 고르게 유지하는 등의 기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토착 미국인들의 직조방식은 유럽식의 플로어 베틀treadle loom과는 다르다. 미국인들의 직조의 경우 날실의 개수와 색상이 아주 신중하게 계산되어 디자인을 만드는데 이러한 기술은 나이든 여성들로부터 전수된다. 직조공은 디자인을 기억하기 위해서 라마뼈로 만든 위추나 집게 wichuna pick를 사용하여 날실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직조의 기본 구조 위에 유지되는 이 여분의 원사들은 표면을 가로질러 떠있고, 정밀한 기술이 요구되는 복잡한 공정에서 디자인이 완성된다. 직조공은 추가하거나 줄이기 위해서 원사를 집어 들어야 하는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혹은 계산하지 않고서도 디자인 형식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직조공은 간단한 장비를 사용하여 비교적 복잡한 패턴을 만들 수도 있으며, 디자인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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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pre-colonial Mexico the emperor Moctezuma had an aviary of exotic birds to garner feathers for cloaks and head-dresses which needed 300 attendants. The Spanish invaders in the Andean region were so worried at their use by Indigenous shamans that they banned them.

식민지 이전 멕시코의 목테쭈마Moctezuma 황제는 300여명의 참석자에게 필요한 망토와 머리장식용 깃털을 모으기 위해 이국적인 새들을 키우는 커다란 사육장을 가지고 있었다. 안데스 지역의 스페인 침략자들은 원주민 샤먼들이 이 깃털 장식을 이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이를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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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German-colonised Togo, there was call for a “cotton Kulturkampf” against the USA, and to this end freed black American slaves were brought in as role models. Their insistence on using the plough undermined women’s independence as cultivators.

독일 식민지 토고(Togo)에서는 미국에 대항하는 “면직 문화캠프cotton Multurkampf”에 대한 요구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 해방된 흑인 미국 노예들이 역할모델로 유입되었다. 그들은 쟁기 사용을 주장했고, 이는 경작자로서의 여성의 독립성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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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combination chaka nayra sounds nice as a name, but has no exact meaning in Aymará. Chaka means bone and nayra means eyes or big eyes. But nayra can also be understood as an extension of the eyes, or as gaze or gaze into the distance. Chaka nayra, then, could just as well be translated as “bone with the big/beautiful eyes” or “bony gaze into the distance”.

챠카 나이라chaka nayra라는 단어조합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이마라어Aymara[1]에는 이에 해당하는 정확한 의미는 없다. 챠카chaka는 뼈라는 뜻이고, 나이라nayra는 눈 혹은 큰 눈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이라nayra는 눈의 확장으로, 혹은 시선이나 멀리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차카 나이라 chaka nayra는 “큰/아름다운 눈을 가진 뼈” 혹은 “멀리 바라보는 뼈”로 번역될 수도 있다.

[1] 아이마라어Aymara: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과 알티프 고원지역에 사는 아이마라 민족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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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iano | 루치아노

“나는 45년간 구두닦이로 일했습니다. 나는 14세때부터 이 직업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나에게는 가족이 있었지만 얼마 후 아내는 죽었고, 현재 나는 자식들과 살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자식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제 모두 성장했습니다. 나는 항상 구두를 닦으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여기 볼리비아에서 많은 가정들이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웃의 볼리비아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오직 신만이 이들이 어떻게 매일매일을 헤쳐나가고 살아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이곳의 경제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우리 자신을 신께 맡기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 버려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무것도 없이 거리에 버려져 있으며, 집도 없이 거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는 너무 슬픈 일입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그들은 거리에서 자야만 합니다. 어린 아이들, 버려진 고아들 역시 모두 먹을 것도 없이 거리에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이곳에 살면서 이런 일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며, 여기 라파스에서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이 주택 공급과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크고 아름다운 나라. 그러나 이곳에는 주민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아름답고, 땅이 넓지만, 잘 조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조직이 필요합니다. 

물론 새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변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며, 경제 상황이 더 좋아진다면 직업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볼리비아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조직이지만, 여전히 볼리비아 사람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아시죠? 그리고 또한, 나는 우리가 일자리 공급원을 놓치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여기에 더 많은 회사들이 있다면, 이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생계를 위해, 수프를 위해 몇 페소 쯤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돈을 가진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언제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우리는 이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구, 그리고 미래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미래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새로운 미래를 찾아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볼리비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한 세계의 사람들이고, 우리는 모두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신께서 우리를 모두 똑같이 만드셨음으로 우리는 어떤 색이든 간에 다 똑같습니다.  그것이 내 의견입니다.

나는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깁니다. 다른 나라에서 사람들이 오면 나는 항상 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나에게는 전세계의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독일,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포르투갈에서 온 여행객들 말입니다. 그들은 내 직업을 통해서 나를 알았고, 나를 비디오나 사진으로 찍어줍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나에게 ‘당신은 국제적인 구두닦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전세계에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내가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나는 65살이고 여기, 내 자리, 이 호텔에서 45년간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이곳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매일 일합니다. 호텔에 도착하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내가 항상, 매일, 일년 내내 일하는 곳입니다. 언제든 당신이 돌아올 때마다 호텔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화하는 동안에 내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이는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에 더 말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기억하도록 이 실뭉치 ball를 주겠습니다. 기념품입니다.

이걸 가져가십시오. 우리나라에서는 풀오버나 춤파chumpa[1]를 뜨기 위해서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뭉치를 만들면 됩니다. 보세요, 이렇게요. 잘 관리해주세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1] 춤파 chumpa: 짧고 허리에 꼭 조인 재킷



2005

"토착민의 지식은 ... '왜' 라는 원인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에 대한 지식이다. undocumented affiliates그것은 또한 기록되거나 주제에서 소외될 수 없다. 오히려 토착지식을 다루거나 조종하는 주체의 헌신을 요구한다. 원주민적으로 생각하는 지식은 의식ritual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까바시또Caballito[1] 지역의 한 직물 스웻샵sweatshop[2]에서 발생한 화재로 밀입국 볼리비아 이민자 어린이 4명과 여성 2명 총 6명이 사망했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출신 노동자는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화재는 이민자 60여 명이 근무하던 작업장의 위험하고도 과도한 배선에 의한  누선으로부터 촉발되었다. [당시] 아이들은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에 갇혀 있었다. 공식적인 노동조합 대표자가 없는 상태에서 파르케 아베야네다[3] Parque Avellaned의 지역 모임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진 여성재봉사 노동조합 the Union of Seamstress Workers은 이전에도 노예와 같은 작업환경에 대한 보고서와 사례를 발표해왔다. 노조가 미등록 계열 회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경찰은 피해자들이 국민신분증인 DNI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장 작은 가게들 중 일부는 불법체류 이민자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고용하는 노동자들보다 아주 조금 더 버는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곳[스웻숍]에서는 싸구려 가짜-라벨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소호Soho, 몽테뉴Montagne, 치키Cheeky 와 같은 아르헨티나의 시내 중심가 라벨을 위한 옷, [즉, 아르헨티나 시내의 작은 부티끄 옷집에 납품할 옷]을 만들었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은 이익을 벌어들이는 것은 바로 그들, 소매상들이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부유한 나라들이 자체 섬유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 경쟁력을 가져야 했고, 이 때문에 ‘불법적인’ 이민을 허용한다는 익숙한 상황이었다. 일례로, 이것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잘 입증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시내와 주변 지역에 있는 버논Vernon[4]의 스웻샵들은 이 도시의 더러운 비밀중 하나인데, 대략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작은 ‘스웻샵’이나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런 입지조건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로스앤젤레스는] 패션이나 스타일과 강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반대하는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류 산업이 나쁜 평판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로스앤젤레스는 생활임금 조례의 통과를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생활임금이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 임금인상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균열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권력을 가진 소매상들과 제조업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공장을 소유하거나 운영하지 않는” 시스템을 좋아한다. 의도적인 혼란을 야기하는 이러한 시스템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는 근로 조건에 대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모호하게 한다는 점이다. 라틴계 노동자들은 하청 계약 사슬을 통해 나쁜 평판을 받는 경향이 있는 한국 사장들에 의해 자주 착취를 당한다. 이러한 압박은 언제나 짧은 납품 마감일, 포장이나 바코드 위치잡는데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벌금을 내게 하는 매우 엄격한 통제와 함께 위에서 내려온다. 한 제조업체는 “소매업자들이 상점이 아닌 부두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압박과 더불어, 덜 조직화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위험들이 찾아온다. [이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대응은 강제적으로 작업장을 회사로 전환하고, 이민 노동자들을 정식으로 고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라메다Alameda 운동단체는 이렇게 주장했다. “이번 개혁은 작업장의 모든 책임을 작업장 운영자에게 전가하려는 것인데, 작업장 주인들도 역시 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 그들도 큰 상표[회사]에 의해 착취당하고, 옷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은 돈이라도 지불해야한다, 결국 그들 도 다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 개혁은 라벨들[회사들]의 모든 법적 책임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좀 더 최근인 2010년 알라메다는 “노 체인” 을 트레이드 마크로 설정한 태국 회사와 함께 텍스타일 회사인 몬도 알라메다Mondo Alameda의 설립을 가능하게 했다.

[1] 부에노스 아이레스(스페인어: 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이다. 남아메리카 동남부 라플라타 강의 하구에 자리한 항구 도시이며,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2] 스웻샵은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하는 작업장을 일컫는다. 대개는 1) 고용계약이 없고, 2) 노동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며, 3) 아무때나 해고당할 수 있는 등 아무 보장이 없는 작업조건 하에 일하는 곳을 말하며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산업혁명 당시, 즉 183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의 영국에서 처음으로 스웻샵이 나타났다. 기존의 도제와 장인으로 이루어지던 공방이 점차 스웻샵으로 대체되었으며 하도급제도가 이를 더욱 부추겨 말단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프리드리히 엥겔스로 하여금 그의 중요한 논문 “영국 노동자의 현황”(1844/1845)을 발표하게 한 동기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이미 로ㄷ래전에 스웻샵이 사라졌으나 기업생산체계의 글로벌화로 인해 개발도상국가나 제 3세계로 이동한 것에 불가하다.

https://3space-environment-glossary.com/glossary/%EC%8A%A4%EC%9B%BB%EC%83%B5sweat-shop/

[3] 아베야네다(Avellaneda)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항구도시이다. 아베야네다 파르티도의 중심도시이며, 약 30여 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4] City of Vernon. 캘리포니아 주 소재이며, 트루 디텍티브 시즌 2에 등장하는 ‘빈치 시’의 모티브가 되는 도시다. 인구는 114명인데 상주하는 노동인력은 7만명이나 되는 곳이다.